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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아내가 준수의 간병을 위해 집을 떠난 지 4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집을 돌봐주던 조카마저 떠난 뒤에 집에는 광수와 달랑 둘이 남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광수도 나도 방학을 맞아 조금은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지어 먹이고 청소하고 입던 옷 벗겨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은 이제 몸에 익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내가 집을 떠난 후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알뜰한 아내가 지켜주던 때에는 항상 잘 정돈된 집이었지요.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집에서는 늘 은은한 향내가 풍겼습니다. 아내는 대추차를 좋아했습니다. 아내가 끓이던 대추차의 은은한 향내는 온화한 우리 가정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내가 집을 떠난 후 집안이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입니다. 아내가 끓이던 대추 향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집안 곳곳에서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5년 넘게 자취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광수와 마주앉아 먹어보지만 그때마다 늘 허전합니다. 아내가 해주던 맛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며칠 묵혀두었던 빨래거리 모아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습니다.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세탁기 주변이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버릴 것은 모아 버리고 쓸만한 것은 차곡차곡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선반에 올려져 있던 박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박스 안에는 꽤 많은 감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싹이 나 있었습니다. 손톱만한 작고 귀여운 싹이 난 게 아닙니다. 이미 싹이 난지 오래 지나 보라색 줄기가 길쭉하게 자라 있습니다.

ⓒ 이기원
아내가 있었으면 감자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 겁니다. 아내는 감자전을 잘 만들었습니다. 강판에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의 고소한 맛은 일품입니다. 비라도 내리면 밀가루 반죽을 해서 듬성듬성 떼어 넣고 감자 썰어 넣고 수제비도 잘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후 감자는 모두 싹이 나고 말았습니다.

싹이 난 감자를 보니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실감이 나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베란다 밖으로 찬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집니다. 우울해진 가슴으로 찬바람의 비명이 사정없이 달려듭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아프게 눈에 밟힙니다.

ⓒ 이기원
싹이 난 감자로 마땅히 할 게 없었습니다. 싹을 도려내고 먹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감자 싹을 잘라내서 유리병에 담아 길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집에 있는 화분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하나둘 죽어가는 판에 감자싹을 기른다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양동이에 감자를 담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습니다. 빈 양동이를 들고 돌아오는 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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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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