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말 냉면을 즐기는 사람들은 추운 한겨울에 진짜 냉면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며 그 식탐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겨울철 냉면의 진가를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약 13년 전쯤 대학생활을 하며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우연히 알게 된 '명동 함흥면옥'의 냉면 맛은 참으로 잊기 힘든 것이었다. 깔끔하면서도 매콤한 맛 덕에 언제 찾아가도 항상 꽉찬 손님들로 분주했으며, 명동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외국인 특히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명동에 갈 때마다 항상 그 맛을 잊지 못해 함흥면옥을 찾았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쉽게도 그 깊은 맛을 음미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맛집을 탐방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비빔냉면의 전설'로 이 집을 소개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 다시 추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중국음식을 시킬 때 항상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빔냉면과 물냉면 사이에서 갈등하게 마련이다.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이, 그리고 물냉면은 평양냉면이 제대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매콤한 음식을 즐겨 먹는 나는 항상 비빔냉면만을 고집했었다.
그러다가 양에 대한 압박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물냉면으로 선회했었던 것 같다. 냉면사발에 담겨진 국물을 마시고 나면 어느 정도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는 적은 양에 대한 고민없이 비빔냉면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집 근처에서 '세숫대야 냉면'이라는 냉면전문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히 세숫대야라고 칭할 만큼 커다란 그릇에 냉면을 담아 주는 데다 추가사리 또한 공짜이다.
게다가 가격 또한 1인분에 3500원이니 부담없이 여름 한철 동안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 자리잡은 원조냉면 맛에 대한 아쉬움은 지울 길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오전 11시. 아직 식사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식당 안에는 여러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따뜻한 육수를 담은 컵과 함께 냅킨과 후식용 껌이 제공된다.
나는 주저없이 종업원에게 비빔냉면을 주문했다. 얼마 걸리지 않아 보기에도 입맛을 확 당길 만한 맛있는 냉면 한 그릇이 눈 앞에 놓여진다. 금방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사리 하나를 추가한다. 추가된 사리는 편육이 없을 뿐 그 양은 처음에 시킨 1인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주변 직장인들이 많이 찾기에 후하게 양을 준다는 설명을 계산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적당히 더 먹고 싶은 사람들은 주문할 때 미리 곱배기를 시키면 1000원 추가된 돈으로 두둑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사리를 추가하게 되면 3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오랜만에 찾은 '명동 함흥면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 주었을 뿐 아니라, 맛 또한 십 수년 전 처음 맛 본 그 맛 그대로였다. 알싸하면서도 매콤한 맛은 입맛을 적당히 자극하였으며, 곁들여진 편육과 썰어진 배와 무는 적절히 냉면의 맛과 조화되어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집 냉면의 맛은 면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마 전분만으로 손반죽을 한 뒤 기계로 얇게 면을 뽑아내어 찬물과 얼음물에 번갈아 씻어내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회냉면에는 홍어회 대신 간재미회를 사용하는데 간재미의 맛이 냉면과 더 궁합이 맞기 때문이란다.
추억 속의 맛집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보니 학창시절 젊음과 함께 했던 명동에서의 추억거리들 또한 내 머릿속에서 흥겹게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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