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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고 본관 전경
익산고 본관 전경 ⓒ 익산고 제공
마한(馬韓)과 백제(百濟)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힌 역사의 땅, 전북 익산시 금마면 일대 넓은 들판 사이로 금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익산고등학교.

개교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가 최근 들어 전국적인 관심 속에 농촌학교의 성공적인 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지난 2003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익산고가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생을 배출하자 어떤 이들은 ‘어쩌다 한 번’이라는 냉담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다 2004년 수능에서 도내 전체수석까지 차지하자 '농촌 꼴찌학교의 수능 반란'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2005학년도 수능에서 익산고가 승승장구한 것에는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 채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익산고의 성공비결을 너도나도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어서 다른 학교들이 갖고 있는 부러움은 안타까운 한숨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익산고의 성공비결을 아무나 따라서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산고는 학교법인 익성학원이 설립한 사립학교다. 익성학원은 초대 이사장인 고 지태순 선생의 호인 익성(益城)을 따라 해방 이후 1948년에 탄생해 익성중학교를 시작으로 1966년에 익산고를 개교했다.

익산고는 개교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70년 화재로 본관이 전소되는 아픔과 우리 나라의 산업화 이후 농촌의 황폐화로 인해 일반계와 실업계가 공존하는 종합고로서 다른 고교에 진학하려다 실패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후기고로서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설립자의 뜻을 이은 2대 이사장 고 지성양 신흥증권 회장과 다시 그 뒤를 이은 지승룡(50·신흥증권 사장) 이사장의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익산고는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커다란 용(龍)으로 변했다.

지난 99년 세상을 떠난 고 지성양 2대 이사장은 아들인 지승룡 이사장에게 "전국적인 명문사학으로 육성하라"는 '교육보국'의 유지를 남기면서 경기도 안양시 소재 3500평 부지와 당시 시가 120억원 가량의 신흥증권 주식 53만주 등 모두 150억원 정도의 사재를 학교법인에 장학기금으로 기증했다.

익산고는 이 장학기금을 활용해 2000학년도부터 '영재학급'을 운영하기로 하고 공납금은 물론 기숙사비, 교과서비, 특별수업, 원어민 회화, 해외 어학연수 등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파격적인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사교육비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순수 공교육 프로그램으로 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동시에 방과 후를 이용해 영어와 수학 등 수준별 수업과 외국인 영어회화, 논술, 토익, 토플, 수리 특강 등 야간 심화 특강을 통해 소소 맞춤식 선택과목 지도를 실시했다.

또 익산고는 교육부가 교육방송(EBS) 강의를 강조하기 이전부터 학교 내에 사이버 학습 체제를 구축하고, 개인별로 수준에 따른 EBS 시청과 이-러닝(e-learning) 학습, 메가스터디 등 인터넷 학습으로 학습욕구를 충족해줬다.

여기에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재단의 학교에 대한 과감한 투자 또한 멈추지 않았다.

유당장학금 전달식 장면(가운데가 지승룡 이사장)
유당장학금 전달식 장면(가운데가 지승룡 이사장) ⓒ 익산고 제공
지승룡 현 이사장은 2001년 본관 4층을 신축하고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4인 1실의 초현대식 기숙사 유당관을 완공하는 한편 유능한 인재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시 사재를 털어 '유당 장학금'을 설립,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전액 지원해주고 있다. 인재육성을 목표로 한 익산고 설립자의 뜻은 졸업생까지도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학교재단과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일치하면서 발전을 거듭한 익산고는 올해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농촌 자율학교'로 거듭났다. 널리 알려진 영재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인해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영재 장학생은 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한다. 일반학급의 지원자도 정원을 초과해 40여명이나 탈락시켜야 하는 학교로 변했다.

유윤종(53) 교감은 "농어촌 고교의 무더기 미달이라는 사회 문제 속에서도 비평준화지역에 속한 익산고가 모델이 되어 농촌교육에 활력을 넣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 익산고는 옛날에 아무나 가던 그저 그런 학교가 아니라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들어갈 수 있는 명실상부한 명문사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세계를 향한 꿈을 키우는 학교 만들 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최인호 교장

▲ 최인호 교장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아이는 보듬고 가르치고, 우는 아이는 달래주고, 다친 아이는 치료해주면서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교사가 바로 스승이죠.”

익산고 최인호(61·사진) 교장이 생각하는 참다운 스승의 모습이다.

“법에 정해진 수업시간만 채우면 교사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스승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면서 최 교장은 “익산고가 이처럼 명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재단의 과감한 투자와 함께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소개한다.

최 교장은 “농촌이 살기 위해서는 농촌 교육이 살아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이농현상이 심했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재에 와서는 교육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73년 익산고에서 수학교사로 시작한 최 교장은 30여년의 교직생활을 익산고와 함께 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최 교장은 “세상을 떠나신 2대 이사장님의 유지로 세워진 장학금을 바탕으로 2000학년도부터 시작한 영재 프로그램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다”면서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재 학급이 아닌 실업계 학급에서도 당당히 연세대에 입학 한 학생이 배출 된 것은 영재 프로그램이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대단히 크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최 교장은 “영재 프로그램을 운영한 이후 영재 학급 이외의 학생들도 평균 30% 정도의 성적이 향상됐으며, 과거와 같은 문제학생이나 결석자가 사라져 인성순화 교육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컸다”고 강조한다.

또한 최 교장은 “공부는 학생들이 스스로 하는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연구하는 분위기”라고 언급한다.

“교사들이 11시까지 남아서 학생들과 함께 소규모 학습을 이끌어주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실력이 금방 향상될 수 있었다”는 최 교장은 “학부모와 우리 사회가 교사를 믿고 따라주는 신뢰가 쌓일때 올바른 교육에 대한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당부한다. / 소장환

덧붙이는 글 | 전민일보 2005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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