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먹이를 찾아 내려온 노루의 모습.
ⓒ 김강임
1월 9일 일요일 아침, 제주산간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되면서 온 섬이 하얗게 변했다. 겨울 산을 오르기 위해 털목도리와 털모자, 아이젠, 장갑, 등산지팡이까지 준비했던 나는 아파트 꼭대기에 숨겨져 있는 한라산 쪽만 바라보았다.

"한라산 전 구간 등산 통제입니다."

유선으로 들려오는 한라산국립공원 담당 직원의 목소리가 아주 얄밉게만 들렸다. 눈 덮인 겨울 산행의 매력을 느껴 본 사람들이라면 눈꽃이 만개한 겨울나무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

한라산 쪽으로 차를 돌리니, 1100도로로 향하는 길은 신비의 도로에서부터 빙판 길이다.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1100도로는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

뒷걸음질치던 자동차는 제주시 노형동 광이오름 자락에 있는 한라수목원에서 길을 멈췄다. 지난 봄, 벚꽃 길을 만들었던 가로수는 눈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 산책로로 이어지는 겨울 숲이 적막하다.
ⓒ 김강임
한라수목원은 제주시민들이 이용하는 5만여 평의 넓은 공원으로 사계절 꽃과 새들이 노래하는 지상낙원으로 알려졌다. 특히 1.7km에 달하는 산책로는 정상과 정상을 잇는 허리에 연결되어 있어 노약자는 물론 생태공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람마다 이름이 있듯이 나무에도 이름이 붙여져 있다. 좀꽝꽝나무, 서어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설원 속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키 작은 나무들, 비록 한라산의 웅장함과 비교는 되지 않지만 겨울수목원은 설원 속에 묻혀 고요하기만 했다.

▲ 계절을 알리는 개나리가 눈꽃에 젖어 있다.
ⓒ 김강임
한라수목원에서 제일 먼저 계절을 알리는 것이 눈 속에 피어난 개나리 꽃잎이다. 시린 꽃잎은 추위에도 떨지 않고 인내로 고통을 이긴다.

▲ 흰눈속에 누워서 자화상을 찍어보고
ⓒ 김강임
하늘을 이불삼아 흰 눈을 요 삼아 자화상을 찍고 있는 모습. 햇빛에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까지도 없어질 것을,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흔적과 욕망을 흔적으로 남기려 한다. 산책로를 따라가니 숲길이 이어졌다. 눈 내리는 날의 숲 속은 정적이 흐른다.

"노루다!"

갑자기 숲 속의 정적을 깨고 앞서가던 일행이 소리를 지른다. 한라수목원 산등성에 숨어 살던 노루는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멀뚱거리며 쳐다만 보고 있다. 한라산에서 겨울먹이 사냥에 나선 노루 녀석들은 제주시에서 가까운 한라수목원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 온 것이다.

▲ 군불을 지피는 빨간 애기동백꽃
ⓒ 김강임
제주의 산과 들에서 자생하고 있는 모든 식물이 한데 모여 사는 한라수목원은 사계절이 숨어 있다. 눈 꽃 속에서 가지마다 군불을 지피는 빨간 애기동백. 그리고 눈꽃에 젖어 나비와 꿀벌을 부르는 노란 꽃잎들이 봄을 기다린다.

▲ 주인을 기다리는 통나무 의자
ⓒ 김강임
소복이 눈 쌓인 통나무 의자는 주인이 찾아 주지 않아서인지 심심하게 겨울을 지킨다.

▲ 통나무 아래에는 가을 이야기가 왁자지껄하다.
ⓒ 김강임
통나무 아래 우수수 떨어졌던 낙엽이 가을 이야기로 왁자지껄하다.

▲ 수도꼭지 아래 고드름이 열렸다.
ⓒ 김강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목을 축이게 했던 수도꼭지에도 고드름이 열렸다. 고드름 하나를 뚝- 따서 입에 물며 우두두둑 씹어보는 재미,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수돗물을 마셨던 여름의 물맛에 비하면 고드름의 맛은 심심하지만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한라수목원의 작은 호수에도 살얼음이 얼었다. 지난 가을 동백처럼 빨갛게 연꽃을 피웠던 그 자리엔 지나간 세월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 눈사람을 스케치하는 겨울아이들
ⓒ 김강임
고향집의 장독대처럼 설원 속에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 시커먼 제주의 돌에도 눈이 내렸다. 그리고 마치 자기 집 안방인 양, 눈 속에 엉덩이를 묻고 깔깔거리며 흰 눈을 뭉치는 겨울 아이들이 눈사람을 스케치 한다.

▲ 꽃과 나비를 기다리는 겨울꽃이 기지개를 켠다.
ⓒ 김강임
노루가 숨어 사는 설원은 꽃과 나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철부지 겨울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흰 눈을 꼬-옥 껴안고서.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9일, 제주지방은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한라산 등산을 계획했지만, 등산로 전구간이 통제되는 바람에 제주한라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먹이를 찾아 한라산에서 내려온 노루를 산책로에서 만났습니다. 3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녔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