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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회의 장면
전략회의 장면 ⓒ 엄기호
지구 곳곳에서 온 300여명의 참가자들은 '자본만을 위한 WTO 의제를 즉각 중단하라(Stop WTO Cooperate Agendas)'는 전체 구호 아래, 각자의 구호와 요구를 내걸고 공동행동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은 27일 미디어와 출판, 개막식과 폐막식 행동, 직접 행동과 참가 등으로 다양한 실행모임(Working Group)을 형성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토론에 들어갔다.

홍콩 각료급 회담을 무산시키기 위한 투쟁의 의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각별하다. 한편에서는 이번 회담이 WTO를 정식으로 타결하기 위한 '마지막 각료급 회담'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2003년 칸쿤에서의 협상 실패 이후 제네바에서의 미국과 EU가 정책결정권한을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로 이행하려고 하는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미국과 EU는 WTO의 만장일치제와 경제의 비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각료들이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 의사결정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일반이사회를 통하여 WTO 의제를 타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칸쿤에서 타결에 실패하였던 농업과 비농업(NAMA), 서비스 분야(GATS)에서의 의제들이 2004년 7월 제네바 일반이사회에서 7월 구조(July Framework)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합의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번 홍콩 각료급 회담 투쟁은 WTO 협상과 운영을 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시도를 파탄내기 위한 중요한 싸움인 것이다.

물론 이번 홍콩에서의 WTO를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 WTO라는 기구만을 겨냥한 싸움이 아니라 WTO로 대표되는 '자본만을 위한 세계화'를 저지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었다. 태평양 섬나라들을 대표하여 발제를 한 뉴질랜드의 활동가 제인(Jane)은 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나라들 중에서 WTO에 가입한 나라는 3개국밖에 안 되지만, 뉴질랜드나 호주와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나 지역협정 등을 통해서 실제로 WTO의 의제들은 더 악화된 형태로 강요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이를 과정을 통하여 태평양 섬나라들의 천연자원들은 점점 더 이 지역의 호주나 뉴질랜드 초국적 기업들에게 통제권이 넘어가고 있다. 또한 이럴 바에는 차라리 WTO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도 미국에 의해 서비스와 비농업분야에서의 관세철폐라는 압력에 직면하여,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시 WTO 가입도 저지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WTO를 저지하기 위한 12월의 지구적 민중투쟁은 WTO라는 기구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WTO의 의제들을 실행하고 있는 모든 과정들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 온 활동가들 역시 이 문제에 크게 공감하면서 태국의 운동은 WTO보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태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한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홍콩에서의 투쟁은 그 하나의 과정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마찬가지로 '시애틀에서 브뤼셀까지 네트워크'(The Seattle to Brussels Network)가 펴낸 '칸쿤에서 홍콩까지'라는 책자에서 독일의 활동가 피터(Peter)는 'WTO를 넘어 주목하라'는 글을 통해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WTO에 대한 EU의 대안적 전략으로서 양자간, 다자간, 지역간 무역 협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는 '이처럼 WTO협상이 저지당한다면 EU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양자간, 다자간 협상과 같은 대안적 접근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2003년 피터 칼(Peter Carl)의 말을 상기시키며, 단지 WTO협상과정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EU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협상과 전략들을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WTO협상이 난항을 겪게 된 것은 민중들의 직접행동에 더하여 WTO 내부에서 정부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과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WTO가 출범할 당시 미국과 EU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밀어붙였던 것과 달리 현재는 자신들의 이해에 근거해 다양한 연합들이 합종연횡하고 있다.

농산물에 대한 협상만 하더라도 크게 인도와 브라질 중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G20, 한국과 일본, 스위스가 가담하고 있는 G10,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들이 연합인 케언즈 그룹, 여기에 미국과 EU 등 여러 가지 연합들이 있다.

따라서 바깥에서의 시위와 저항으로 WTO를 무산시켰던 시애틀에서의 투쟁과는 달리 점점 더 회의장 안과 바깥에서 연합 투쟁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와 브라질 등을 통한 로비와 압력 행사 등의 전략들이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물론 WTO 협상 저지를 위한 홍콩 투쟁을 조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홍콩이 '자유무역항'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WTO의 의제에 대해 별반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도전이다. 자칫 시위 과정에서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가뜩이나 취약한 홍콩의 시민운동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중국 베이징 정부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Article 23'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적 민중 운동이 어느 정도 연합하여 힘을 모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인도와 브라질 등을 중심으로 WTO 내부에서 자국 정부의 발언력이 강해진 것에 희망을 가지고 직접 행동보다는 정부와의 로비와 협상을 통한 개입에 더 무게를 두려는 움직임이 있다. 북미와 유럽의 반세계화운동 역시 WTO 각료급 회담보다는 스코틀랜드에서 열릴 예정인 G8정상회담에 대한 투쟁에 더 무게를 실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점들에서 한국 민중 운동진영의 치밀한 계획과 지구적 연대의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포럼 아시아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성훈씨는 "WTO 내부의 협상과정이 복잡해질수록 각국 민중운동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며 "한국의 민중운동도 대규모 참가를 조직하는 것만큼이나 보다 더 치밀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그는 그중에서 시급한 것 한 가지로 "한국의 운동진영이 WTO나 FTA 내부의 협상에 대한 정보나 모니터링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제네바에서의 실제 협상 과정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꼼꼼한 모니터링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다른 한 참가자는 전지구적 반세계화운동 진영의 동향과 각 나라별로 WTO 저지를 위한 조직화의 정도를 면밀히 주시, 파악하며 자체 국제 연대를 강화하며 참가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이런 사정으로 지구의 반세계화운동진영이 한국 민중운동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때이기도 하다. 남반부에 초점을 두고 있는 활동가와 브라질에서 온 활동가들은 이번 투쟁의 성공 여부는 한국의 민중 운동이 얼마나 선도적으로 직접 행동을 조직하는가에 있다고 단언하였다.

홍콩노조연합의 사무총장이자 WTO반대를 위한 홍콩 민중연맹 대표 중의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탄은 "홍콩 경찰 당국과의 면담에서 경찰들은 특히 한국의 이름을 몇 차례나 거론하였다"고 소개하며 "이것은 홍콩 경찰 당국도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이 바로 한국의 민중행동이며, 그만큼 한국 민중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의 민중운동이 그리 강하지 못하지만 "한국의 민중운동으로부터 배우고 기회로 삼을 것이고, 또한 한국의 참가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한편 자본과 이윤이 아닌 저항과 희망을 지구화하기 위한 이번 회의에 한국에서는 한국농민회총연맹, 가톨릭농민회와 함께하는 우리신학연구소 등에서 10여명이 참석하여 농업협상, 서비스분야, 지적재산권분야 등의 주제별 토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주체별 전략회의와 행동계획 등과 관련된 실행모임(Working Group)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엄기호는 천주교평신도들의 국제연대운동단체인 팍스 로마나의 동아시아 담당이며 우리신학연구소의 아시아신학연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WTO/FTA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저지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대안 사목 모델 개발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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