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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100일째, 죽음을 눈 앞에 둔 지율 스님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도롱뇽 수가 놓인 보자기와 종이접기한 도롱뇽을 선물로 전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2월 2일 단식 99일째 되는 날 오후 1시경 정토회관에서 있었던 기자 브리핑에서 현재 지율 스님의 보호자로 있는 법륜 스님이 공개하였다.

“어제 저녁에 제가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읽어드렸더니 마음을 내셔서 ‘나에게도 대통령께 드릴 선물이 있는데요’ 하시며 곱게 수놓은 도롱뇽 보자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실낱같은 숨으로 경이로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그의 생에 분명 노무현 대통령은 잊을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곡기를 끊은 100일째의 단식.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가 노무현 대통령께 전달한 선물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맺은 인연

▲ 우리는 이 모형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손 끝에서 미끈하게 빠져 힘차게 달아나는 한 마리 도롱뇽을 보았습니다. 사진은 지율 스님이 보자기에 도롱뇽 수를 놓고 있는 모습.
ⓒ 천성산닷컴
지율 스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지난 2002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고속철도 전면 재검토’를 선거 공약으로 가지고 나온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3년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재개된 공사 강행으로 지율 스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굳은 약속은 깨어졌다.

2004년 8월 환경부와의 환경전문가 검토회의 합의 내용이 다시 파기되고, 같은 해 11월 법원 측과의 중재안도 10일만에 돌연 종결되는 등, 끊임없는 약속 파기 속에 지율 스님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계속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웃으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지율 스님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면서도 작은 방을 수행처로 삼아 하루 20시간 이상 천성산 홈페이지(www.cheonsung.com) 관리와 ‘초록의 공명’이라는 CD 제작에 공을 들였다. 그의 유언인 셈이었다.

특히, 천성산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께’라는 코너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개인적 고백 형식의 글들은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 항거하는 성격을 넘어 내면으로 깊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네티즌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잔혹한 구원

빈 속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천성산을 400번 이상 오르며 찍었던 천성산 풍경을 정리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천성의 모든 숲과 계곡 속으로 발걸음 합니다.

2박 3일의 환경영향평가로 터널을 뚫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늘에서 비행기로 다섯 번이나 봤다고 하면서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라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잘리어지고 있을 천성산을 생각하면 차마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하지만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천성산을 놓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겠습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사후 모니터링을 운운하기도 하며 포기 못하는 저를 향해 성명서 같은 것을 내기도 하더군요. 저는 결코 그 두 가지 일을 천성의 이름으로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 제가 가도 천성은 남을 것입니다.

천성산을 정치적인 사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저는 밤새워 교육용 CD를 만들었고 천성산의 영상물과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성산이 지켜지고 이 땅이 살아나는 것은 구호와 이슈 속에 이합집산하는 머리속의 운동이 아니라 천성산의 마음, 천성산의 정신인 원칙과 순수와 열정, 그리고 대지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살아 날 때입니다. 이점 도롱뇽의 친구들은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단식 57일째인 어제, 강제 입원시키겠다는 서장님께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것은 수차례에 걸쳐 약속을 파기하고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의 지시사항이며 잔혹한 구원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헐거워진 제게 손을 대는 일에 대하여 용서치 않겠습니다.

화엄벌이 자신을 태워 천성을 지켰던 것처럼 온전한 운명 속에 스스로를 태우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한 길을 걷는 것은 종교인으로서의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 천성산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께’ 중 2004년 12월 24일 쓴 글 중에서



▲ 우리는 이 모형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손 끝에서 미끈하게 빠져 힘차게 달아나는 한 마리 도롱뇽을 보았습니다.
ⓒ 권민희
대통령에게 전한 도롱뇽 수가 놓인 보자기와 종이 도롱뇽은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는 동안 이어갔던 활동이었다. 인용한 글에서 그는 천성산이 정치적인 사안으로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단식장은 언제나 종이 도롱뇽 접기와 도롱뇽 수놓기로 널려 있었다. 단식장을 방문하는 누구라도 도롱뇽 수놓기를 하고, 누구라도 종이 도롱뇽 접기를 했다. 특정한 단체나 집단의 지지를 배경 삼지 않았던 단식장, 가족끼리, 친구끼리, 유치원 아이에서부터 할머니까지 지율 스님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곁에서 도롱뇽 수놓기와 종이 도롱뇽 접기 등으로 그의 뜻을 모아 갔다.

죽음 앞에 선 지율 스님을 지켜보고 있는 법륜 스님은 지율 스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님은 이미 어떤 결과를 위한 요구 조건으로 단식을 내걸고 있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받을 수 없으면 이 시대의 한계지 않느냐. 스님께서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적인 시각과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상식의 잣대로 평가 할 때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분은 자신이 보는 큰 눈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죽음의 일각에서 내미는 지율 스님의 선물. 분노와 원한의 화살이라고 보기에는 도롱뇽 수가 놓인 보자기와 종이로 접은 도롱뇽이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아름답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과 지율 스님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전혀 다른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남은 힘이 있다면 재판장님께도 선물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는 지율 스님은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내려진 도롱뇽 수를 이제 마무리 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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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런 나에 집착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만남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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