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 25 장 독혈군자(毒血君子)

당문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가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문에 외인(外人)을 들이는데 엄격했고 제한적이었다. 며느리는 물론 사위까지도 한 식구가 되어야 했다. 가문의 여식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 당가의 비전을 배우지 않은 딸만이 출가(出嫁)할 수 있었다.

그러한 법도가 그들의 비전을 지킬 수 있게 했고, 그들을 무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독이란 그 과정과 성분만 알면 쉽게 해약을 만들 수 있고, 암기(暗器)란 그 특성을 알고 나면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당문의 몰락을 의미했다.

갈유는 당가에서 보면 성가신 존재였다. 당가의 여식과 결혼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당가에 몸을 담았고, 당가의 명에 따랐다. 헌데 갈유는 그것을 거부했고 자식을 안고 떠났다.

문제는 그의 뛰어난 의술이었다. 그가 당문의 식솔이 된다면 당가의 독술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었겠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당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자였다. 더구나 그가 당문에 머무는 이년여 동안 당가의 비전지독(秘傳之毒)의 대부분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점에서 갈유는 당문의 완맥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갈유에 대한 당문의 시선이 고울리 없었다.

당욱의 찢어진 눈에 파란 불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 하는 것이다. 더구나 도망가고 슬슬 피해야할 갈인규가 많은 무림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놈이...!”

말과 함께 당욱은 손을 올리며 또 다시 갈인규의 뺨을 갈기려 했다. 허나 당욱은 끝내 팔을 내리치지 못했다. 자신의 완맥이 누군가에게 잡혔다고 느끼는 순간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나직한 신음을 흘려야 했다.

“욱...!”
“나는 알량한 가문의 위세로.....”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노기가 흐른다. 듣는 이로 하여금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한기요 거역 못할 위엄도 서려 있다.

퍼--퍽---!
주먹은 여지없이 당욱의 턱과 가슴에 틀어 박혔다.

“더구나 따지고 보면 처음 보는 외사촌 동생인데....”
퍽---!
“으...헉”

이번엔 정강이다. 당욱은 죽을 힘을 다하여 자신에게 주먹세례를 하는 인물을 행해 팔을 뻗으려 했지만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끼며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다짜고짜로 내 앞에서 손대는 것은 도저히 봐 줄 수 없어.”

담천의였다. 일행은 놀랐다. 본래 담천의는 먼저 손을 쓰거나, 지금과 같이 말도 없이 먼저 주먹이 나가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비록 같이 있은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굳이 강요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네 가문의 이기적인 법도(法度) 때문에 어머니 얼굴조차 모르고 자란 네 외사촌 동생이다. 네놈이 사람이라면 차라리 모른 척 하는게 도리이거늘 오히려 어린 가슴에 비수(匕首)를 꼽는단 말이냐!”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갈인규는 처음부터 담천의에게 진심을 보였다. 갈인규는 담천의를 형님처럼 예우했고, 그가 자신의 신세를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천 당문과 갈인규가 어떤 관계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 담천의였다. 담천의는 그래서 갈인규의 슬픔을 알았고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퍼퍽---!

“욱......!”

명치에 박히는 주먹에 당욱은 머리를 바닥에 대며 꼬꾸라졌다. 쓰러지는 당욱은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담천의가 손을 쓰기 시작해 당욱이 꼬꾸라진 것은 눈깜짝할 새에 불과했다.

헌데 그때였다.

파--파--파---!

무언가 담천의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음성과 함께 두개의 신형이 담천의를 향해 내리 꽂히고 있었다.

“당문을 건든 자는 죽는다!”

파파팍....!

담천의를 노리고 쏘아 졌던 암기는 당문 독문암기인 독질려(毒疾藜)였다. 하지만 그것은 담천의의 손짓에 따라 방향이 바뀌면서 모두 기둥에 박혔다. 그것과 동시에 빛살처럼 다가들던 두개의 신형은 담천의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허공에서 줄 끊어진 듯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욱...!”
“헉....”

나직한 비명 소리와 함께 가사를 날리며 제 자리로 돌아오는 혜청(慧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급작스런 일이어서 어떻게 손을 쓴 것인지 제대로 알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미타불...... 소승의 사부께서 이르시길 이 분을 보고 따라 배우라 했으니 이럴 수 밖에 없었소. 소승으로서는 부득이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으니 용서를 바라오.”

때려 놓고 합장을 한 공경한 자세다. 저렇듯 예의바른 승려가 정말 두 사람에게 손을 썻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혜청의 장난끼를 알고 있는 팽악의 얼굴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들이 보면 수양이 깊은 승려라 하겠지만 이미 팽악과는 허물이 없이 짖궂은 장난까지 치는 사이다.

하지만 혜청의 한수는 좌중의 인물들에게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그들이 보기에 분명 소림의 무공이다. 소림에 저렇듯 기이한 청년승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 본 바도 없거니와 나이답지 않은 무위는 소림이 왜 무림에서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깨달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이런....땡중이...”

혜청에 의해 나동그라진 두 인물이 가까스로 신형을 가누며 이를 갈았다.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당문의 다음 대를 이어갈 자신들이다.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혜청에게 두 사람이 당했으니 그들의 분노는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신형을 바로 세우고 혜청을 노려보았다.

상대는 강하다. 분명 손속에 정을 두었기에 자신들이 일어 날 수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비장의 암기와 독이 있었다. 그들이 손을 쓰려하자 뒤에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오너라!”

나직한 음성이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진탕시키는 진력이 실린 목소리였다. 뒷짐을 지고 서서히 걸어오는 자세도 범상치 않고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도 태산과 같다. 오십대 전후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평범했지만 이 무림에서 그를 무시할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독혈군자(毒血君子) 당일기(唐逸奇)
현 당가 가주인 당일천(唐逸天)의 동생으로 그의 몸에는 한 방울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독혈(毒血)이 흐른다. 그의 몸은 곧 독이요, 죽음이다. 허나 신중하고 예의가 있어 사람들은 그를 군자라 했다. 더구나 그는 당가 최고의 비기인 만천화우(滿天花雨)를 극성까지 익혀 독공에 있어 현 가주를 능가한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가 다가오자 구양휘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된 기색이 떠올랐다. 독혈군자 당일기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자신을 건든 인물들을 용서해 본 적이 없는 냉혹함을 가진 당문의 최고고수였기 때문이었다.

“곡(谷)과 건(健)이는 욱이를 부축해 자리로 돌아가거라.”

그 말에 아직도 혜청을 공격하려고 자세를 풀지 않았던 당곡(唐谷)과 당건(唐健)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늘어뜨리며 바닥에 꼬꾸라져 있는 당욱을 양쪽에서 부축해 일으켰다. 당욱은 아직도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