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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저녁
동네의 저녁 ⓒ 김은숙
겨울 시골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둠이 내리면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엄마의 부르는 소리와 언니, 누나의 손에 이끌려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우리 집 굴뚝 연기입니다.
우리 집 굴뚝 연기입니다. ⓒ 김은숙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불을 때고, 사랑 부엌에서는 쇠죽을 끓이느라 아버지가 불을 때십니다. 어린 시절 저는 사랑 솥에 불을 때시는 아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살광에 잘못 들어간 참새를 잡아 구워 먹은 기억도 있습니다.

방 윗목에는 수수대로 만든 고구마광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구마가 가득 차 있어서 손만 뻗으면 고구마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걸 얇게 잘라서 화로에 올려 둡니다. 얇게 저며서 약한 화로불에도 잘 익습니다. 그렇게 익은 고구마를 하나씩 먹으면 간식이 없는 겨울 밤이 맛있게 익어 갑니다.

하루 하루 고구마가 줄어들면 발판을 대고도 고구마에 손이 닿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창칼을 이용해야 합니다. 창칼 끝이 고구마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다행입니다. 칼로 찍어서 고구마를 꺼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꺼낸 고구마를 또 구워 먹고, 깎아 먹고 그럽니다.

겨울 밤 아버지는 윗목에서 꺼치를 짜십니다(저희 동네에서는 '꺼치'라고 하는데 민속 박물관에 가보니 그냥 '자리 짜기'라고 하는군요).

자리 짜기(롯데 민속 박물관)
자리 짜기(롯데 민속 박물관) ⓒ 김은숙
꺼치는 여름 날 밤에 밖에서 잘 때나 담배를 꼴 때, 더운 여름 날 밖에서 식사를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꺼치는 한해 쓰면 너덜너덜해지고 그렇게 되면 땔감이 됩니다.

아버지는 꺼치뿐 아니라 새끼줄도 꼬십니다. 손바닥에 침을 뱉은 후 짚을 몇 가닥 꼬아서 왔다 갔다 하면 단단한 새끼줄이 됩니다. 보기엔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해 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내 어린 시절 겨울 밤이라고 하면 고구마와 아버지의 짚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얼마 전 집에 가니 아버지께서 방에서 짚으로 무언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은 포근했고 따뜻했던 거 같습니다. 지나간 시절이라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아버지가 만드시는 것은 '퉁구미'라고 합니다. 제 보기엔 그냥 바구니지만 쓰임새나 모양에 따라 각기 이름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새끼줄을 길게 꼽니다.

퉁구미 바닥입니다.
퉁구미 바닥입니다. ⓒ 김은숙
이 꼰 새끼줄을 가지고 먼저 바닥을 잡고, 바닥을 다 만든 뒤 새끼줄을 위로 올려서 모양을 만듭니다.

퉁구미를 만드시는 아버지
퉁구미를 만드시는 아버지 ⓒ 김은숙
다음 날 와 보니 퉁구미 외에 작은 삼태기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귀엽습니다. 씨앗 하나 가득 담아서 옆구리에 끼고 밀레의 그림에서처럼 씨를 뿌려도 좋겠습니다. 퉁구미 안에 고양이를 넣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퉁구미와 삼태기
퉁구미와 삼태기 ⓒ 김은숙
요즘은 시골에서도 짚으로 만든 것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오랜만에 짚을 만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 퉁구미도 다른 표준어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삶 속에서 쓰이는 단어 그대로 썼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표준어는 바로 농사꾼이 쓰는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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