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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샘비상! 숨은 봄을 찾아라
이번 주말판 준비는 시민기자들에게 무척 힘겨웠습니다. 봄맞이 기사를 올려야 하는데 지난 주말 몰아닥친 꽃샘추위 탓에 실낱 같았던 봄기운마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죠. 결국 그들은 잠이 설깬 봄을 찾아냈습니다. 텃밭에서 나물 캐는 시골 아낙의 손길에도, 한겨울 마라톤에 도전한 가족들의 모습에도, 영하에 봄옷을 걸친 채 현장을 누비는 시민기자의 발걸음에도 이미 봄은 와 있었기 때문이죠.
시골목사 사진기도 '거짓말' 합니다 (김민수 기자)
봄나물 한 접시에 동네 잔치 열렸네 (김학수 기자)
온가족이 봄바람나게 달려보실래요? (허선행 기자)
봄날 기다리는 새내기, 봄옷 뽐내다 (정현미 기자)

봄 향기 그리워...

이맘때 쯤이던가….
시골 동네 저수지 밑 도랑에서 붕어 몇 마리 잡아다가 무시래기 듬뿍 집어넣고 짜글짜글 끓여먹던 그 맛이 불현듯 생각날 때가 있다.

이춘자씨 텃밭에는 봄이 가득…
이춘자씨 텃밭에는 봄이 가득… ⓒ 김학수
논두렁에 돋아난 돌미나리를 한 웅큼 캐다가 막된장과 참기름 송송 뿌려 넣고 박 바가지에 쓱쓱 비벼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이 이맘때면 마음 시리게 그리워진다. 이런 나에게 집사람은 40대 청승이라고 농담을 건넨다.

봄이 오는 길목…. 시골 5일장은 벌써부터 봄나물이 지천이다.

봄나물과 채소가 가득한 시골 장터.
봄나물과 채소가 가득한 시골 장터. ⓒ 김학수
머우잎, 취나물, 시금치, 냉이, 달래, 봄동, 보릿잎, 미나리, 지천구, 목글래, 밥보재기 나물 등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봄나물이 겨우내 묵었던 입맛에 구미를 당긴다.

요즘 시대에는 시설 하우스의 영농기술이 발달되어 한겨울에도 각종 푸성귀들을 맛볼수 있다지만, 논·밭두렁에서 시골 할머니들이 손수 채취해오는 제철 봄나물의 향긋함에는 그 맛을 견줄 수가 없다.

"올 시한에는 날씨가 겁나게 추워부러서 너물들이 나오다가 싹 꼬실라져부러서 요로코롬 생겨먹었는디. 그래도 맛 하나는 최고랑게…."

전남 순천시 송광면 구룡리 구표마을 김연애(69) 할머니가 팔러나온 나물을 다듬다가 기자에게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신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파릇한 보릿잎으로 된장국 한 뚝배기 끓여먹으면 구수한 맛이 최고일 텐데 요새 사람들은 그 맛을 잊은 지 오래다.

봄나물 한 접시에 사람 사는 정은 깊어가고...

봄동무침에 참기름 냄새가 솔솔~~
봄동무침에 참기름 냄새가 솔솔~~ ⓒ 김학수
전남 광양시 옥곡면 원월리 신촌마을 이춘자(62)씨는 텃밭에 나가 봄동을 뜯어다가 늦은 점심상을 준비한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봄동 겉절이무침에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담장을 넘었을까? 이춘자씨네 사랑방으로 한 분 두 분 동네 분들이 마실을 나온다.

뜻하지 않게 잔치 상이 펼쳐질 듯싶다.

소박한 시골 생활에 잔치상이라고 한들 특별한 음식이 있을리 없지만 방금 전 텃밭에서 뜯어온 봄동 무침에 돼지고기 한 근 떠다가 프라이팬에 볶아서 막걸리와 함께 상차림을 하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신촌 마을 사람들의 만찬
신촌 마을 사람들의 만찬 ⓒ 김학수
“누구는 왔는디 누구는 안 오먼 쓰겄는가?”
“거 이샌이랑 주샌도 오라고 허소!”

이곳 사람들은 이름 성씨 뒤에 "샌"이란 말을 붙여 서로를 그렇게 부른다.

“요거이 다 사람 사는 정 아니겄는가?”
“몇 안 되는 동네사람끼리 살면서 오손도손 사는 것이 재미제…”

"아따 겁나게 맛나요." 이사순(72) 할머니.
"아따 겁나게 맛나요." 이사순(72) 할머니. ⓒ 김학수
모처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은 자리…. 주인 윤영옥(68)씨의 인심은 후덕하기만 하다.

막걸리 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주인은 지난 설에 도회지 큰아들이 선물한, 감춰둔 양주 한 병을 선뜻 꺼내놓는다.

“아따 겁나게 맛나요!”
“윤샌도 한잔 더하쇼….”
“요 맛이 한 120점은 되것소!”

1987년산 포니 화물차를 지금껏 타고 다니는 멋쟁이 할아버지 이호의(67)씨는 이웃간에 풋풋한 정을 나누며 어울려 사는 이 맛에 농촌생활이 즐겁기만 하다고 말한다.

오늘 기자는 신촌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에서 코끝으로 전해지는 싱그런 봄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도시 사람들의 각박한 아우성도 다툼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인생의 황혼 길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따사로운 봄기운만이 그들 곁에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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