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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그림입니다.
책의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소나무에 관한 병해충만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소나무가 어떻게 우리 민족과 함께 숨쉬며 살아 왔는지 또 소나무가 우리 민족 속에서 어떤 위상을 떨쳤는지, 그리고 우리 소나무가 일본 등 외국에까지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소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정서적 근원을 현장 답사를 통해서 밝히고, 우리 문화의 다양한 영역 속에 자리 잡은 소나무의 위상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한편, 우리 곁을 점차 떠나고 있는 소나무를 지키고 가꾸고자 펼치는 여러 활동도 담고자 했다."(머리말)

그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어떤 숨을 내쉬며 살아 왔을까,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얼마만큼 친숙한 존재일까. 그저 집을 짓는 데만 소나무가 사용되었을까, 아니면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관을 짤 때만 사용되었을까.

우리 민족이 소나무와 맺은 인연은 참으로 질기지 않나 싶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다다르는 그 모든 과정 속에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다른 사람 출입을 금하려고 솔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또 나무를 해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필 때 사용한 땔감도 소나무를 베어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옛 어르신들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자랐고, 소나무로 만든 쟁기나 달구지를 썼고, 송편이나 송엽주 같은 먹거리들도 다 소나무에서 가져 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땅을 떠나는 날 육신이 들어가는 관도 소나무로 만든 송판이고, 그 관마저도 뒷산 솔밭에 묻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 옛 어르신들이 살아 온 삶은 소나무와 함께 한 삶이라고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소나무 밭에 죽는, 완전히 소나무에 기대어 소나무와 함게 숨쉬며 살아왔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 불러도, 소나무를 우리의 생명수라 불러도 가히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소나무는 백성의 생명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솔잎을 가르는 장엄한 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면서 시기와 증오, 원한을 가라앉히려고 솔밭에 정좌하여 태교를 실천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철 변치 않는 푸름과 청정한 기상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아 지조·절개와 같은 소나무의 덕목을 머릿속에 심어 주었다. 그러니 소나무는 왕실 뿐 아니라 한민족 모두의 생명수였던 셈이다."

지조와 절개, 무병장수는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큰 덕목들이다. 보통 그것은 전통 한국화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풀이되기도 한다. 그럼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 그림이 무엇이 있을까. 그건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무병장수를 바라는 그림은 또 어디에 나타나 있을까. 그건 <십장생도>나 강희안이 그린 <송학도>에 드러나 있다. 그 그림들 모두가 한결 같이 멋진 그림들이요, 그 속에 담겨 있는 소나무들이 마치 살아 있는 소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옛 선비들 가운데 소나무와 연관 있는 선비를 꼽는다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소나무를 가꾸고 번창시키는 데 지대한 공로가 인정된 선비를 추천한다면 과연 누구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건 정약전이다. 흔히 정약전에 대해서는 <자산어보>만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물고기만 몰두했던 게 아니라 산 속 소나무 연구에도 깊이 관여했던 선비이다.

당시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된 정약전은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생활을 한지 3년째인 1804년에 그는 <송정사의>라는 훌륭한 책을 내게 된다. <송정사의>란 어떻게 하면 소나무를 많이 심고 또 잘 가꿀 수 있겠는가를 생각한 책이다.

그래서 정약전은 소나무 식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산뿐만 아니라 국가가 지정한 봉산까지도 개인이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나무가 없는 산은 산 주인에게 벌을 내려야 하고, 1000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기둥이나 대들보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소나무를 기른 사람에게는 포상하고, 주인 없는 산을 찾아 한 마을에서 힘을 모아(송계·松契) 1년이나 2년 동안 소나무를 길러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면 그 나무 크기에 따라 그 마을 세금을 1년이나 2년 간 면제해 주는 방안도 제안했다고 한다.

"정약전은 소나무 숲을 지키려면 지방관의 권한을 축소하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소유와 개인 소유를 가릴 것 없이 바닷가로부터 30리 이내의 산에 대하여 소나무 벌목을 금한 국법도 자라는 소나무가 있을 경우에나 유용하지 않는 나무가 없을 경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아무 쓸모 없는 연해 금산의 실상을 자세하게 전한다."(82쪽)

이는 오늘날로 하면 중앙정부 산림청에서 모든 지방 곳곳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을 책임지고 돌볼 것을 주장한 셈이다. 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게 됐을까. 그마만큼 소나무가 중요했고, 또 그마만큼 소나무를 관심 갖고 돌보지 않으면 모두가 베어 나가거나 죽거나 또 없어질 것을 내다 봤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런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있고, 또 많은 소나무들이 병해충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남 모르게 베어 가거나 산불을 내면 그저 벌금이나 구금 정도로 묶어 둘 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키고 돌보는 게 더 적기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그래도 옛날 농촌 생활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산 속에 들어가 소나무 마른 이파리와 가지들 그리고 솔방울을 주워서 땔감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긁고 모을 때 활엽수들도 많이 베어서 같은 땔감으로 썼다.

하지만 농촌 인구가 줄어들었고, 또 농촌에서도 지금은 연탄이나 기름 보일러를 때는 집들이 대부분인 까닭에 농촌 사람들 가운데 산에 올라가거나 소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경우 소나무 자리를 꽤 차고 들어가는 것은 활엽수들이고, 거기에 소나무 재선충이나 솔입혹파리, 그리고 솔껍질깍지벌레 같은 외래 병해충이 넘쳐나니 가히 소나무가 자리할 틈새는 점점 비좁기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정약전이 주장했듯이, 중앙 정부 산림청이 이 모든 것들에 책임을 지고 확고한 대비책을 적극적으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는 애국가 가사에도 담겨 있는 우리나라의 생명수,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지금까지 약제에 의 한 치유나 천적으로 방제할 수 있었던 다른 병해충과 달리 천적이나 치료약이 없다. '소나무의 에이즈'라고도 불리는 이유도 발병 후 1년 안에 모두 죽기 때문이다. 병충해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을 지금 잡지 못하면 20년 이내에 국내의 모든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380쪽)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전영우 글 사진, 현암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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