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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초등학교 학생이 그린 그림
ⓒ 김수원
을숙도 바람은 무척 차가웠다.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행사를 준비한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 회원들은 분주하게 을숙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하고 아이들이 손수 그린 걸개그림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걸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녹색연합,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한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 덕문여고에서 속속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세계 습지의 날을 맞아 '명지대교 건설 저지를 위한 부산시민대회'을 열기 위해 이렇게 모인 1백여명은 노란 손수건에 습지를 향한 바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습지야, 내가 구해 줄게!' '철새들의 보금자리 을숙도를 지켜 주세요' '명지대교 건설반대! 새들아, 알라뷰'

부산시는 도심의 교통 혼잡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을숙도 내에 명지대교를 건설할 계획이다.

"원래 이곳에서는 집회를 잘 열지 않습니다. 마이크도 사용하지 않구요. 지금은 새들이 먹이를 구할 시간입니다. 원색 계통의 옷을 입은 분들은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새들이 놀랩니다."

사회를 맡은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은 멀리 보이는 수천 마리의 철새들을 소개하면서 철새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박중록 위원장은 "명지대교는 돈으로 언제든지 만들 수 있지만 최고의 자연 생태계를 가진 우리 나라의 핵심 지역인 이곳은 돈주고 만들 수도 없다"며 명지대교 건설반대를 주장했다.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의 상임대표인 최종석 부산녹색연합 대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을숙도 생태공원조성사업도 병주고 약주는 행위다. 여기에 다리까지 만드는 건 을숙도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세계적 자연유산의 중심부를 훼손하는 명지대교 건설 즉각 취소' '무분별한 개발 계획의 공범으로 전락한 문화재청의 문화재심의제도와 통과의례로 전락한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명지대교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빨간 깃발이 꽂힌 건설 현장에서 각자의 노란 손수건을 긴 줄에 매달아 인간띠를 만들었다. 노란 손수건이 펄럭이며 길게 늘어선 참가자들은 하단 오거리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 새들을 위해 다른 길을 이용해 달라는 표지판
ⓒ 김수원

▲ 철새들의 쉼터. 멀리 공단 굴뚝이 보인다.
ⓒ 김수원

▲ 낙동강 하구 을숙도 철새
ⓒ 김수원

▲ 1백여명이 참여한 '명지대교 건설저지를 위한 부산 시민대회'
ⓒ 김수원

▲ 문화재청 규탄 피켓
ⓒ 김수원

▲ 사람들은 각자의 노란 손수건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 김수원

▲ 이번 행사에 참여한 덕문여고 학생들과 '월드스쿨네트워크' 환경활동가 그레그 마이클
ⓒ 김수원

▲ 명지대교 건설공사현장
ⓒ 김수원

▲ 인간띠잇기와 거리행진
ⓒ 김수원

'명지대교 건설저지를 위한 부산시민대회'에 관한 성명서

2005년 세계 습지의 날을 맞이하여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에서는 한국 최고의 자연생태계인 낙동강하구를 보존하고 명지대교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부산시민대회를 개최하며 아래와 같이 우리의 뜻을 밝힌다.

명지대교 건설은 낙동강하구의 핵심 생태계를 훼손한다.

낙동강하구는 세계 5대 갯벌의 하나인 한국 갯벌을 대표하는 세계적 자연유산으로 생태적 가치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 역시 매우 크다. 낙동강하구는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넓적부리도요 같은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적 습지와 조류 전문가들 역시 이곳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연 생태계를 부산시는 교통편의라는 일방적 논리로 파괴하여 지역발전의 소중한 토대를 스스로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부산시의 명지대교 건설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

부산시는 ‘명지대교가 서부산과 도심을 잇는 중심축 역할을 해 도심의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해안순환도로망은 언제 완성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북항대교는 아직 착공조차 되지 않았고 복잡한 도심 구간의 통과 방법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설사 완성되더라도 비싼 도로비와 먼 거리로 인해 이용객은 일부 소수에 국한될 것이다. 이는 과다한 유료도로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부산 시민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결국 8.2%의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은 명지대교건설 참여 기업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다.

명지대교는 한국과 부산 발전의 미래 중심지를 파괴한다.

낙동강하구는 세계인이 감탄하는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다리와 도로는 언제, 어디서나 세울 수 있지만 이곳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낙동강하구는 세계인의 발길을 한국과 부산으로 향하게 할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자연자산을 토목사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부산시의 근시안적 행정으로 인해 한국과 부산의 미래발전의 토대가 될 소중한 공간을 더는 잃어서는 안된다. 청계천을 복원하고 철새를 지역발전의 동인으로 인식하는 다른 지역의 교훈으로부터 부산시는 을숙도의 복원을 약속하고 이 지역을 세계적 생태관광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제대로 된 지역발전 전략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환경부와 문화재청의 부당한 결정은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

환경부는 2003년 12월 31일 명지대교 사전환경성검토 승인을 통해 습지보호구역 최초의 대형 개발계획을 허가하였다. 통과의례로 전락한지 오래인 환경영향평가법에 이어 습지보호법 역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무소불위의 권세를 지닌 문화재심의위원들은 습지와 새에 대한 전문지식과 현지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개발측의 자료만을 바탕으로 또 다시 부산시 개발계획에 면죄부를 제공하였다. 무분별한 개발 계획의 공범으로 전락한 원로원 같은 문화재청의 문화재 심의제도와 이름뿐인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2005년 1월 31일 /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

덧붙이는 글 | <브레이크뉴스>, <유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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