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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괴석과 풍경
ⓒ 김강임
겨울이 익어가는 1월 엊그제가 새해 첫날인가 했더니 시간은 벌써 2월을 기다린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숨가쁘게 살아왔건만 손에 잡히는 것 없는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때 찾아가는 곳이 겨울산사다. 시끌벅적한 세상 이야기를 잠시 뒤로 하고 풍경소리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곳. 겨울산사로 향하는 1100도로(99번도로)는 욕망의 찌꺼기까지 순백으로 깔아 놓았다.

▲ 삼림으로 우거진 숲에는 순백의 아름다움이...
ⓒ 김강임
한라산 구구곡(아흔 아홉 골)에 숨어 있는 천왕사. 여느 때 같으면 자동차가 절집 앞에까지 달려갔을 테지만, 겨울 산사는 눈 속에 꽁꽁 묶여 있으니, 멀찌감치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가는 것도 곧 마음의 수양이다.

삼나무 숲으로 우거진 천왕사 가는 길은 마치 동화의 나라 같다. 1100도로에서 충혼묘지 주차장까지는 걸어서 15분. 눈 위를 걸으며 여유를 부려 볼 수 있으니 바쁜 일상의 순간들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다.

▲ 천왕사 가는길...
ⓒ 김강임
충혼묘지 주차장에서 다시 한번 숨고르기를 하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스님의 목탁소리가 구구곡에 울려 퍼진다. 산 속에서 듣는 스님의 목탁소리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구구곡을 타고 내려오는 계곡의 설경에도,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겨울나무에도 모두 의미가 있을 것 같은, 그래서 길떠남은 늘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던져준다.

산사 입구에서 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눈썹에 묻어 있는 눈을 털어내는 작업은 마치 내 자신을 가다듬는 수행과도 같은 것.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찌들어 있는 욕심과 허영의 때를 마저 벗기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꽁꽁 언 천왕사 약수
ⓒ 김강임
천왕사의 약수터는 꽁꽁 얼어버렸다. 지난 여름, 콸콸 쏟아지는 약수 물을 병에 담아 꿀꺽꿀꺽 마셨던 생각이 난다. 정말 그때 물을 마신 것일까? 아니면 갈증을 마신 것일까?

▲ 너무 크지 않아 내 마음을 받아 줄 수 있을것 같은 착각
ⓒ 김강임
천왕사. '하늘이 가까워 천왕사'라 불렀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눈 속에 묻힌 산사의 풍경이 한 눈에 다가온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절집의 풍경. 그리 크지 않아서, 그리 웅장하지 않아서 내 마음을 쉬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진다.

▲ 석등에도 흰눈이...
ⓒ 김강임
조계종으로 1955년 비룡스님이 창간한 천왕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다. 그러나 가을 천왕사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 중생의 마음까지도 빼앗아갈 만큼 아름답다. 특히 천왕사 주변 아흔아홉골 골짜기는 제주 4·3의 영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 동자승과 바위
ⓒ 김강임
겨울산사는 여유와 아늑함이 있다. 바깥세상의 소란을 잠시 접어두고 대웅전 앞의 돌계단을 올라가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왕사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천수경 소리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눈썹의 눈을 털어내리듯 마음 속에 찌들었던 묵은 때를 벗겨보는 시간이다.

▲ 기암괴석은 마치 부처인양
ⓒ 김강임
중생이 쌓아 놓은 돌탑에도, 아흔 아홉 골을 지키는 기암괴석에도 하얀 눈이 쌓여 있다. 마치 신선의 콧수염처럼, 신선의 백발처럼, 아니 부처님의 자비로움처럼 말이다.

▲ 중생의 마음인양
ⓒ 김강임
천왕사의 지붕 끝을 부여잡고 있는 풍경에 내 마음을 담아 본다. 의미를 부여하며 달음박질치며 달려왔음에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중생의 어리석음.

▲ 고드름은 풍경소리의 의미를 알까?
ⓒ 김강임
대웅전 지붕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드름은 저 풍경소리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고드름 아래 장식한 매화를 보는 순간, 깨달음을 향해 대웅전 문을 열고 부처님 앞에 선다. 백팔 배. 오랜만에 부처님 앞에 머리 조아리니 등에서는 후줄근 땀이 흐른다.

덧붙이는 글 | 천왕사 찾아 가는길은 제주시-1100도로(99번도로)- 신비의 도로- 충혼묘지 주차장-천왕사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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