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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서울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기 당대회. 이날 당대회에서는 자주통일 계열 위주의 최고위원회가 선출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현재 민주노동당 홈페이지(www.kdlp.org) 당원토론 게시판에서는 당 역사상 최초의 온라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시위자들은 말머리에 '부당해고 철회'라는 슬로건을 달고 있다.

이 시위는 '편집위원회 인준의 건'이 상정되는 12일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당 기관지인 월간 <이론과 실천> 최영민 편집장 교체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대립은 정파로 통한다?

정성희 기관지위원장이 최 편집장 교체에 내건 이유는 '대중지로서의 기관지 혁신'이지만 이번 논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핵심은 '정파'다. 정 위원장은 교체계획을 통보하면서 "(정파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고, 당내 좌파 계열은 '자주통일 계열이 최 편집장과 이광호 <진보정치> 편집장을 내치려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당사자인 최 편집장은 지난 1월 5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제 거취에 상관없이 걱정되는 것은 이번 논란을 정파들의 대리전처럼 보는 시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런 태도에서는 정파간의 엇갈린 승패만이 눈에 보이게 되고 '힘을 기르자'는 교훈만이 남겠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에도 민주노동당은 크고 작은 정파간 대립을 겪었다. 하반기 소위 '2중대 문건'이라고 불린 문건 파동이 있었고, 연말에는 '국보법 올인 논쟁'이 있었다. '여성당직자 폭행사건'도 가해자가 속한 정파를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됐다.

심지어는 올해부터 실시되는 출근부 제도를 둘러싸고 '국보법 올인을 반대했던 특정 정파에 대한 탄압'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면 '이게 왜 정파문제인가'를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정파간 논쟁에서 정책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2중대 문건'은 당의 전략과 노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에 대해 일선 지역위원회 위원장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건은 문건 유출자를 색출해 경고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유출 당사자는 최고위원회의 경고에 반발하고 있어 문건파동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반한나라당 전선'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국보법 올인 논쟁'에서 정파간 노선 차이가 드러나는 듯했다. 당시 이재영 정책실장이 "당이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매몰되어 민생투쟁을 등한시했다"며 지도부 노선에 정면도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연말 국보법 정국이 이어지면서 게시판 논쟁에 그쳤다. 최고위원회는 이 실장을 불러 문책하고 이 실장의 글을 인용한 <조선일보>의 취재를 제한했다.

정작 정파간 정책경쟁은 드물어

▲ 지난 12월 31일 강기갑, 권영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등과 당직자들이 31일 새벽 국회 145호실 야합저지 개혁관철을 위한 민주노동당 의원단 농성장에서 잠을 자고 있다. 지난 연말 민주노동당내에서는 국보법 투쟁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노동당의 정파는 계파와는 달리 동일한 정책 노선으로 뭉친, 말 그대로 '의견 그룹'이다. 당내 정치도 엄연한 '정치'의 영역이니 정당이 국민들에게 좋은 정책을 인정받아 집권하듯 정파도 당원들에게 좋은 정책과 노선을 제시해 인정받아 당권을 잡으면 된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정파 문제'다.

당내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저 사람은 어느 정파냐"고 다른 당직자들에게 확인해야 한다. 다른 당처럼 '안개모'니 '국정연'이니 하는 뚜렷한 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주요 의제를 둘러싼 정파간의 입장 차이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는 국보법을 놓고 대체입법이다, 형법보완이다, 말이 많지만, 민노당에서는 국보법 올인에 반대하는 정파도 국보법 완전폐지라는 당론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많은 의원들과 당직자들 역시 "정파간 정책경쟁이 안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운동하다가 만난 옛날 인연으로 노선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회찬 의원은 '국보법 올인 논란'에 대해서 "민생문제에 대해 주장만 있었지 제대로 기획을 내놓은 적이 있었냐"며 "각 정파들이 정책 관철을 목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정책을 수단으로 삼아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당직자는 "아직 정파들이 운동권 질서와 문법에만 익숙해 정치현안을 놓고 싸우는 데에는 미숙하다"며 "시간이 지나 훈련을 거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 다른 당직자는 "서로의 불신이 깊고 조직의 세 대결이 워낙 오랜 '전통'으로 굳어져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전망이든 당장 12일 중앙위에서는 최영민 편집장의 우려대로 기관지의 발전전략보다는 '정파간의 엇갈린 승패'만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최 편집장을 교체하려는 또는 유임시키려는 각 정파의 '선수'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는 것이 여러 당직자들의 전언이다.

"이념과 그에 따른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정치공세용으로만 이념논쟁을 하기 때문에 논쟁의 구도가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이념논쟁에 대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지적이다. 그리고 이같은 지적은 안타깝게도 '정책정당'인 민주노동당 정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부디 을유년 새해에는 국회 안에서도,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활발한 정책경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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