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향기네
지난 18일 오전 9시 20분께 노환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김씨 할아버지(75)는 걷고 있다. 김씨는 부천에서 ‘비교적 중산층 지역’인 원미구 중동 신도시 중2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식사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료 급식소를 찾는다. 며느리에 함께 사는데 삼시 세끼를 다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미안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고민 끝에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집에서 2㎞ 정도 떨어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송내 남부역의 어르신 무료식당 ‘향기네’다.

김씨는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며느리에게 미안함을 덜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어 운동 삼아 40분 걸려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 곳을 찾을까. 이렇게 말벗이 필요한 어르신이나, 진짜 형편 때문에 점심을 거르는 원거리 노인 등이다. 원거리에서 찾은 온 사람들은 무임승차권을 이용, 송내역에 내려서 찬찬히 걸어오면 3분만에 올 수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다. 물론 지척에서 찾는 부천 출신 어르신도 많다.

10시가 되자 어르신들이 식당에 모여든다. 40여개의 좌석이 마련된 식당은 10시 30분이면 ‘만원’이 된다. 이렇게 어르신 무료급식이 끝나면 이 식당은 바로 ‘생고기 3인분에 1만원을 받는 돈아 이리와 우리랑 놀자’라는 선술집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저녁 영업을 위해서다. 무료급식시간인 점심에는 ‘개점휴업’으로 손님을 받지 않는다. 점심 돈벌이를 버리고, 돈쓰기를 작정했다.

시련도 있었다. 지난 해 7월부터 ‘선술집’에 찾아온 ‘불의의 사고’로 인근 건물 주차장에서 ‘천막 점심’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행 중 뒤늦게 들어온 미성년자 음주가 적발돼 1달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점심 봉사는 천막을 넘어뜨리는 한 여름의 폭풍우를 뚫고 계속됐다.

1873일 11만2천명에게 점심을

ⓒ 향기네
지난 2000년 1월 2일부터 시작해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1873일 동안 ‘향기네’의 ‘천사 날개짓’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하루 평균 60여명이 찾는 현실을 비교해 계산해 보면 11만2천380명에게 점심을 제공한 셈이다.

봉사활동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도 하루 3명 평균으로 계산하면 5619명에 이른다. 하지만 봉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두 명이 60여명의 점심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음식값도 만만치 않다. 하루에 최소한 10만원 정도다. 경비는 어디서 나올까. ‘향기네 지기’ 임성택씨(38)의 주머니가 가장 든든한 밑천이다. 줄여서 하루 8만원씩만 계산해도 지난 5년 동안 1억5천만원 가량이 들어갔다. 후원금은 한달에 30여만원. 그동안 후원금은 모두 2천만원 정도 받은 것이다. 수도권의 허름한 아파트 한 채에 가까운 1억3천만원의 돈이 임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지난 가을을 끝으로 갑자기 한 어르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확인한 결과 세상과 인연의 끈을 놓았다. 유명을 달리한 셈이다. 결국 고민 끝에 ‘향기네’는 어르신영정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모두 120여명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선물했다. ‘향기네’의 자원봉사자들이 전체 얼굴을 보는 것은 1년에 3번 정도. 김장과 노인잔치는 여럿이 힘을 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운 이들이 한꺼번에 모인다.

어느 점심이나 ‘향기네’의 똑같은 풍경은 계속된다.‘향기네’ 입구 양지바른 자리에는 현대사회에서 이미 어르신들의 상징이 된 ‘폐지 실린 손수레’나 ‘오래된 유모차’가 먼저 똬리를 튼다. 군대식으로 이야기하면 ‘1식3찬’이다. 초라하지만 정성이 가득하다. 항상 모자란 듯 채워진 점심은 달콤한 요기로 시작된다. 손길은 모자라지만 이천일을 달려온 ‘향기네 천사짓’은 계속 된다.

“예산은 받지 않습니다.”

ⓒ 향기네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24시 시골해장국’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며, 5년을 하루같이 어르신 점심을 대접한 ‘젊은 천사’ 임성택(38)씨를 만났다.

강원도 함백이 고향인 임씨는 경기도 여주 한 기업체의 해고 노조활동가에서 시작해 식당일에 뛰어 들었다. 식당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그가 봉사를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누구나 한번쯤 먹고 살만해지면 남을 돕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냥 그런 이유였습니다. 2000년이 저에게 그런 시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때 부천시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동사무소에서 쿠폰을 받아온 어르신들에게만 식사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어렵더라도 자치단체나 국가의 예산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간섭받지 않고 싶어서요.”

젊은이다운 발상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도 이렇다.

“언론에 나서면 후원자도 자원봉사자도 생깁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를 지키고 싶지만 후원이나 자원봉사자가 필요해서요. 좋은 일이라면 널리 알려서 참여할 수 있는 폭도 넓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씨는 급식 현장에서도 말수가 적다. 좀처럼 어르신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어르신에게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임씨는 “아직도 자원봉사자가 부족합니다. 최소한 하루에 5명 이상의 고정인력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봉사하는 고정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향기네 천사들’

ⓒ 향기네
18일 ‘어묵볶음, 두부 된장국, 김치, 밥’의 소찬을 만들어 어르신들을 만난 마친 '향기네 천사들' 3명을 만났다. 항상 밝아서 미소가 아름다운 웨딩도우미 유선례(45)씨, 대부도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며 부천까지 달려와 이틀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억척 솔바람 김용현(51)씨, 20명 규모의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임성묵(45)씨가 이 날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이미 가족처럼 지내는 이들 중 임씨와 유씨는 ‘친구 따라 강남 온’ 격이다. 김씨는 온라인에서 알게 돼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이면 이 곳에 달려와 쟁반을 들고 음식을 나른다. 이틀을 봉사자로 사는 셈이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물방울 하나 튀지 않고 설거지를 할 정도로 능숙해진 김씨는 “초교 동창생이 추천해 집에서도 하지 않던 부엌일을 하게 됐다”고 하얀 이를 드러낸다. 결국 명함을 건네받지 못했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밝히지 않는다.

‘향기네 천사’들은 보통 10시 반에 출근한다. 그렇게 음식을 만들기 시작해 어르신 점심이 끝난 뒤에 늦은 점심을 먹는다. 마지막으로 식기와 수저를 삶아서 소독하고 봉사를 끝내는 시간은 오후 2시 정도다. 물론 중간 중간에 오는 ‘천사’도 있다. 향기네는 지금도 천사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경기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관련 사이트: http://home.freechal.com/soll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말, 부천시민신문, 한겨레리빙, 경기일보, 부천시의원을 거쳤고, 지금은 부천뉴스를 창간 준비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