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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이가 이제 백일이 넘었습니다. 지운이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첨부합니다. 아직도 일주일에 이틀 집에 데려오지만 부쩍 자랐습니다.
"지운이가 이제 백일이 넘었습니다. 지운이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첨부합니다. 아직도 일주일에 이틀 집에 데려오지만 부쩍 자랐습니다. ⓒ 강충민
저는 원재가 엄마에게 묻는 진성이를 잘 압니다. 진성이는 원재의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입니다. 보통 때는 저녁에 아내가 원재를 어린이집에서 데려 오는데 아내가 늦는 날은 제가 데리러 갑니다. 일주일에 한 이틀 정도는 제가 데리러 가게 됩니다. 데려 오는 길에 오늘 뭐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면 바깥놀이 했다, 혹은 야외학습 갔다고 하는데 가끔 등장하는 원재의 친구입니다.

원재와 같은 반에 남자아이가 열세 명 있는데 친구이야기에 등장하는 빈도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걸 보면 아주 단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친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건 아빠인 저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요.

아내는 원재의 친구인 진성이를 정말 모르는지 아니면 빨래를 개는 것에 신경이 쓰였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설 연휴기간 동안 서귀포 부모님 댁에 가 있느라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 빨래를 하고 개는 양이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 마지막으로 속 깊은 프라이팬을 씻고 수건으로 손을 닦았습니다. 빨래를 개고 있는 아내를 도울 생각으로 옆에 앉았습니다. 원재가 지운이의 요람을 힘차게 흔들다 다시 아내에게 묻습니다.

"엄마! 윤진성 알아? 몰라?"

아내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난 듯 "누구?" 했습니다. "윤진성!" 원재는 자신의 말에 별반 반응을 하지 않는 엄마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조금 목소리의 톤이 높았습니다. 아내는 그제서야 개던 수건을 내려놓고 대답했습니다.

"아 아토피!"

사실 아내가 원재의 친구인 진성이를 아토피라고 하는 이유는 원재의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원재가 어린이집 친구들하고 찍은 사진을 설명하면서 얘는 누구고, 얘는 누구고 하다가 조금씩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혁주는 달리기를 잘한다, 주영이는 이쁘다, 도윤이는 마음씨가 좋다 등등의 얘기를 하다가 진성이 차례가 되어서는 "진성이는 아토피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원재의 설명을 가만히 듣다가 "원재야 진성이가 아토피라고 놀리면 안돼"하고 조용히 얘기했습니다. 가급적 원재가 기분 나쁘지 않게 느끼도록 말입니다.

친구가 그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면 좋은 친구가 아니다 라고 했고 만약 원재도 아토피인데 그렇게 얘기하면 기분좋겠냐고 했습니다. 그 땐 어린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얘기하느라고 했지만 정확히 그 말 뜻을 이해 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 때 아내도 옆에 있었구요.

아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원재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 전에 제가 설명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의아했구요. 그런데 아내의 대답에 바로 원재는 요람을 흔들던 손을 내려놓고는 엄마를 째려보고 한마디 합니다.

"엄마! 아토피라고 하면 안돼. 그럼 엄마 보고 돼지라고 하면 좋겠냐?"

원재의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한 5초가량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보다가 비로소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내가 통통한 편인데 (절대 뚱뚱하지는 않습니다) 지운이를 낳고 나서는 부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저랑 몸무게가 비슷합니다. 이제 우리 나이로 여섯 살인 원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저는 원재의 편이 되어 아내를 놀렸습니다.

진성이의 아토피와 아내의 통통함을 절묘하게 비교하여 원재는 그렇게 엄마를 한방 먹였습니다. 아내는 같이 웃다가 자신의 통통함이 돼지와 비교된 것이 화가 났는지 원재와 나를 노려보며 "쉿 그만 웃어"하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윽고 웃음을 참고는 원재에게 그런 마음 변치말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런 마음만 있다면 지역색, 피부색, 나이, 성별,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과 멸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애초부터 그런 경계를 긋지 않는데 어른들의 잣대에 따라 같이 휘둘려지는 것이 아닌가 저도 반성을 한 계기가 되었구요.

원재의 어린이집 친구들입니다. 선생님은 한사코 사양하셔서 사진에는 안 나왔습니다. 이속에 원재가 아주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저만 알고 있으라고 했는데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어서 나중에 원재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습니다.
원재의 어린이집 친구들입니다. 선생님은 한사코 사양하셔서 사진에는 안 나왔습니다. 이속에 원재가 아주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저만 알고 있으라고 했는데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어서 나중에 원재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습니다. ⓒ 강충민
한편 아들에게 돼지와 비교당한 제 아내는 다음날 당장 헬스클럽 3개월을 등록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문에서 아들의 친구 진성이는 사정상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글쓴이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 
 www.jeju1004.com  
에도 올린 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어려운시대에 조금이라도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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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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