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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란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라, A라는 음식보다 B라는 음식이 반드시 맛있다고 말하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다만 비교 대상이 되는 음식들을 서로 먹어 보고 어느 정도의 판단을 할 수는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는 곧 죽어도 B가 맛있다고 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 음식이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많은 음식들은 원조 논쟁을 떠나 자신들의 조리 방법을 거친 자신만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확신하는 맛 집 사장님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갈비에는 대표적으로 수원갈비가 있고 이동갈비가 있다. 여러 문헌과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갈비의 시초로는 아무래도 수원갈비를 쳐주지만 어느 쪽 갈비가 더 맛있냐는 점에 이르면 서로가 자신의 갈비가 더 맛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양쪽의 갈비는 어떻게 다른가? 수원갈비는 갈빗대가 큰 왕갈비고 이동갈비는 작은 쪽갈비다. 수원갈비는 소금으로 간을 하고 이동갈비는 간장으로 간을 한다.

크기에 대해 얘길 하면 이동갈비에서는 수원갈비를 향해 그렇게 클 필요가 있냐, 우리는 작아도 푸짐하다는 말이 나온다. 또, 양념에 대해 얘기를 하면 수원갈비에서는 이동갈비를 향해 어떻게 간장으로 간을 하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한치의 양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원갈비와 이동갈비 중에 어떤 갈비가 더 맛이 있을까? 며느리도 모른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냉면계의 맛싸움

냉면도 마찬가지다. 함흥냉면이 있고 평양냉면이 있다. 평양냉면의 대가를 찾아가 먼저 얘기를 들어 봤다. 냉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냉면은 당연히 평양냉면이 정답이라고 한다. 물냉면이라는 것도 원래 냉면 하면 당연히 물냉면인데 함흥냉면파가 비빔냉면을 주로 하다 어거지로 만들어 낸 것이 물냉면이기 때문에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이다.

또 원래는 냉면의 다수파는 평양냉면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함흥냉면이 슬금슬금 생겨나더니 어느 틈에 역전을 시키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그 따위 냉면을 먹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함흥냉면파의 한 거물을 만나 평양냉면파에게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 냉면은 무엇을 냉면이라 하는가. 회냉면이라는 말이 즉시 돌아온다. 평양냉면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그런 밍밍한 면발과 뚝뚝 끊어지는 면발을 무슨 재미로 먹느냐는 표정이다. 냉면의 묘미는 매콤한 양념에 이빨로 끊어 가며 먹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에서는 어느 쪽 냉면이 더 맛있을까? 음식계에 국가대표를 뽑는 행사가 있어 냉면계에서 내부 경선에 들어가고, 그래서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여론조사의 결과에 승복하는 단일화를 한다면 모를까 어느 쪽이 확실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평양냉면은 평양냉면의 매력이 있고, 함흥냉면도 함흥냉면만의 맛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는 집에서 만든 것에 한해서이다.

무슨 말인가? 이렇게 서로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맛을 만드는 데 열심일 때 우리의 음식 문화는 발전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무더운 여름철에 많이 먹곤 하는 냉면은 사실은 겨울에 먹던 음식이다. 북한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메밀가루로 면을 뽑아 살얼음에 이빨 딱딱 부딪쳐가며 후루룩 먹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에서 시작한 냉면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전국구 음식이 되고,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을 온 실향민들이 메밀이 없는 곳에서 밀가루로 면을 뽑아 냉면을 그리며 먹어서 생긴 밀면이 있을 정도로 냉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착은 엄청난 것이다.

어찌됐던 냉면은 이제 우리의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음식인 것이고 양대산맥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인 것이다. 내가 선택한 오늘의 주인공은 함흥냉면이다. 왜? 다수파에 영합하고 싶기 때문이다.

함흥냉면 면발, 100% 고구마전분에 손으로 반죽해야

▲ <함흥면옥>의 회냉면
ⓒ 김영주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곳은 오장동의 몇 집이지만 왠지 다른 함흥냉면이 궁금했고, 몇 집의 냉면을 먹어본 결과 오장동 냉면보다 맛있으면 맛있지 못하지 않은 한 집을 알게 되었다. 물론 3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곳인데 명동의 <함흥면옥>이 그 집이다. 물론 냉면인만큼 하늘에서 솟아날 만한 특별한 비법은 없다. 정성과 손맛이 맛을 좌우한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배덕현 조리장에 따르면 100% 고구마 전분 사용하고 반드시 손으로 반죽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함흥냉면은 면이 가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면을 뽑으면 15초에서 20초 정도를 뜨거운 물에서 삶아내고 찬물, 얼음물, 또 얼음물의 순서로 재빠르게 씻어야 쫄깃해진다. 삶을 때는 색을 잘 보는 게 포인트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면발의 색깔이 뿌연색에서 맑아지면 그 때가 꺼내야 하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역시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육수 역시 정성이 중요한데 사골, 꼬리, 양지로 24시간을 우려낸다. 함흥냉면은 기본이 비빔냉면이기에 비냉용 다진 양념이 중요하다. 고춧가루, 마늘, 깨, 배, 생강, 파, 참기름에 냉면용 간장으로 만든 진육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회냉면일 경우 회무침 양념이 들어가는데 20여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마늘, 깨, 고춧가루, 오이, 배 등이 들어가고 설탕은 쓰지 않는다. 많이 쓰면 너무 텁텁해지기 때문이다.

회냉면의 회는 식초로 하루 정도를 삭힌 간자미를 사용한다. 고명은 회, 고기, 무김치, 오이, 배, 달걀이 얹어지고 식초와 겨자는 넣지 말고 먹을 것을 권한다. 식초는 멸균 작용과 부드럽게 하고 찬 맛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하고 겨자는 온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냉면 맛의 진수를 느끼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알게 된 것 하나를 소개한다. 지금까지는 함흥냉면을 먹을 때 면발과 육수를 먹고 나면 당연히 일어났는데, 약간의 잔재들이 남아 있어 아까워하던 냉면 그릇에 뜨거운 육수를 더 달라고 해서 부어 먹으면 그 맛이 또 새로운 맛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냉면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냉면의 양대산맥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거기에 세숫대야 냉면과 매운 냉면들이 가세하여 한층 풍성해진 냉면계의 치열한 현장에서 면발을 끊어가며 후루룩 목으로 넘기고, 뜨거운 육수를 들이키고 다시 젓가락으로 면발을 드는 과정을 반복할 때, 함흥냉면의 맛이 한층 더 생기지 않을까. 물론 다른 냉면들의 맛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02-776-8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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