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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
책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 ⓒ 소나무
매달 30권의 책을 사고 매년 수백권의 책을 버린다는 독서광 김보일 선생님. 그는 지금의 현실에서 책읽기가 그다지 쓸모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장자가 말했던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발견하면서 책에 몰두한다. 그가 발견하는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이란 어떤 것일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두되었던 이야기는 바로 '활자 매체 소멸론'이다. 활자로 찍어 나오는 모든 문서들이 소멸되거나 점차 그 역할과 범위가 축소될 것이라는 논리. 이와 같은 논리가 꽤 설득력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활자 매체는 인터넷과는 또 다른 기존의 고전적 정보 전달 도구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도 활자 매체인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책은 인터넷과 다른 어떤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기존의 그 고리타분하고 시간 걸리는 책읽기를 시도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아마도 김보일의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패배주의자의 감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책읽기는 내 나름대로 탈주의 한 방식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 즉 '남독(濫讀)'이야말로 가장 큰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말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독서는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내 일탈의 욕구에 가장 적합한 놀이였다. 체계도 없고 거창한 자기 이념도 없이 오직 책읽기의 쾌감을 좇는 나는 독서의 쾌락주의자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고리타분해 보이는 책읽기를 통해 쾌락을 추구한다. 따분하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책 속에는 꿀처럼 달콤한 쾌락적 요소가 존재한다. 그 꿀을 찾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책장을 펼쳐들고 오묘한 상상의 공간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래서 활자 매체는 그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독창적 대상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환경, 고전문학, 철학, 사회과학 서적 등 그야말로 폭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저자는 다양한 책들을 감칠맛 나게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꿀'이 어떤 것인지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책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에 담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책이 지닌 참맛을 전하는 것이다.

첫번째로 소개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학력주의가 범람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라는 족쇄만큼 한 개인을 옥죄는 것 또한 없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변변한 학력이 없지만 독학으로 철학자가 된 유명한 사람이다.

"에릭 호퍼에겐 변변한 학력이 없다. '에릭 호퍼 자서전'에서 말하듯 그는 '삶을 관광객처럼' 살았다. 한마디로 그는 떠돌이였다. 레스토랑 보조 웨이터, 사금채취인, 부두노동자 등 자질구레한 직업이 이력의 전부였다. 이 떠돌이 사상가의 유일한 학교는 책이었다. 길은 그를 떠돌게 했고, 책은 그를 철학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좋은 학벌 출신의 어느 누구보다도 물리학과 수학, 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할 만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에릭 호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자들도 책을 통해 삶의 경이로움을 획득한다. 또 다른 책 <책 읽는 소리>는 우리의 선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했는지 보여준다.

"좋은 글이 우리를 충만하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글이 지니는 '풍부한 시간성' 덕분이리라. 박지원이나 이덕무의 글은 우리가 지나쳐 버린 시간들이 풍부하게 고여 있다. 그들은 사물의 단순한 외양만이 아니라 그것의 얼개와 구조까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저자 김보일이 말하는 책의 향기는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그가 왜 그리 많은 책을 읽고 그 세계에 빠져 사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이것은 그와 마찬가지로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감정과도 유사할 것이다. 그 해답은 바로 이 글에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든든한 우군이 있다. 박지원의 책이 있고, 이덕무의 책이 있다. 뿐이랴. 도서관에는 '잘 느낄 수 있는 영혼'과 '예리하게 사물의 핵심을 파고들었던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꼼꼼하게 기록한 선배들의 기록이 있다. 책장을 열어 그들의 목소리에 나의 눈과 귀를 주는 것은 새롭게 세상을 보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그렇다. 책은 '잘 느낄 수 있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그 작은 세계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획득한다. 책은 나와 다른 시선을 느끼고 함께 그것을 경험하는 간접적인 체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책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좁아질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책을 읽지 않는 자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폭넓은 체험의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세계란 무척 한정되어 있다. 그 한정된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책이 아닐까?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 모니터 화면을 통한 정보 습득 외에 종이 한 장 한 장, 글자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독서를 해 보자. 손지갑 정도 크기의 작은 책 한 권에는 넘쳐나는 세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세상이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를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고 간단하게 얻어지는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랜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읽는 책의 내용들은 내 혈관 구석구석으로 녹아 들어가 언젠가 나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 아마도 독서를 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이런 믿음이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 - 어느 국어선생의 쓸모 없는 책읽기

김보일 지음, 소나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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