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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하고 자수공예의 새로운지평을 열고 있는 이정희씨
장애를 극복하고 자수공예의 새로운지평을 열고 있는 이정희씨 ⓒ 정종인
정읍시 수성동에서 전통자수의 맥을 이어가는 대동맥 역할을 하는 '예다움'에서 역경을 딛고 '희망의 수'를 놓고 있는 이정희씨.

예다움은 예상했지만 역시 '예쁘고 아름답다'의 준말이다. 이정희씨가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을 함축한 말이다.

"전통 자수 '인간문화재' 등극이 꿈이예요"

자신을 옭아맨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문화재'라는 금자탑을 쌓기 위해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전통 자수지킴이 백송(白松) 이정희(42)씨.

그에게는 미래를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자신처럼 장애를 겪고 있는 내제자들을 길러 전통자수의 맥을 잇는 일과 인간문화재가 되는길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손에는 훈장처럼 괭이가 무성하다
그의 손에는 훈장처럼 괭이가 무성하다 ⓒ 정종인
22년 동안 수놓기(전통자수)를 업으로 삼아 국내 제일의 자수명인을 꿈꾸며 정읍전통자수연구실인 '예다움'을 운영하고 있는 지체1급 여성 장애우인 이정희씨는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세살 때 후천성 소아마비를 앓은 이씨는 17세 되던 해 자수에 입문해 중요무형문화재 80호 자수장 한상수 선생으로부터 2년간 사사를 받으며 어찌보면 화려하게 장인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96년 전북 전통공예대전에 출품해 특선을 수상하면서 그의 진가는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99년 세계일보가 주최한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에서 특선(민화병풍)을 수상하며 '작은 성공'을 일구어 냈다.

이씨는 정읍시 수성동 수성주공아파트 104동 704호에 가내수공업 형태의 전통자수공방을 마련하고 자수연구에 정진하여 왔다. 이씨는 남모를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 대상’, ’전북관광기념품 공모전 장려상’ 등 각종 공예대전과 기능경기 대회에서 27차례 입상을 거두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왔다.

전북관광기념품 공모전 4점 입상

자수공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씨는 지난해 제5회 전북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정읍시 대표로 출전해 '여인네들의 멋내기'가 일반상품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모두 4점이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여인네들의 멋내기'는 전통자수를 응용하여 꽃살무늬의 꽃잎만을 수놓은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다른 작품인 ‘여인의 바느질 이야기’는 내장산의 단풍잎을 소재로 해 바느질 세트와 실패를 액자로 구성, 우리의 전통과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인 자수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 당시에 너무나 뿌듯했고 제가 이런 자리까지 오를 수 있도록 저를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하염없는 눈물이 나더군요."

이씨는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가 주최한 ‘제13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에서 예전 부녀자들의 예장용 관(冠)인 화관(花冠)을 재현한 ‘시집가는 날’ 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해 23년 동안 흘렸던 '서러운 눈물'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세 살때 선천성 장애 겪어

2남 2녀 중 장녀로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세살 때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됐다. 지체장애 1급일 정도로 몸이 불편한 그이지만 17살 때 친척언니의 소개로 자수에 입문한 후 지금껏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한 길만을 고집해 왔다. 이런 노력과 열정 덕분에 그동안 한국공예대전을 비롯, 신사임당 기능대회·온고을대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24∼25차례나 입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이씨의 최근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과 기능이 요구되는 '궁수(宮繡)기법' 을 활용해 섬세라고 정교한 작품을 연출해 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예다움'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궁수(宮繡)기법'과 관련, "이번 작품까지 모두 세 차례 정도 화관을 만들었어요. 이번에 사용한 궁수기법은 5방색과 꼰사(꼬임이 있는 실)로 수를 놓기 때문에 눈에 피로가 많이 가요.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략 한달 정도는 소요된 것 같아요” 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 아니면 낙관을 찍지 않고 작품소재 발굴을 위해 전통 문양집이나 관련 책자를 밤샘을 하며 뒤질 정도로 대단한 집념이 '자수공예의 자존심'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었다.

청와대에 전시되어 있는 이씨의 작품인 '시집가는날'
청와대에 전시되어 있는 이씨의 작품인 '시집가는날' ⓒ 정종인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에게 자수는 권할 만한 직업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는 “자수는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할 거예요. 앞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모두 완성되면 도내에서 전시회를 마련하고 싶어요” 라고 계획을 밝혔다.

어려운 난관이 많았지만 자신의 삶이 터전이 될 공방과 사무실을 마련한 이정희씨는 향후 장애인들에게 자수기술 전수자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씨는 "장애인이 자수공예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고,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며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절망만 하지 말고 예다움에 문을 두드린다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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