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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그림입니다.
책의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이와 같은 생각은 홍은택씨가 쓴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창비·2005)란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전직 신문 기자요 노조 위원장이었던 홍은택씨는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글로벌 저널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2004년 여름과 가을에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국 내 그늘진 곳들을 찾아 다녔다. 찾아 다닌 곳들을 이 책을 통해 나타내 주고 있는데, 미국은 정말로 배우고 싶고 닮고 싶고 또 뒤쫓아가고 싶은 나라지만 그 나라 속에도 숨겨진 아픔과 그늘진 곳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폭증하는 닭고기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닭을 대량 생산하는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자 언제나 대량 생산 시대가 되면 그렇듯, 닭을 키우던 농가들은 기업농에 밀려 폐가가 돼 버렸다. 이미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등장함에 따라 쇠고기 수요가 늘면서 목축업이 대기업화 하고, 미국의 영원한 카우보이들이 거의 멸종지경에 이르게 된 것에 이어 미 농가에 또 다른 타격이 가해진 것이다."(80쪽)

이는 세계 시장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맥도널드 회사가 더욱 몸집을 크게 부풀림에 따라 닭과 소를 키우는 작은 규모의 목축 농가들이 자신들의 삶터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당연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여기 저기 오순도순 평화롭게 소와 닭을 키우고 있는데, 그것으로 서로들 먹고 또 내다 팔면서 살림살이를 아등바등 꾸려 나갔는데, 갑자기 대형 공장과도 같은 목장에서 엄청난 닭과 소를 '찍어내고' 있으니 누가 그것을 막아설 수 있겠는가.

미국 내 그늘진 모습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화 돼 있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신앙심이 두텁다고 자랑하는 텍사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도 신앙심을 자랑하고 진리를 외치는 것 같은 텍사스에는 안타깝게도 세계적인 악덕기업 '엔론'과 세계 사형집행의 수도인 '헌츠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 해 주는가. 신앙심을 들먹이며 진리와 평화와 협력을 외치는 것 같지만, 그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점 매석하는 악덕기업 '엔론'과 거기에 손을 맞잡고 일하는 '부도덕한 정치인'이 그곳에 있을 수 있으며, 어떻게 성인사형 집행률 뿐만 아니라 청소년 사형 집행률도 미국 내에서 1위를 차지 할 수 있겠는가.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계층 상승해 버린 빈자리를 누군가 메워야 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과거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성취의 그늘에는 끊임없이 밖에서 충원되던 이민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일정기간 미국 사회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다가 계급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뒤에 온 이민자들이 맨 밑바닥 계단을 채우는 구조였다."(245쪽)

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숨어 들어오는 멕시코인들과 히스패닉을 빗대어 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수많은 멕시코 인들은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 같은 대도시 검문을 피해 리오그란데를 넘어서 미국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수많은 월경자들은 섭씨 40도가 넘는 뜨거운 태양에 타죽거나, 화물차 짐짝 안에서 질식해 죽는다고 한다.

거기에는 멕시코인들 뿐만 아니라 멀리 온두라스·과테말라·에콰도르 등지에서도 많이들 넘어 온다고 하는데, 설령 그들이 목숨을 다해 미국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9·11 이후 히스패닉 인구를 통제하고 있는 미 당국의 독한 규제를 피할 길은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미국 내 사회 밑바닥 층에서 하는 일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텍사스 출신의 부시도 그렇거니와 모든 정치인들은 그렇게 억압하고 규제하고 있는 이민자들과 히스패닉 사람들을 선거철에는 잘도 이용해 먹는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든 주지사로 나선 사람이든 누구든지 간에 미국 내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밀려나 있고 사회 밑층에 속한 그들을 선거 때만 되면 동반자 의식을 강조하고 있고, 그들을 배려한다는 차원의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게 된다. 그러나 일단 당선만 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싹 닦아 버리고 있으니, 그들 이민자들과 히스패닉 사람들은 억울해 하면서도 못내 쓴웃음 밖에 지을 길이 없는 것이다.

〈3〉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엄밀한 의미에서 따져보면, 본래부터 미국이란 나라가 인디언들을 짓밟고 약탈하고 총과 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살육과 약탈, 그리고 칼빈이 내세운 신학 지령인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면서 피워낸 꽃의 나라가 미국일진데, 과연 지금 꽃피고 있는 그 꽃의 냄새가 어떨지 우리는 가려 맡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을 동경하고 있고,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과 방문객을 보내고 있다. 얄미운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닮으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통령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덥석 미국 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가.

그야 당연지사이다. 미국식 기업경영과 기업 합병, 그리고 거대자본만이 살 길이라며, 미국의 손에서 빠져나올래야 빠져 나올 수 없는 우리나라 처지라고 하니, 대통령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밖에서 본 대통령과 안에서 본 대통령의 모습이 달라도 한참 달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일반 정치인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고서 한 번쯤 깊이 되돌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미국이 피워낸 꽃이 진정한 꽃인지, 그 꽃 냄새 밑바닥엔 어떤 악취가 풍겨나고 있는지, 정말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낱낱이 살펴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자본은 그래서 자신이 기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내고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낸 뒤 더 큰 이윤을 찾아 빠져나간다. 미국 동부에서 축적된 자본은 노조의 힘이 약한 남부를 거쳐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해도 괜찮은 멕시코로 갔다가 지금은 중국와 인도의 노동을 찾아가고 있다."(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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