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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불청객 노린재.
한겨울의 불청객 노린재. ⓒ 성락
"도대체 알 수 없단 말이여. 이것들이 다 어디에 있다가 나오는 건지."

어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생수 병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놈을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뚜껑을 닫아버린다. 병 속에는 놈들의 시체가 수십 구나 들어 있다. 아직 살아서 병을 타고 오르는 놈도 보인다.

"이놈들은 눈에 띄는 대로 여기다 잡아넣어야지, 괜히 만졌다가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그나저나 이것들은 언제나 없어 질려나."

어머니는 단 한 마리도 놓칠세라 놈들과의 숨바꼭질에 발 벗고 나섰다. 자칫 지나다가 밟기라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지독한 냄새를 온 집안에 풍기니 그럴 만도 하다. 귀신처럼 나타나는 놈들이 행여 음식물에라도 들어 갈까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 초겨울부터 아마 병 속에서 죽어간 놈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병 속의 시체를 버려왔다. 그야말로 놈들과의 전쟁인 셈이다. 놈들의 '인해전술'도 만만찮다. 끝도 없이 투입되는 '병력'에 사람이 지칠 정도다.

노린재 처리용 생수병.
노린재 처리용 생수병. ⓒ 성락
지난 초겨울, 놈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집 전체가 놈들로 가득 찰 것 같았다. 집 외벽을 따라 다닥다닥 달라붙은 놈들은 고농도 살충제를 흠뻑 맞고도 살아남는 놈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 때 남은 '패잔병'들이 집 천장 속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겨우내 지루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놈들은 강추위가 몰려오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날씨가 조금 풀린 듯싶으면 어디에서 몰려오는지 벽이며 천장, 커튼 등을 통해 바닥으로 침투한다. 추위에 극도로 약하다는 것이 놈들의 약점인데 전쟁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이다. 밤이면 형광들 주변을 앵앵거리며 날다가 예고 없이 바닥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기사작성 중에도 어디선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기사작성 중에도 어디선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 성락
가끔 머리 위에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돼 무심코 손으로 쳐보면 십중팔구 놈이 저만치 바닥에 날아가 떨어진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사이에도 어느 새 손등에 놈의 끔찍한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순간 스쳤는데도 손에는 놈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배 버린다. 몹시 기분 나쁜 냄새인데다 씻어도 냄새는 쉬 없어지지도 않는다.

놈들은 잠자리를 영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놈들은 벽이나 천장에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뒤집히기도 하는데, 긴 발들을 한껏 양쪽으로 벌려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면서 내는 소리가 한밤중에는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덩치에 비하면 그 소리는 왜 그리도 큰 건지. 대부분의 놈들은 뒤집기를 성공하지 못한다. 힘이 빠질 때까지 바동거리면서 내는 소리에 결국은 불을 켜고 처치해야 하는 수고를 치러야 한다.

뒤집어진 노린재.
뒤집어진 노린재. ⓒ 성락
불면증에 시달리시는 어머니에게는 더없이 얄미운 놈들이다. 어머니의 머리맡에 늘 놈들의 시체가 든 생수 병이 놓여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놈들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노린재.' 그렇다. 올 겨울 부모님과 나를 상대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전쟁을 자처한 놈들의 이름이다. 어느 해인가는 무당벌레가 떼거리로 날아와 겨우내 성가시게 했다고 하는데, 올 겨울에는 노린재다. 그 독한 냄새만 아니라면 추운 겨울 그럭저럭 상생할 수도 있으리라.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인 것을.

대전대학교 생물학과 남상호 교수가 쓴 글에 의하면, 노린재는 특유의 노린내를 풍겨 적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노린재가 분비하는 고약한 냄새 물질은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그 양이 증가되는데, 적에 대한 경고성 의미 외에도 같은 종의 인지나 성적(性的)인 유인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 약 3만5천여 종의 노린재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300여 종이 서식하는데, 지독한 냄새만 빼면 사람에게 그리 직접적인 해를 입히는 곤충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대개 식물의 즙액을 빨아먹으면서 생활하므로 농작물에 해를 주는 경우가 있고, 또 식물에 해로운 병을 옮겨주는 매개충의 역할도 한다.

한편으로는 식물의 해충을 포식하는 유익한 무리도 있다고 한다. 쐐기노린재, 집 노린재, 긴 노린재의 일부 무리들은 육식성으로, 해충을 구제해 주는 천적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올 겨울 우리 가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놈들은 어떤 종류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곱게 벽 속이든, 천장 위든 얌전히 지내다가 봄이 오면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시골에 살면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무수한 벌레들과의 싸움이다. 그들도 생명체이고 자연의 일부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될 일이지만 그게 그리 간단치는 않다. 하긴 그들이 살 만한 곳이라면 그나마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일 테니 내놓고 싫다는 비명을 질러대기에 쑥스런 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 여름 비라도 오면 끝없이 나타나는 불청객 '노래기'에 질려보면 벌레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겨울에 노린재라면 여름에는 노래기다. 노래기도 냄새라면 빠지지 않는 벌레인데 생김새마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서로 쌍벽을 이루는 징글징글한 벌레들이다.

무당벌레.
무당벌레. ⓒ 성락
무당벌레는 그나마 예쁘고 앙증맞은 외모 덕분에 미움을 덜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나타나 엄연한 한집 가족임을 확인시키곤 한다. 어떤 자료에는 노린재의 천적이 무당벌레라고 하는데, 두 종류가 공히 집안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좋든 싫든 올 겨울은 다수의 노린재와 그보다는 적은 무당벌레들을 한 식구로 맞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5백여 미터 떨어진 이웃집에 노린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집이 노린재에게 뭔가 특별한 여건을 조성해 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게 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벌레가 득실대며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만큼 자연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시골 생활의 불편함 중 하나인 벌레와의 싸움, 자연의 무한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피할 수 없는 현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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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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