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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신은 신발입니다. 앞으로도 5년 더 신을 작정입니다. 수없이 수선집을 들락거려야 되겠습니다.
5년동안 신은 신발입니다. 앞으로도 5년 더 신을 작정입니다. 수없이 수선집을 들락거려야 되겠습니다. ⓒ 강충민
그러고 보니 이 신발을 오래도 신었습니다. 결혼 준비할 때 처갓집에서 아무것도 못해준다는 것이 아내는 많이 창피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꽤 값이 나가는 유명 브랜드 양복 한 벌과 구두를 처가에서 사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저에게 선물을 했습니다(사실은 아내의 돈으로 산 것입니다). 그 때 산 신발이니 만 5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유난히 발이 작아(신발치수가 245입니다) 일부러 치수가 10mm 정도 더 큰 걸 산 탓에 뒷굽이 다른 쪽보다 빨리 닳아 두 번을 갈았습니다. 살 때 무려 15만원을 주고 산 신발이라 아끼며 신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아내가 결혼할 때 사 준 신발이라는 의미가 있어 오래도록 신고 싶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해서 아내에게 신발을 새로 하나 사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내도 터진 신발을 보더니만 “오만원이면 새로 사지?” 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말에 입이 이만큼 나와 “오만원짜리 신발 사면 오래 못 신는다니까!” 하고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내의 입에서 오만원이라고 정해진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집의 관습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지갑에서 꺼낸 빳빳한 오만원을 두 손으로 “고맙습니다” 하면서 받고는 고이고이 제 지갑에 담았습니다.

사실 저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어 예전부터 생각해 둔 신발이 있었습니다. 작은 제 발에 맞으면서도 작아 보이지 않는 유명 메이커 신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오만원으로 한정짓는 아내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정작 아내도 늘상 싸고 질긴 것만 신기에 나 혼자 욕심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애써 위안 삼았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새 신발을 사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터진 신발을 신고 출근했습니다. 퇴근길에 사무실 근처의 신발가게에서 새 신발을 살 요량으로요.

기워 신으니 3만7500원이 굳네

점심 때 담배를 사려고 근처 편의점에 갔는데 마침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안에 불은 켜져 있는데 잠시 외출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블록 지나 또 다른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나오는데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가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구두수선”이라고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 있는 신발 깁는 집이었습니다.

구두 수선집입니다. 낡은 것에서 정감이 느껴지는 곳. 신제주 챔피온백화점 뒷편에 있습니다.
구두 수선집입니다. 낡은 것에서 정감이 느껴지는 곳. 신제주 챔피온백화점 뒷편에 있습니다. ⓒ 강충민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낯익은 아저씨였습니다. 차들이 잘 안다니는 길이라 뒤뚱거리며 인라인스케이트를 열심히 타는 모습을 몇 번 보았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본드 냄새가 나고 낡은 재봉틀이 있습니다. 칸칸이 수선용으로 보이는 뒷굽이랑 못들도 보였습니다.

수선집 아저씨입니다. 모델료 많이 안주면 안 찍는다고 해서 같이 엄청 웃었습니다. 이 분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워볼 작정입니다. 인라인도 수준급입니다.
수선집 아저씨입니다. 모델료 많이 안주면 안 찍는다고 해서 같이 엄청 웃었습니다. 이 분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워볼 작정입니다. 인라인도 수준급입니다. ⓒ 강충민
저는 오른쪽 신발을 벗고 아저씨에게 보였습니다. “아저씨, 이 신발 기울 수 있어요?” 하고 묻는데 아저씨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 대답 대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며 “저기 국민은행 옆에 여행사에 다니지?” 합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전에 거기서 비행기표 끊은 적 있어” 하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저도 참 사람을 기억 잘 하는데 이 아저씨도 저 못지않습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수선비용을 물으니 1만2천원하는데 만원만 받겠답니다. 결대로 찢어진 게 아니고 생가죽으로 찢겨서 가죽을 새로 대 기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저녁 퇴근까지는 신을 수 있게 해 주겠답니다. 저는 오른쪽 신발을 맡기고 가게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사무실로 돌아 왔습니다.

퇴근길 가게에 들러 신발을 찾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기운 자국이 역력하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기운 걸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수선되어 있었습니다.

이 재봉틀로 수많은 신발을 기웠을 겁니다.
이 재봉틀로 수많은 신발을 기웠을 겁니다. ⓒ 강충민
오른쪽 신발을 신고 이미 신고 있던 왼쪽 신발까지 맞춰 신으니 새 신발을 신은 것보다 훨씬 뿌듯해집니다.

저는 수선비 만원과 함께 담배 한 갑을 같이 아저씨에게 드렸습니다. 가게에 들르기 전 미리 담배 한 갑을 샀으니까요.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오만원을 받았으니 담배 한 갑까지 사드려도 무려 3만7500원이나 남았습니다. 엄청난 횡재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퇴근하면서 같이 돼지갈비 먹으러 가자고…. 삼십분 쯤 후에 우리는 돼지갈비집에서 만났고 아들 녀석, 나, 그리고 아내 이렇게 셋이서 정말 열심히 갈비를 뜯었습니다. 저는 소주 딱 한 병을 곁들여 마셨구요. 물론 음식값은 그 3만7500원에서 해결했습니다.

수선된 구두입니다. 아주 자세히 봐야 기운 자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합니다.
수선된 구두입니다. 아주 자세히 봐야 기운 자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합니다. ⓒ 강충민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 신발을 벗어 놓는데 아내가 묻습니다. “신발 안 샀어?” 저는 그 말에 자랑스럽게 기운 신발을 보여줬습니다. 아내는 단박에 좀 전에 먹은 음식값의 출처를 알아차립니다.

저는 아내에게 아주 짧은 경제학을 얘기합니다. 거창하게 건전한 소비생활에 대해서도요.

오만원으로 신발을 기워 신고 맛있게 저녁을 먹은 어제는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건강하게 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앞으로 이 신발은 새 신발을 사더라도 한 5년은 더 신을 작정입니다. 오래 된 것이 좋은 건 친구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걸 몸소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꼼꼼히 신발을 기우시는 맘 좋은 아저씨를 자주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아내가 새 신발값을 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  www.jeju1004.com  에도 올린 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어려운시대에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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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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