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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남아시아지역을 강타한 지난해 12월 푸껫·카오락·타쿠아파 등 피해 지역을 돌며 비극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가 정은진씨가 23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최근 귀국했다. 배경 사진은 정씨가 찍은 것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이 태국 푸껫시청 게시판에 붙어있는 시체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
쓰나미가 남아시아지역을 강타한 지난해 12월 푸껫·카오락·타쿠아파 등 피해 지역을 돌며 비극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가 정은진씨가 23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최근 귀국했다. 배경 사진은 정씨가 찍은 것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이 태국 푸껫시청 게시판에 붙어있는 시체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때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널리 알려야 하는 기자의 사명감에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다.”

쓰나미(지진해일)가 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지 한달. 아직도 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가족과 삶의 터전을 뺏긴 슬픔에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같은 쓰나미 피해지역의 참상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사진기자의 노력이 있었다.

쓰나미 악몽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7일 현장으로 달려갔던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34)씨. 그가 카메라에 담은 쓰나미의 참상은 이틀 뒤인 12월 29일 <뉴욕타임스> 1면에 실렸다.

정은진은 누구?

정은진씨가 위험지역이나 분쟁지역에 카메라를 메고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2년 전이다.

얼핏 보면 초년병 같지만 그의 '사진 공부'는 12년 전인 93년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해 정씨는 미국 뉴욕대학교 사진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뉴욕대를 졸업한 95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일보 뉴욕지사에서 6년간 취재 겸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2003년 가을 미국 미주리대에서 포토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고 난 뒤 본격적인 사진기자의 길로 나섰다.

<뉴욕타임스> < LA타임스> 등에서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현재 < 온아시아(OnAsia) > 소속 프리랜서 기자로 뛰고 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소속 에이전시를 통해 <뉴스위크> <타임> <르피가로> 등 세계 유력지에 함께 실리며 쓰나미 사태의 심각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 남아시아 취재는 <뉴욕타임스> 의뢰로 이뤄졌다.

“쓰나미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푸껫에서 파나까지 매일 해안가를 운전하고 다녔는데 쓰나미가 다시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두려웠다.”

그는 23일간 태국 푸껫, 카오락, 타쿠아파 등에서 피해지역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쓰나미에 쓰러진 남아시아 지역은 참담했다. 더욱 슬펐던 일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쓰나미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두려웠다"

또 취재기간 내내 쓰나미가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고 털어놨다. 한 번은 스피드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마침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쓰나미로 인해 스피드 보트는 다 망가졌지만 바다에 있어 오히려 안전할 수 있었다고.

그러나 쓰나미 피해지역의 끔찍한 상황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아픈 마음도, 두려움도 접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그런 덕분 때문인지 미국사진기자협회(NPPA)는 프리랜서 사진기자치곤 초년병인 그에게 협회가 발행하는 전문잡지 <뉴스포터그래퍼> 2월호에 쓰나미 취재기를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지문채취하는 모습 등 정은진씨가 찍은 사진은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타임> 등 세계 유력지에 게재돼 쓰나미 피해지역 구호 노력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사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지문채취하는 모습 등 정은진씨가 찍은 사진은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타임> 등 세계 유력지에 게재돼 쓰나미 피해지역 구호 노력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는 그동안 이란, 이스라엘, 태국, 인도네시아 등 많은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해왔다. 그중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팔레스타인의 경우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한 남자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인데 대부분 남자들이 2명의 부인만 둔다고 한다. 그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해(다른 경우도 있지만) 남편이 죽으면, 할 수 없이 두 명의 부인이 함께 살게 된다고 한다.

그가 방문한 가정은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드밥세씨네 집. 그 가정은 남편이 죽은 뒤 두 명의 아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작업(사진취재)을 통해 남편이 죽은 뒤 남은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고 자식들을 챙기는지,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정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해외 여러 나라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것에 대해 그는 “뉴스가 있어서 가는 것”이라며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진. 그는 그저 한 사람의 한국 여성이 아닌 세계에서 촉망받는 '포토저널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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