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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붉은 이마 여자>
책 <붉은 이마 여자> ⓒ 이룸
처음 이 책을 접하고서 표지에 적힌 소설가들의 이름을 쭈욱 훑어보았다. 나열된 10여명의 소설가 이름 중 낯익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소설책. 하지만 그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여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는 신기한 내용들. 도대체 이 작가들은 어떤 작법을 배웠길래 이처럼 특이한 소설을 쓰는 것일까?

소설의 말미에 따라오는 윤후명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에 모인 소설가들은 '비단길-서울 문학 포럼'이라는 공간에서 우리 소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공부를 해온 이들이라고 한다. 그는 한때 문학이란 혼자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왔음을 비판한다.

윤후명씨의 의견에 따르면 "문학이야말로 타인과의 대화, 사회와의 소통이 본질"인 것으로 혼자서 암중모색(暗中摸索)해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예술이다. 작가가 무언가를 부지런히 읽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소설은 사회와 소통하고 독자와 대화를 한다.

이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들은 서로 다른 색깔을 내뿜으면서도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사실적이기보다 몽환적이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런 종류의 글을 접하는 사람에겐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강윤진의 <초콜릿>은 자살을 선택하는 한 여자의 심리 변화와 함께 소에 대한 집착이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기법을 취한다. 뉴스에선 UFO가 소를 절단하는 내용이 나오고 한 남자는 '소가 들어올 시간이므로 빨리 가봐야 하니까 내일 아침에 꼭 찾아 오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초콜릿 모양의 수면제를 다량으로 삼키며 소의 영상을 떠올린다.

김서련의 소설에선 '흑모란모란앵무'라는 새에 대한 집착이 나온다.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 여자. 그녀가 키우는 앵무새들 또한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를 낸다. 조류원에 전화를 했더니 남자는 '서로 맞지 않으면 심하게 싸우고 심지어 암컷이 수컷을 물어 죽이기도 한다'는 답변을 준다.

"어쩌면 그는 오늘 밤 안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는 언제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했으니까. 혼자 남은 저 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멀리 아프리카에서 저 새의 진정한 짝을 불러와야만 하는 걸까. 나는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은 버티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이 책의 소설들은 매우 특이하다. 일상적인 사건 전개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 묘사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독특함이 그렇게 낯설고 어색하지만은 않다. 인물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은 소설의 주제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내뿜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특이점이란 자기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인물이 많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은 바깥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내면화한다. 그리고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의식 세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할 뿐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는 부각되고 사건 전개의 긴박성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다고 할까.

그들의 심리는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하게 나열된 듯하다. 하지만 그 흐름을 잘 따라가다 보면 인간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복잡 미묘한 생각들에 대해 되새기게 된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몽상은 또 다른 몽상을 낳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몽상이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에 한편의 소설은 탄생하게 된다.

김이은의 소설에 나오는 여 주인공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생각하는 류와 진 두 쌍둥이 남자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녀가 나열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과연 이 둘은 진짜 존재했던 인물일까, 아니면 한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독자들은 이 소설들을 읽으며 약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작가들이 진행하는 흐름이 결코 쉽거나 간단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 속이 복잡한 것처럼 소설의 전개 또한 복잡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괴상한 소설들이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만사가 어찌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으랴. 인간의 심리 또한 복잡하고 안개처럼 부옇고 알 수 없는 세계의 하나가 아닌가. 세상은 이처럼 흐릿하고 혼란스러우며 뒤죽박죽인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들의 세계가 어찌 보면 정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비정상적인 흐름 속에 정상적인 기운이 있고 복잡한 세상사 속에 또 단순한 답도 존재한다. 우리가 이 소설들을 읽으며 찾고자 하는 것 또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극도의 혼란, 그 속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답을 찾으며 독자들은 이상한 소설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붉은 이마 여자

강윤신 외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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