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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유정은 마을을 빠져 나와 공중전화를 통해 택시를 불렀다. 그 택시를 타고 곧장 심양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고구려 유적을 모아놓은 사진 집이었다.

"이 사진을 잘 보세요."

그녀가 내보인 사진은 고구려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군총 무덤이었다. 사각형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꼭대기에서 평평한 모양을 이루는 무덤이었다. 장군총은 모두 돌로 만들어졌으며 꼭대기가 평평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흡사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가 보았던 산들이 이 장군총을 확대한 모습과 비슷하지 않아요."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것들은 흙으로 덮여있고 나무도 자란 산이잖아요. 또 피라미드라고 보기엔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크잖아요. 높이가 100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데요. 이걸 정말로 사람이 만들었다면 족히 몇 백만 명은 동원되었을 겁니다."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것이 무엇이라 말예요?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산은 분명하고, 장군총의 형태와도 아주 유사하잖아요. 이걸 모두 우연으로 돌리기엔 너무 기막히지 않아요?"

그는 탐색하는 눈으로 채유정의 얼굴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둘이 눈이 마주치자 김 경장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다. 채유정이 하는 말 중 틀린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우연으로 돌리기엔 맞아떨어지는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산의 정확한 정체를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들은 멀리서 산을 지켜봐야만 했다. 가까이는 공안과 개들이 지키고 있다. 설령 가까이 간다고 해도 그 큰산을 다 뒤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막막했다.

안 박사의 죽음에서 여기까지 달려와 어떤 실체에 상당히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었다. 두 교수를 죽인 놈들은 삼합회 사람들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 알아냈을 뿐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모르고 있다. 끝까지 묵비권을 지킨다면 더 이상 캐내기가 힘들 것이다. 안 박사가 숨기려 했던 것도 어느 정도 그 정체를 알아냈다. 하지만 산이란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이는 그 산이 어떤 비밀을 담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조금 더 연구해봅시다."

김 경장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채유정의 방에서 나오려던 김 경장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 점심은 제가 대접할 차례가 아닌가요?"

둘은 심양의 서탑 거리를 지나 서울호텔로 들어갔다. 이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호텔 식당에는 한국음식이 풍부했다. 호텔 로비를 거쳐 식당으로 향하는데 카운트에서 직원이 김 경장을 보고 다가왔다.

"선생님께 메모가 와 있습니다."

메모지를 보니 한국 총영사관의 참사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김 경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참사관이 대뜸 목소리를 높여왔다.

"왜 아직 출국하지 않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삼합회 사람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어제야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오늘이라도 빨리 귀국을 하셔야죠. 여기에 남아 있으니까 그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관광을 좀 하다가 귀국할까 합니다."

참사관이 더럭 소리를 내질렀다.
"오늘이라도 당장 귀국을 하십시오. 당신을 노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절 노리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더 남아 있고 싶습니다."

"전 한국인이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서 귀국을 하세요."

김 경장을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다 손에 꽉 쥔 수화기를 그냥 놓아버리고 말았다.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중국에 와서 무엇 하나 알아낸 것이 없지 않은가? 박사를 죽이고, 자신을 납치한 일당을 잡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산의 정체도 알아내야 한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중압감이 그를 억누르는 듯 했다.

공중전화기에서 나오는데 호텔 로비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관광객이 도착한 것 같았다. 꽤 큰 단체인 듯 스무 명이 넘어 뵈는 남녀가 부려지는 짐 가운데 자신의 트렁크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시끌벅적 주고받는 소리가 우리나라 말이었다. 대부분 남자인 그들은 저마다 붉은 조끼들을 유니폼처럼 걸치고 턱에는 줄 달린 카메라를 하나씩 걸고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크게 로비를 울렸다.

"여기는 완전 우리나라나 진배없구먼. 조선족이 많이 살아서가 아니라 산과 물이 생긴 모양이 중국과는 거리가 무관하다니까. 영락없는 충청도나 전라도의 어느 도시잖아."

"왜놈들이 간도협약(間島協約)이니 뭐니 하면서 남의 경계선만 줄여놓지 않으면 이곳은 분명 우리 땅이 되었을 것이야."

김 경장은 그 소리를 뒤로하고 호텔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채유정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둘은 종업원을 불러 불고기전골을 주문했다. 아침부터 굶어서인지 메뉴판만 보아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였다.

"앞으로 어떡하실 건가요?"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채유정이 문득 그렇게 물어왔다.

"끝까지 범인을 잡아내야지. 그 산의 정체도 알아낼 것이구."

"시간이 많이 걸리면요?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 수는 없잖아요."

김 경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아무튼 난 이 사건에서 절대 손을 떼지 않을 겁니다."

그때 주문한 음식이 왔다. 불고기전골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밥공기를 반쯤 비우고 있는데 한 남자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였는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김성현 경장님이십니까?"
하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 뒤에 있는 남자까지 바투 앞으로 다가왔다.

"식사 중이셨다면 마저 드십시오. 저희는 로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김 경장과 채유정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충 밥을 먹고 밖으로 나서자 정말로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식당을 나서는 걸 보자말자 로비의 의자에서 일어나 얼른 이쪽으로 다가왔다. 김 경장이 먼저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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