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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대웅전
송광사 대웅전 ⓒ 김학수
송광사는 우리 나라 전국 사찰 중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로도 정평이 나있다. 국보 제42호인 목조삼존불감, 국보 제43호인 고려 고종제서, 보물 제572호인 수선사형지기, 보물 제1366호인 화엄탱화, 보물 제1376호인 티베트 문법지 등을 보유하고 있다.

또 기타 동산 문화재(動産 文化財)와 고문서(古文書), 전적류(典籍類)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수(補修)와 보존 처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는데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송광사 우화각
송광사 우화각 ⓒ 김학수
송광사 아래 마을 사람들은 경대평(京垈坪)에서 송광사 쪽의 산골을 '송광굴' 또는 '송강굴'이라 부른다. 원래 송광사가 위치하고 있는 순천의 송광면은 송광사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이는 곧 '송광사(松廣寺)가 있는 면(面)이다'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불리워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로는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으로, 곧 송(松)은 十八(木) + 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 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뜻이다.

둘째로는 보조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송광사 건너의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고 풀이 했다고 한다.

셋째로는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서 '솔메'라고 불렀고 그러함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솔갱이는 솔(松)의 전라도 지역 사투리다.

그렇다면 송광사(松廣寺)와 송광면(松光面)은 그 뜻이 왜 다르게 표기되어 쓰여질까? 순천 문화원의 진인호 부원장의 향토사료집에서 그 두 가지 연유를 알아볼 수 있다.

1760년에 편찬한 여지 도서와 1864년에 펴낸 대동지에는 송광면(松廣面)이라 적었으니, 1912년 조선 총독부 행정 명칭 일람에 송광면(松光面)이라 적은 것은 일제가 송광(松廣)을 송광(松光)으로 개칭한 것이 아니냐는 것.

아니면, 그 전부터 절과 마을의 이름을 달리하기 위해서 절의 이름은 송광(松廣)으로, 면(面)의 이름은 송광(松光)으로 쓰기 시작하였는데 지적부에 송광(松光)으로 등재되면서 법정 지명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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