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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입니다. 정말로 무쇠 튼튼한 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댐이라고 하니 그 웅장함이 실로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이 길 위를 한 번 쯤 걸어 본 사람들은 뭔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다 저와 같지는 않았겠지만요.
충주댐입니다. 정말로 무쇠 튼튼한 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댐이라고 하니 그 웅장함이 실로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이 길 위를 한 번 쯤 걸어 본 사람들은 뭔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다 저와 같지는 않았겠지만요. ⓒ 권성권
충주댐입니다. 무척 튼튼하고 크고 또 길다랗게 쭉 뻗어 있습니다. 철로 만들었으니 튼튼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이도 447미터에다 높이 또한 147.5미터나 되니 당연히 크고 길쭉합니다. 소양강 댐에 이어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댐이라고 하니, 그 웅장함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도 쐴 겸 차를 세워 놓고 댐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 보았습니다. 아무리 무겁고 큰 차량이 지나가더라도 끄덕도 하지 않을 댐이었습니다. 발로 밟으면서 지나가는 발걸음이 꽤 묵직했습니다. 무쇠로 만든 댐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은 탓도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멀리 댐 아래 강가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른들과 어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큰 차도 두 대나 쉬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자가용들도 여기 저기 자리를 꽤 차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정월 대보름이라 그런지 한 숨 크게 내쉬려고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것 같습니다.

헌데 물 한가운데에서도 쉼 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물 속 자그마한 돌덩이 위에 백로 떼가 내뿜는 숨소리였습니다. 거기에 뒤질세라 물오리 떼도 고개를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그네들이 내지르는 한숨 소리들은 사람들을 향해 합장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고맙다는 합장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측은지심하는 합장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은 그네들을 향해 더욱 큰 목소리를 내질렀습니다. 허나 그네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물장구도 쳐보았습니다. 허나 그네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저 물 속만 바라볼 뿐 사람들이 내 지르는 소리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깊은 한숨만 자꾸자꾸 고르며 내쉬는 듯 했습니다.

봄이 되면 핀다는 벚꽃 자리에서 충주댐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저 댐이 어떻게 닫히고 또 열리는지 때가 되면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크나큰 댐이 들어서는 까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자연이 아픔을 겪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곳에 한 번 들르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쯤은 한 번 하고 가셨으면 하네요....
봄이 되면 핀다는 벚꽃 자리에서 충주댐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저 댐이 어떻게 닫히고 또 열리는지 때가 되면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크나큰 댐이 들어서는 까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자연이 아픔을 겪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곳에 한 번 들르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쯤은 한 번 하고 가셨으면 하네요.... ⓒ 권성권
충주댐을 무쇠로 만들 때만 해도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 밀려드는 큰 물 난리를 막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좋은 물을 때에 따라 적당하게 받아 마실 수 있었으니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댐 하나로 엄청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니 그도 무척 기뻐할 일이었습니다.

허나 물 쓰는 것 때문에 한참 동안 옥신각신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앙과 지역 사이에 물 값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니 참 우스운 꼴이었습니다. 자연이 내 주는 물을 어디 인간들끼리 다툴 수 있단 말입니까.

그저 그것뿐이겠습니까. 댐 하나 때문에 제천과 단양 지역도 살 길이 트였다고 하지만 그것도 말뿐인 듯 싶습니다. 괜히 유람선을 끌어 들여 사람들 마음을 혹하게 했지만, 지금 유람선은 뜸하게 운행할 뿐이니 그 속임수가 참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댐 하나 때문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하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진 일입니다.

그 모습들을 댐 아래에 앉아 있는 백로와 물오리 떼들은 다 지켜봤을 것입니다. 물 쓰는 것과 그 쓰는 값을 치르는 것 때문에 서로들 다투었던 모습들을 지켜봤을 것입니다. 댐이 들어오는 날 이삿짐을 싸 들고 정든 고향집을 울면서 떠나가던 고향 사람들도 다 바라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떠들썩하게 놀고 춤을 추더라도 백로와 물오리 떼들은 춤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피리를 불며 숨가쁜 몸짓을 하더라도 그네들은 장단을 맞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웃음꽃 뒤에 얼마나 무서운 독버섯이 사람들 틈에 피어나 있는지 그네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개나리와 벚꽃이 이 댐 둘레에 활짝 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벌떼처럼 몰려들어 댐 위아래에서 한참 동안이나 즐길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다가 아님을 알았으면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연히 자연이 받았을 아픔도 생각해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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