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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한 정구지 밭은 생명이 숨쉰다
파릇파릇한 정구지 밭은 생명이 숨쉰다 ⓒ 추연만
매서운 겨울날을 헤치고 자란 파릇파릇한 '정구지(부추)'가 가득한 비닐하우스에서는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겨울날을 이겨낸 청록의 자태는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상큼한 정구지 향은 코 끝을 자극해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수확하러 온 아주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가 뒤섞여 정구지 밭의 아침은 더욱 활기차다.

“처음 벤 정구지는 사촌도 안 주니더. 첫물이 제일 맛있고 몸에도 좋지요. 그라고 정구지는 포항 것이 최고 아인교?”

정구지란 명칭은 ‘정월에서 구월까지 먹는다’는 말에서 생겼으며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경상도는 ‘정구지’, 충청도는 ‘졸’, 제주도는 ‘쇠우리’ 그리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솔·소풀’로 불린다. 그밖에도 게으름뱅이 풀, 양기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낫으로 베는 손놀림. 1년에 4회 수확한다
낫으로 베는 손놀림. 1년에 4회 수확한다 ⓒ 추연만
'부추'가 표준어인데 '정구지'란 경상도 사투리도 많이 쓰인다. 현재 포항 지역에서는 연간 5500여톤 가량이 생산되는데 전국 생산량의 약 80%에 이른다.

예로부터 시골 밥상에는 정구지가 단골 반찬으로 등장했다. 자그마한 텃밭에도 심을 수 있으며 많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난다. 뿌리만 남겨 두면 잎을 베어도 곧 새잎이 돋아나 봄, 여름 동안 여러 번 베어 먹을 수 있다.

이른 봄의 첫물 정구지 맛은 일품이다. 흙의 기운을 타고 나 맛과 향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물론 흙을 뚫고 나오기 전의 어린 것은 약재로 쓸 만큼 최고로 꼽으며 정구지 꽃대가 올라갈 때의 맛도 좋다고 한다.

포장한 정구지는 서울로 간다(왼쪽). "손이 저울 아닌교" 단 묶는 솜씨(오른쪽)
포장한 정구지는 서울로 간다(왼쪽). "손이 저울 아닌교" 단 묶는 솜씨(오른쪽) ⓒ 추연만
"포항 정구지 맛이 좋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죠. 겨울에도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습기가 적당한 모래밭이 정구지 생산의 최적지입니다. 깨끗한 지하수가 풍부해 고품질 정구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밭 주인인 김형두씨의 설명이다. 서울 가락동 시장에 보낼 ‘상품’을 만들기 위한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진다. 낫으로 정구지를 베는 사람들과 400그램 무게로 단을 묶는 사람, 그리고 상자 포장하는 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레 맞물려 돌아간다.

"어떻게 무게를 재느냐고요? 손이 저울 아인교?”

손으로 정구지를 한 웅큼 쥐고 단을 묶어 저울에 올리면 바늘이 정확히 400그램을 가리킨다. 숙련된 솜씨가 놀랍다.

수확은 협동 작업으로
수확은 협동 작업으로 ⓒ 추연만
“참 묵고 하시더! 퍼떡 오소.”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안주인이 내놓은 새참은 떡국이다. 일한 뒤에 먹는 떡국은 별미. 떡국 그릇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노동의 피곤함도 뜨끈한 국물에 녹여 사라진다. 작업한 상자는 서울로 가는 트럭에 옮겨지고 아주머니들은 또다시 내일 물량을 위해 정구지 밭으로 몸을 숨긴다.

“꼭 먹어 보라"며 안주인이 챙겨 준 정구지의 상큼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철강공단이 있다는 이유로 포항 정구지가 ‘농산물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밭주인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새참을 먹는다
새참을 먹는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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