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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밤 11시경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참가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처리를 내년으로 미룬다'는 내용이 포함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문이 전달됐다. 국회앞에서 농성중인 집회 참가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합의문 내용을 듣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밤 11시경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참가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처리를 내년으로 미룬다'는 내용이 포함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문이 전달됐다. 국회앞에서 농성중인 집회 참가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합의문 내용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12월 29일 밤 국회의사당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대형 촛불 상징물.
지난해 12월 29일 밤 국회의사당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대형 촛불 상징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여야는 '상생'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지만 국가보안법 처리를 놓고서는 무색할 따름이다. 지난해 여야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국보법 처리를 위해 진통을 겪었고 2월 임시국회로 처리를 미뤘지만 합의 처리는 불투명해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이튿날 곧바로 한나라당 지도부와 접촉을 갖는 등 2월 임시국회 운영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보법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다만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룬다'는 여야 합의는 유효하다"는 원론적인 견해만 내놓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해 연말 여야 원내대표단의 협상안에 기초, 쟁점사항이었던 법명을 바꾸고 찬양고무 조항의 삭제를 들어 "우리가 양보할 것은 다 양보했다, 하지만 폐지만은 안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어설프게 손대느니..."
'폐지 후 형법보완' 당론과 '2월 처리' 사이에서


정세균 신임 원내대표는 25일 집행위원회의에서 "국민들께서는 작년 정기국회처럼 걱정을 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당과의 상생 정치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2월 임시국회에서 국보법 문제를 다루기로 한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 원내대표는 전날(24일) 원내대표 선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야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표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곧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만나서 의논하겠다"며 "'폐지 후 형법보완'이라는 우리당의 당론은 그대로 유효하고 여야합의도 유효하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원혜영 신임 정책위의장은 2월 임시국회에서 국보법이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 의장은 25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 <열린 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당 당론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여야간에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되 이것을 무리해서 강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또 "여야간 합의를 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만 담을 수 있다면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 형식과 내용의 변화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당론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폐지 연내처리'를 주장했던 의원들이 오히려 2월 처리에 부정적

당내 의원들 내에서는 2월 임시국회에서 국보법에 대한 논의는 하되 처리는 미루자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보법 폐지 연내처리'를 강하게 주장했던 당내 개혁강경파 의원들의 변화 양상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386 출신인 임종석 의원은 "당론대로 하자면 한나라당이 또 막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힘들지 않겠느냐"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유기홍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라며 "지금으로서는 2월 임시국회에서 국보법 문제를 다루기로 한 합의를 한나라당이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240시간 의원총회' 소속이었던 장영달 의원측도 "전면적인 싸움을 벌이고 이슈화시키기에는 당내 동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우원식 의원은 "지난해에는 묵은 과제를 털어내기 위한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연내 폐지를 주장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폐지 문제를) 항상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2월 국회 법사위에서 정상적으로 논의와 토론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고, 처리는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며 "남북문제 등의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금년 내에 (폐지를 논의할 수 있는) 일정한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지난해 강행처리는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고, 어설프게 손을 대서 사문화된 국보법에 생명력을 집어넣느니, 차라리 그냥 놔뒀다가 적절한 시점을 보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안영근 "당론을 계속 유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당내 중도·보수 성향 의원 모임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 소속의 안영근 의원은 "당론을 계속 유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당론부터 해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당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폐지안이든 형법보완안이든 대체입법안이든 본회의에 제출해서 자유투표를 해 결정하면 2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원내대표단이 구성되면 조만간 연찬회를 열어 국보법 처리 문제 등 2월 임시국회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정책위의장이 25일 오후 취임 인사차 염창동 한나라당사를 방문해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와 '무정쟁협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정책위의장이 25일 오후 취임 인사차 염창동 한나라당사를 방문해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와 '무정쟁협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다 양보했다, 더이상은..."
지난 연말 김덕룡 원내대표가 합의한 협상안에서 요지부동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 김덕룡 원내대표가 '열린우리당과 코드가 맞다'는 비난을 자처하면서까지 이끌어낸 협상안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여야 원내대표단은 마라톤 협상 끝에 대체입법안에 합의했지만 여당 의원들이 추인을 거부해 무산됐다.

당시 논의된 대체입법안은 법명을 '국가안전보장법'으로 바꾸고, 현행 국보법 2조 가운데 반국가단체를 '국가안전침해단체' 등의 표현으로 완화하고, 7조의 찬양고무죄를 삭제한 뒤 선전선동죄로 국한한다는 것이 골자. 하지만 한총련 등을 규정하고 있는 이적단체 조항은 그대로 남아 여당측의 반발을 샀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지도부가 합의한 이 대체입법안에 대해 여야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했다. 여당의 중도온건파 의원들은 '폐지 후 제정'이라며 폐지의 상징성이 담긴 만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고, 야당은 '개정'으로 해석, 쟁점조항은 양보했지만 폐지를 막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내용은 똑같은 대체입법인데... 폐지 후 제정? 개정?

지난해 당내 국보법개정안TF에서 활동하며 당론을 주도한 홍준표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지도부가 합의한 대체입법안은 폐지 후 제정이 아닌 분명한 개정안이었다"고 못박은 뒤 "국보법을 폐지하면 현재 법적 제재를 받고 있는 좌익분자들을 다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국보법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자유포럼의 이방호 의원도 지난 연말 협상안은 개정안이었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양보해서 이름 바꾸고, 찬양고무 조항 삭제에도 동의해 주었다"며 "거기서 더 나갈 게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국보법 등 4대 법안 처리과정에서 당의 지나치게 보수화되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소장파·중도파 의원들은 '폐지 후 제정' 대체입법안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다.

푸른정치 소속의 임태희 의원은 연초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보법이 나라의 안보를 지켜주지 않는다"며 "당이 좀더 개혁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대체입법안에서 합의가 될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애초 폐지를 주장했다가 당론 결정과정에서 개정에 합의했던 소장파측도 최근 당의 보수화를 우려하며 국보법 재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4대 법안에 대해 당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사실상 답은 대체입법안으로 나와 있는데 여야가 '폐지'와 '개정'의 명분에 사로잡혀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것 아니냐"며 폐지 후 대체입법안에 동조했다.

'폐지 후 제정'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 솔솔

한 핵심 당직자는 "아직은 소수지만 폐지 후 제정안인 대체입법안에 대해서도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현행 국보법에 의한 시국사범들이 법률적으로 승계된다는 내용이 제정법안에 반영이 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다시 말해 폐지의 명분을 양보한 대신 '사실상 개정'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제정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

공안검사 출신의 한 의원은 이미 이런 내용의 대체입법안을 검토한 뒤 "이상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이 당직자는 전했다.

한나라당은 내달 초 당 소속 의원들이 참석하는 연찬회를 열어 국보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재논의와 당 진로를 놓고 격론을 벌일 예정이다.

한편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 협상과 관련 지난 신년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말 한나라당은 국보법 7조 찬양고무까지 양보했는데 여당이 끝내 폐지를 고집하는 바람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여당의 입장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 연말 원대대표단이 가까스로 합의한 대체입법안에 대해 "국보법에 관한 한 원칙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김덕룡 원내대표가 '이만하면 됐다'고 합의하자고 하고 최연희 위원장도 '상정은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밤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및 직권상정 촉구 촛불대행진'이 열였다.
지난해 12월 29일 밤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및 직권상정 촉구 촛불대행진'이 열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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