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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 회랑 벽면의 데바타. 살아 움직일듯한 육감적인 자태일까? 맨질맨질 손때를 탄 특정부위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앙코르 와트 회랑 벽면의 데바타. 살아 움직일듯한 육감적인 자태일까? 맨질맨질 손때를 탄 특정부위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 김정은
화려한 머리장식과 잘록한 허리, 막 솟아오른 듯 부푼 가슴을 살짝 가린 잠자리 날개같은 하늘하늘한 옷자락이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면 그만 날아가버릴 것같이 위태해 보인다. 투명한 옷자락 아래로 비치는 손과 발은 음악이라도 나오면 금방이라도 너울너울 춤을 출 것 같은 고혹적인 자세다. 낯선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녀들은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완벽한 몸매다. 그러고 보면 당시 앙코르 제국의 크메르인들의 미의식은 남다른 점이 있어 보인다.

흔히 다산을 기원하는 대부분의 여인조각들은 특정부분을 유난히 강조하다 보니 풍만하다 못해 뚱뚱해 보이기 마련인데 앙코르 유적지에서 만나는 여인상의 모습이 뚱보가 아닌 걸 보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크메르인이 사원 회랑의 벽마다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1700여명의 천녀 압살라와 공양녀 데바타

앙코르와트사원의 데바타 비록 많이 훼손되었지만 우아한 자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앙코르와트사원의 데바타 비록 많이 훼손되었지만 우아한 자태는 여전히 남아있다 ⓒ 김정은
그 아름다운 여인들은 압살라와 데바타라는 힌두신화의 여신들이다.

천녀라고도 불리우는 압살라는 선신과 악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암리타(감로수)를 얻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내용의 힌두설화 중 암리타가 만들어지기 직전 생긴 바다거품에서 탄생한 존재이다(유해교반, 본 여행기 5편 참조).

그러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피로 만들어진 바다거품 속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아프로티테의 탄생과도 어딘지 모르게 흡사해 보인다. 동서를 막론하고 미인과 거품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앙코르와트 사원의 압살라, 화려하지는 않지만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같이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압살라, 화려하지는 않지만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같이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 김정은
아무튼 이때 태어난 압살라가 일설에는 6억명이나 된다고 하니 고귀한 존재인 신의 수라고 하기엔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숫자가 많은 만큼 그녀들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 주로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간급의 정령으로서 항상 위대한 남신이 출현할 때 함께 나타나 춤을 추며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비해 데바타(devata)는 사원 본존의 공양녀라는 지위를 가진 하급 여신을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원 내에 워낙 이런 저런 여인들의 조각이 많다보니 어떤 게 압살라이고 어떤 조각이 데바타인지 설명하는 자도 보는 자도 헷갈리기 싑다. 앙코르 와트 사원에 부조된 압살라와 데바타상만 해도 1700여개가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또다른 데바타, 머리장식이 호화스럽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또다른 데바타, 머리장식이 호화스럽다 ⓒ 김정은
앙코르 사원의 문지기 압살라와 데바타

이처럼 앙코르 와트 사원 회랑의 벽면이나 기둥에서 맨처음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1인 내지는 2, 3, 5인이 조를 이룬 압살라와 데바타 부조들이다. 여신상들은 신전건물 첫째 입구에 문지기처럼 맨처음 배열되어 있지만 또 다른 대형 부조작품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융화되도록 조각되어 있다.

바이욘 사원의 데바타상, 앙코르와트사원과는 또다른 중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바이욘 사원의 데바타상, 앙코르와트사원과는 또다른 중후한 느낌을 갖게 한다. ⓒ 김정은
압살라와 데바타는 앙코르 사원에서 가장 자주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문지기라 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다. 표정은 물론, 머리장식이며 옷 주름 등 모두 조금씩 다르다. 또한 조각기법이나 건축연대에 따라 각각 다른 이미지의 여인상들이 탄생했다.

압살라 춤은 추고 있지만

재현되어  공연되고 있는 압살라춤
재현되어 공연되고 있는 압살라춤 ⓒ 김정은
고대 크메르인의 미의식을 나타내주는 바로미터 압살라와 데바타. 비록 그녀들의 지위는 이 벽면에 부조된 어떠한 신들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을 빼놓고 앙코르와트 유적을 말할 수 없을 만큼 앙코르 와트 유적 내에서 여행객들이 느끼는 그녀들의 존재감은 대단히 크고 친근하다.

이런 친근감 때문일까? 앙코르의 후예들은 이를 이용해 압살라 춤이라는 민속춤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연한다.

벽면 속에서 부활하여 세상 속으로 나온 천녀 압살라. 그러나 움직이는 형상들은 벽면의 부조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조상의 화려했던 미의식의 반도 쫒아가지 못하는 현대의 압살라 춤. 이 춤이야말로 현재 캄보디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조상의 역사를 열심히 자랑하고는 있지만 조상을 따라가기엔 너무나 벅차고 어려운 현실말이다.

이방인들에게 발견되어 이방인들의 도움을 받아 복구되고 있는 유적지가 온전한 크메르인의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조상을 파는 데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위대한 조상들을 이해하고 보다 더 잘 알기 위해 지금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떠나 다시 버스를 타고 태국 국경으로 돌아오는 길.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뽀얗게 날리는 흙먼지 속의 캄보디아를 바라보면서 문득 현재 캄보디아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뽀얗게 날리는 흙먼지를 뚫고 앙코르 와트의 5개 첨탑이 오롯이 보일 맑은 날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앙코르와트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9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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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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