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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다.
1월 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해 12월 30일 김덕룡 원내대표가 국보법 대체입법안을 포함한 3+1 협상안(4대 개혁법안 중 '사학법'만 2월 임시국회로 넘기는 안)을 들고왔을 때, 김용갑 의원은 눈물을 흘렸다. 그 뒤 의원총회장을 박차고 나와 김 원내대표를 겨냥해 "그쪽(열린우리당)과 코드가 똑같다"고 비난했다. 국보법 7조의 찬양고무를 삭제하고 선전선동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국보법 협상안을 들고온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반면 김 의원은 박근혜 대표에 대해 "그동안 박 대표가 있어 (국보법 폐지를) 막아왔는데 박 대표는 지금 매우 침울하다"고 적극 감쌌다. 찬양고무 조항에서 '공공연한 찬양' 표현을 고집한 박 대표는 "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김덕룡 원내대표가 '이만하면 됐다'고 합의하자고 하고 최연희 위원장도 '상정은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협상안에 불만을 표시했다.

12월 31일 도출된 국보법과 사학법을 내년으로 미루는 2+2 방식의 협상안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불만이 컸다. 이 협상안에 대한 추인 여부를 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 대표는 "과거사법에 나는 '북한정권' 용어를 넣으려고 했는데 원내대표의 생각은 달랐다"고 책임을 원내대표에게 돌렸다.

박 대표는 과거사법 조사대상과 관련해 줄곧 민주화운동 세력의 '친북활동'이나 '이적활동'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상임위와 여야 실무진 협상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표현을 완화해 조사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절충안이 나왔지만 끝까지 '친북·이적활동'이란 표현을 고집했다.

이규택 최고위원은 이런 박 대표를 적극 뒷받침했다. 이 최고위원은 "5·16 등 과거 군사정부하 문제들이 제기될 게 뻔하다"며 "그러면 누가 그 상처를 받겠나, 결국 박 대표에 대한 시비붙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파병연장동의안을 조건부로 내세워서라도 "과거사법 처리를 연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와 한나라당 보수강경파 의원들의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인권침해'가 문제될 경우 '친북·이적활동' 조사를 내세워 역공을 취하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김원기 의장의 중재안 추인을 놓고 박근혜 대표가 이규택 최고위원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김원기 의장의 중재안 추인을 놓고 박근혜 대표가 이규택 최고위원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4자회담의 유일한 생존자?

결국 4대 개혁법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은 신문법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내년으로 미루는 방식의 1+3 협상안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박 대표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이미 '누더기법'이라는 오명을 달고있는 신문법에 대해 고흥길 의원은 "신문법이 통과되면 탈당하겠다"고 거세게 항의했고, 박 대표는 고 의원을 달랬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조·중·동)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도입하는 것과 관련해 박 대표는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찾아볼 수 없는 법이다,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의원들에게 '당론 반대'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날 처리된 신문법은 국회 문광위에서 수차례 논의를 통해 도출된 여야 합의안이었다.

3+1 → 2+2 → 1+3 등 4대 개혁입법의 줄다리기 협상이 진행되면서 양당 지도부는 '책임론'에 휩싸였지만, 박근혜 대표만은 건재해 보인다. 4자 회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임시국회 막바지 박 대표가 보여준 리더십에 대해 당내 평가는 관대하지 않다. 유연성보다는 경직성, 미래보다는 과거, 개혁보다는 보수에 가까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소장파와 비주류 의원들은 박 대표가 보수로 우회하고 있다고 판단, 비판적 거리 유지를 통해 세력화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한 소장파 의원은 "박 대표가 보수강경에 휘둘릴 경우 당이 두 개로 쪼개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준표 의원은 "당의 보수이미지가 강화되었다"고 우려했다. 특히 홍 의원은 보수강경파측에서 김덕룡 원내대표 인책론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박 대표의 교섭력보다 DR의 유연성 더 부각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대표가 계속 고집부렸으면 될 일이었나"라고 박 대표의 협상태도를 비판했다.

또한 박 대표가 불만을 표시한 과거사법 협상과 관련 "협상이라는 것이 서로 양보하는 것 아닌가, 우리 것만 주장할 수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 대표가 보여준 협상력과 관련해 일각에서 영국의 '대처' 수상에 견주는 것에 대해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문헌 의원은 "잘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전반적으로 대표가 강경파에 휘둘린 인상"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원칙에 입각한 순수성을 신뢰가 가지만 (의견을 취합하는) 당내 채널이 다양하지 않은 것 같다"고 리더십 '보완'을 주문했다.

국보법 상정을 막기위해 점거농성중인 법사위회의실에서 열린 의총에서 고진화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국보법 상정을 막기위해 점거농성중인 법사위회의실에서 열린 의총에서 고진화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고진화 "차라리 영남당을 만들라"

고진화 의원의 비판은 좀더 직설적이다. 고 의원은 박 대표의 보수회귀화를 강하게 우려하며 "차라리 영남당을 만들라"고 쏘아부쳤다. 고 의원은 지난 4자회담 협상과정과 관련해 "제2 창당에 버금가는 당 쇄신을 구상하고 있는 박 대표가 김덕룡 원내대표보다 더 전향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며 "하지만 기존의 당 분위기와 상임위에서의 합의안마저 뒤집는 아집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당 국보법개정특위에서 논의될 당시 찬양고무 조항을 선전선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음에도 박 대표는 이를 무시했다. 대표적인 우익인사라 할 수 있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마저 '폐지 후 대체입법'을 주장하지 않나. 그만큼 국보법 폐지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박 대표는 그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어 고 의원은 과거사법과 관련해 "개인의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의 당 정체성을 털고 외연을 확대하는데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수요모임의 이성권 의원은 "외연상 박 대표의 승리로 보이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고 분석했다. 여야 힘겨루기라는 정치논리로 따지면 크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지만, 국민의 시각에서 보자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것.

"4대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 여당을 상대로 한 강경투쟁, 반대당의 이미지가 부각되었다. 과거 정치권의 논리에 경도되어 상생 국회, 생산적 국회를 선도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강경파가 지배하는 당 구조 속에서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호평은 어불성설이다."

이어 이 의원은 4대 개혁법안 협상과정에서 불거진 박근혜-김덕룡 간극에 대해 "가치관과 방법론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원내대표 인책론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호도하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3인방으로 불리는 '남경필-원희룡-정병국(남원정)'은 이달말 완료될 당 쇄신 작업과 관련, 당직참여에 유보적인 자세를 보이며 박 대표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일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김덕룡 원내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날 저녁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은 사표를 제출한 임태희 대변인과 박진, 권영세 등 수도권 출신 온건개혁파 의원들과 회동을 갖고 당 쇄신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본격적인 '박근혜당'으로 거듭날 한나라당의 당 쇄신 진용이 어떻게 꾸려질지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중 박근혜 대표와 남경필 수석부대표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뒤로 원희룡, 정병국 의원이 중진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중 박근혜 대표와 남경필 수석부대표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뒤로 원희룡, 정병국 의원이 중진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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