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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 쓴 생태찌개에 이어, 오늘 이야기도 예전에는 선호하지 않았지만, 어떤 집에서 맛을 본 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음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발라먹기가 생선보다 훨씬 힘들고, 딱딱한 껍질을 자근자근 씹을라치면 이빨이 아플 때가 많아서 그냥 내던지곤 했던 음식, 아까운 걸 왜 그렇게 밖에 먹지 못하느냐는 아내의 눈총과 핀잔을 가장 많이 받던 음식, 바로 게장, 그 중에서도 간장게장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산과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나는 결코 공감하지 못하는 말 중 하나가 ‘이 음식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같은 감동적인 맛이야!’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는 음식을 만드시는 솜씨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7년 결혼을 하기 전까진 솔직히 게장이란 음식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처갓집 식구들은 음식을 해 먹는 걸 좋아하고 외식하는 걸 즐겨서 아내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음식을 섭렵했다. 특히 장모님이 게장이라도 하시는 날이면 늦게 들어오던 아버님과 아내, 처제 모두 그 날만은 일찍 들어와 푸짐한 게장과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았다고 할 만큼 나와 아내가 겪은 음식환경은 천지 차이였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음식에 눈을 떠 음식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 동안 먹어보지 못했거나 알았지만 좋아하지는 않던 여러 음식들을 재발견해가며 나를 살찌워가고 있다.

게장이라는 음식은 방송을 하는 나에겐 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순간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자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라는 뜻이리라.

게장 골목이라 할 수 있는 신사동에는 유명한 간장게장 집들이 있다. 이곳 간장게장에서 명성에 비해 높은 만족을 얻지 못한 나에게 ‘아! 간장게장이 이런 맛이구나!’를 느끼게 한 집이 있으니 경복궁 맞은 편 골목 안에 있는 <큰기와집>이라는 한정식집이다.

일찌감치 어머니에게 한식 요리를 전수받아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한정식을 맛깔스럽고 고집스럽게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이 한영용씨. 서울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이제 7년째 접어들지만 그 전에는 안동에서 쭉 전통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이 집 간장게장 맛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간장게장을 입에 넣었을 때 맛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장이 좋다는 것이다.

한국 음식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장이다. 양념은 거기에 플러스알파 정도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재료가 좋으면 양념은 그다지 필요없다. 양념은 그저 바다에서 난 것들이라면 비린내를 제거하고, 고기는 노린내를 제거하는 정도면 된다. 사람도 화장은 하지 않은 척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듯이 음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엔 왜 그렇게도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요즘처럼 새빨간 김치는 없었고, 참기름도 한 두 방울이면 충분했다. 이 얘기는 당시에는 장이 좋았으니까 굳이 양념을 많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원칙으로 간장게장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영용씨의 원칙이자 신념이다.

▲ 간장게장
ⓒ 김영주
일단 간장은 맑고 깨끗해야 한다. 달아선 안 되고 짠 맛은 있으나 나타나진 않아야 한다. 게의 독특한 향과 풍미가 살아야 하고 간장의 맛과 어우러져야 한다. 간장게장 역시 우리 음식의 특징인 발효식품이다.

그렇다면 간장게장의 핵심인 간장을 이 집에서는 어떻게 만들까. 1차는 7년이라는 세월의 숙성을 거치는데 적어도 7년이 돼야 불순물이 빠지면서 나쁜 짠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2차는 약재를 넣어서 달이는 과정인데 이 간장으로 비로소 게장에 쓴다고 한다.

물론 게에서 나오는 수분에 의해 간장의 농도가 약해지는데 이 경우 계속 끓인 덧장을 붓는다. 이런 과정이 일곱 차례나 계속된다. 이 집 뒤쪽에 가면 장독대가 있는데 7년 숙성된 간장, 5년 숙성된 간장 등으로 구분돼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7년이 필요한 것일까. 하늘 기운, 땅 기운을 먹는 시기가 바로 7년이라는 조상의 지혜도 지혜지만 자신이 실제로 해보니까 7년은 돼야 하더란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게다. 게는 서산 꽃게를 쓰는데, 참게는 크기가 작고 살이 별로 없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대중음식점을 하는 처지로서 꽃게만 쓰고 있다. 여름은 꽃게, 가을은 참게가 맞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풍성한 맛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꽃게만 쓴다는 것이다.

참게로 담근 게장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도 지난 가을 임진강 쪽으로 가서 참게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별로 먹을 게 없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금방 수긍이 갔다.

좋은 꽃게의 기준은 몸체가 선명해야 하고, 색이 밝아야 하며, 다리가 떨어지지 않고, 게 눈이 선명하고, 살아있어야 한다. 게 뚜껑 주변이 선홍색인 것이 알이 찬 것이다. 게는 원칙적으로 칼을 대면 안 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게를 간장에 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다리를 손질한다. 양념이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념이 많다는 건 음식에 자신이 없다는 것. 장이 맛있기 때문에 양념은 많이 넣지 않는다. 대신 약재를 많이 넣는데 동충하초, 대추, 황기, 산초(독을 푼다), 귤껍질(진피), 황정, 결명자, 도라지 등을 넣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집에서는 양념게장은 하지 않는 것일까. 맞다. 한영용씨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양념게장은 진정한 게장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담그는 간장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집마다 장맛이 다르듯이 집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장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다만 직접 장을 담그는 맛 집들이 점점 사라져 가기 때문에 자신이 돋보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간장게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이는 게 30%, 양념 30%, 숙성 30%, 손맛 10%라고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이란 입에 넣으면 각 재료의 맛들이 다 살아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미료는 맛을 다 죽인다며 마지막까지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식문화는 다른 문화와 달리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기에 우리는 결국 한식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있는 ‘큰기와집’에서, 간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간장게장의 힘을 알게 되어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02-722-9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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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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