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푹 자고 난 다음에 느끼는 상쾌함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자 상쾌함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김 경장은 침대에 앉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자 건너편에 침대가 또 하나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거기에 한 사람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채유정이었다.

"이봐요!"

채유정은 신음 소리를 내고 몸을 뒤척였다. 김 경장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구석에 나무 상자 몇 갠가 뒹굴고 있었고, 창문도 없었다. 지하 창고 정도로 보였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조금 춥게 느껴졌다. 채유정은 침대의 담요로 몸을 덮었다.

김 경장의 머리 위에는 갓 없는 전구가 필라멘트만 남겨 놓은 채 깨져 있었다. 벽을 따라 손을 더듬어 가자, 한쪽 구석에 사다리가 하나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김 경장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다리 위에 있는 나무판을 밀어보았다. 무거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소리가 시끄러웠던지 채유정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예요?"

채유정의 시선이 방을 한 바퀴 돌고서는, 김 경장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 갇힌 건가요?"

"그런 것 같군요."

"어떻게 된 것이죠?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요."

김 경장은 묵직하게 안겨드는 머리를 들어 가까스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머릿속으로 슬라이드 화면처럼 여러 기억들이 장면 단위로 끊어지며 떠오르는 것이다. 마지막 기억이 가까스로 떠올랐다.

"그 노인이 건네준 차안에 무슨 약을 탔던 것 같아. 차를 마신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아."

"그렇다면 그 노인이……."

"아마도 공안에게 일렀을 것이야."

"공안이 우리를 이상한 곳에 가두었단 말예요?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그럼 누가 우릴 이런 데에 가두었단 말이죠?"

"저도 그게 궁금해요."

"공안이 아닌 그 누구라면 혹시……."

"두 교수를 죽인 사람들?"

"그럴 가능성이 많겠죠."

"그렇다면 우리라고 무사할 리가 없죠."

순간 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어깨를 흠칫 추스르더니 금방 주눅든 얼굴을 했다. 김 경장의 작고 찢겨 올라간 눈에 복잡한 감정의 빛이 역력했다. 드디어 그들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 어쩌면 살해된 두명의 학자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범인들에게 더 가까이 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었다.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켜켜이 조여드는 어둠 속의 불길한 기운을 떨치기 위해 그는 난마처럼 얽힌 머리를 휘휘 내둘렀다. 그때 차 엔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희미해서, 잘못 들은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 있어 확실히 들려왔다. 채유정도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그 자들일까요?"

"돌아온 거 같은데."

마침내 차는 근처까지 와서 엔진 소리를 멈췄다. 탁, 탁 하고 차 문 닫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멀리서 총성처럼 들렸다. 이어 머리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그리고 사다리 위에 있는 마루판이 들어올려지고, 한낮이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잘 주무셨나요?"

복면을 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