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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연극을 지켜가고 있는 에밀레극단 단원들
경주의 연극을 지켜가고 있는 에밀레극단 단원들 ⓒ 권미강
흔히 산을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저기 있으니 오른다"고들 한다. 아주 단순한 이 말 한마디에 담긴 철학의 무게는 살아가면서 각자 터득하리라.

신라 천년의 무게를 가진 서라벌, 경주 땅에는 '연극이 있기에 연극을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극단이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연세가 꽤 됐음직한 1957년이 출생 연도다.

전쟁을 막 치르고 사회적 혼란으로 삶의 여유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연극이라니…. 하지만 연극은 그 시대의 절망스러움을 잠시나마 풀어낼 수 있는 탈출구였으리라.

56년, 첫 단장을 지낸 황동근, 김태무, 이수일씨 등이 주축이 돼 '서라벌극우회'를 만들고는 경주극장에서 <마의태자>를 올렸다. 당시에는 TV도 없고 뚜렷하게 볼거리가 없었던 때라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단장 이애자씨가 직접 분장을 해 주고 있다. 이 단장은  중학교 때부터 에밀레극단에 발을 디딘 경주 연극계의 산증인이다.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3번이나 받았으며 경주연극의 맥을 지켜내는 데 일생을 바쳐온 진정한 경주사람이다.
단장 이애자씨가 직접 분장을 해 주고 있다. 이 단장은 중학교 때부터 에밀레극단에 발을 디딘 경주 연극계의 산증인이다.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3번이나 받았으며 경주연극의 맥을 지켜내는 데 일생을 바쳐온 진정한 경주사람이다. ⓒ 권미강
힘을 얻어 다음해 30명의 단원이 모여 '에밀레극단'으로 정식 창단했고 이후 <원술랑> 등 주로 신라 사극을 무대에 올렸다. 그때 발탁돼 중 2학년의 신분으로 무대에 올랐던 이애자(55)씨는 현재까지 단장을 맡고 있는, 말 그대로 경주 연극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현대의 격동기 속에서 연극은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는 못했다. 특히 재정적인 압박감은 많은 배우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렸고 자연히 극단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년에 한번 정도 올리는 공연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에밀레극단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건 연출을 맡고 있는 이금수(50)씨가 들어오면서부터. 서라벌대 연극과를 중퇴하고 86년 우연히 경주에 왔다가 에밀레극단에 주저앉아버린 이씨는 이애자 단장의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만 믿고 15년째 활동하고 있다.

2004년 마지막 정기공연 작품 <이중생각하>의 한 장면
2004년 마지막 정기공연 작품 <이중생각하>의 한 장면 ⓒ 권미강
거기다 89년 경주시립극단이 창단되면서 150석 규모의 예술극장까지 갖춘 에밀레극단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됐다. 고정 관객만도 2천여명이 되고 전국연극제에서는 2번의 금상과 1번의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이 단장은 최우수연기상을 연거푸 3번 받는 등 대외적인 입지도 다졌다.

총 130여회, 1년에 4편의 고정된 공연을 올리며 20명의 단원(전업배우 13명)이 경주 연극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에밀레극단의 소원은 한가지다. 신라 역사물을 올리는 상설 공연장이 생겨 신라가 지향했던 정신세계를 타지의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에밀레극단 단원들은 '서라벌 밝은 달 아래' 연극을 하고 천년 전 신라의 꿈을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 EXPO 문화사랑 > 1월호에 게재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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