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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들처럼 끊었다 실패하고, 다시 굳은 결심을 하고 끊었다 며칠 못 가 또 피는 등 무던히도 금연을 하려고 애를 썼던 적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맛있는 담배를 왜 끊냐(아직도 이런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종종 듣게 된다)며 틈만 나면 피워댔고, 직업이 방송작가라는 이유를 자기 합리화에 가져다 써서 어떻게 하면 담배를 멋있게 피울 것인가, 몸에 좋지 않은 건 확실하긴 한데 혹시 허준에 따르면 정성은 독도 약으로 만든다는 말도 있던데 담배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쥐고 한 모금 한 모금을 정성껏 핀다면 혹시 약이 되진 않을까, 또는 건강에 좋은 담배를 분명히 어디서 누군가가 만들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 세상에 백해무익한 게 어딨어! 최소한 구십구해일익은 있지 않겠어? 등등 지금 돌이켜 보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하루에 평균 두 갑 이상 담배를 피웠던 사람이다.

또 내가 도저히 이해를 못했던 부류의 사람은 담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내 주변에 아주 극소수 있었는데 이들은 하루에 담배를 피워봤자 고작 서너 대 정도였던 것이고 술자리를 가서야 반 갑이나 겨우 필까 하는 외계인 같은 존재들이다.

혹시 담배의 진정한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며 유심히 피는 모습을 관찰하곤 했는데 그들도 연기를 목구멍 깊숙이 넣곤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들과 연결해서 내가 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담배를 끊으려면 끊지, 줄이는 건 또 뭐냐는 것이다. 피우려면 화끈하게 피고 안 피우려면 안 피우는 거지 애매한 회색지대는 싫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골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피게 되는 첫 담배는 정말 소중한 그 무엇이었다. 잠도 확실히 깨고, 오늘 할 일들을 차분하게 계획도 할 수 있는 아침 첫 담배라면 좋겠지만, 그저 깨자마자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들이마시는 담배 연기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청량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운 그 자리에서 핀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런 행동을 하진 못했지만 이 정신만은 고스란히 간직을 하곤 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관문을 열고 잉크 냄새가 아련히 풍겨오는 아침 신문을 가지고 와서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물론 '조중동'은 이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겨레>만이 내가 화장실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 피우게 되는 두 번째 담배 의식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컴퓨터를 들고 화장실에 갈 수만 있다면 이 영광은 <오마이뉴스>가 차지하겠지만.

샤워를 하거나 양치질을 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해외 토픽감이라는 생각을 하며 씻고 옷을 입으며 세 번째 담배를 문다. 오늘의 의상 컨셉트에 대한 깊은 생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일어나서 나갈 준비가 되면 바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답답한 집구석에서 벗어나 드넓은 야외에서 만끽할 수 있는 흡연의 자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엘리베이터에서는 피지 않는다. 대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내 입에는 어느 새 담배가 물려 있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며, 오늘의 아침 풍경을 여유로이 감상하며 피는 네 번째 담배 역시 내겐 소중한 것이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곳은 지하철 안이다. 나는 언제나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전철에 투자했기 때문에, 전철역 안으로 들어가기 전엔 다섯 번 째 담배를 피워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지하철에서의 무료함은 다행히 책이란 존재가 있어 잊게 된다. 물론 도착지의 전철역 위로 나오는 나의 입엔 여섯 번째 담배가 물려 있다.

일곱 번째 담배부터 최소한 한 갑을 넘어가 서른 다섯 번째 정도의 담배까지는 일을 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것들이다. 이 안에는 회의를 하면서 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으면서 한 대, 나의 발언을 멋있게 보이기 위한 소품으로서 한 대, 뭔가 메모를 하면서 한 대, 회의가 끝나서 한 대, 나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한 대, 혼자서 뭔가 골똘하게 생각을 하면서 한 대, 전화를 하면서 한 대, 대본을 쓰면서는 여러 대 등이 있는 것이다.

대략 어둑어둑해진 집 근처 전철역 위로 등장하는 내 입에 물려 있는 담배는 서른 여섯 번째 정도가 될 것이고(술자리라도 다녀온 날엔 마흔, 혹은 쉰여섯 번째가 되기도 한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서른 일곱 번째, 도착해서 서른 여덟 번째, 씻고 나서 서른 아홉 번째, 자기 전에 마흔 번째가 될 것이다.

이런 내가 담배를 끊을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생각지도 않게 내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물론 매일 매일이 피곤에 지친 날들이었지만,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고, 더 결정적인 것은 또 다른 어느 날 피곤에 절은 몸을 심야 버스에 던졌을 때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며 ‘아,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 일이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게 하루 두 갑 이상을 줄기차게 피워오던 내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3년이 약간 넘은 2001년 겨울 무렵이었고, D-데이를 2002년 1월 1일로 잡은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담배를 2002년 1월 2일 오후 무렵부터 끊어 2004년 12월 29일인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대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도대체 그렇게도 담배를 사랑했던 나는 어떻게 해서 금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에겐 먹물 근성이 있는 건지, 활자를 유난히 좋아해서 그런 건지 무엇을 한다거나, 어떤 것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먼저 어떤 행동을 한다던가, 관련된 사람을 만난다던가 하기보다는 일단 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을 사서 보는 것을 먼저 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역시 영어는 해줘야 돼! 하며 한 권, 두 권씩 사서 읽은 영어에 관한 책이 수십여권이다. 오죽 했으면 다들 지가 알려주는 영어 공부법이 제일 낫다는데 한 명씩 붙여 가지고 영어 공부를 해 나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 영어를 잘 하냐구? 묻지 마시라, 괴롭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역시 기획력이 요구되고 있어! 하며 기획이란 글자가 들어간 책만 사서 읽은 게 열 권이 넘는다. 기획은 잘 하냐구? 물론 아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시간에 더 많은 콘텐츠를 기획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중 하나 그래도 읽은 책으로 꽤 많은 성과를 얻은 분야가 있다. 바로 금연이다.

세 권을 소개할까 한다. <담배, 돈을 피워라> <김영국 교수의 담배 끊는 그림최면> < STOP! SMOKING>이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직접 사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이 책들을 읽어서 내가 금연을 한 건 아니지만, 내가 금연을 하는데 이 책들에서 얻은 내용들은 거의 90% 이상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금연에 도움이 된 세 권의 책
ⓒ 김영주
먼저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인 타라 파커 포프가 지은 ‘씨앗에서 연기까지 담배산업을 해부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담배, 돈을 피워라>는 가장 먼저 선택해서 읽은 책이다.

제목에서 풍기듯이 담배가 얼마나 인간에게 좋지 못한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탄탄한 이론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아울러 담배를 기호로서가 아닌 산업으로서 이해하게 되는 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는 전 세계에서 들어가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유일한 공산품이며 세상에서 - 피우지 않더라도 -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제품이다. 확실히 이만큼 널리 보급된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곡물? 면도날? 껌? 코카콜라라 해도 담배만큼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담배산업이 어떻게 성장을 했고, 담배의 좋지 않은 점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담배회사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등을 읽고 나면 무심코 피우고 있는 담배라는 제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영화배우 김부선씨 사건을 계기로 제기된 대마초 합법화 운동과도 관련지어 담배의 중독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이 책은 마련해 준다.

<담배 끊는 그림최면>은 사실 재미의 측면에서 구입을 했다. ‘그림만 봐도 담배를 완전히 끊을 수 있다. 빠르면 1주일 내에 금연에 성공한다’고 책표지에 써 있지만, 그 안의 끔찍한 그림들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데서 금연에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내가 이 짓까지 해야돼?’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사실 세 권의 책 중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책은 알렌 카가 지은 < STOP! SMOKING>라는 책이다. 책 표지에 ‘읽은 것만으로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빈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끊고 난 후의 금단 현상? 중독? 살 찔까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도 공감을 했던 게 바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나?’라는 불안감이다.

그런데 끊고 난 결론은 ‘담배가 없어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금단현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안 피운 것이고, 계속 피지 않으니까 살만 하더라는 것이다. 이 책 < STOP! SMOKING>은 그런 생각에 확실히 도움을 주는 책인 것이다.

내가 예전에 담배를 피울 때 했던 수많은 자기 합리화를 이제는, 피우지 않는 것이 훨씬 멋있지 않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 보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지 않니? 등의 합리화로 바꾸어서 진행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 이주일씨의 금연 운동에 많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어느 새 주변을 돌아보면 이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점점 소수파가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담배가 없이도 살 수 있고, 오히려 많은 것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에게 금연을 권한다고까진 말하지 않겠고, 내가 말한 책들을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담배, 돈을 피워라 - 씨앗에서 연기까지 담배산업을 해부한다

타라 파커-포프 지음, 박웅희 옮김, 들녘(2002)


담배끊는 그림최면

김영국 지음, 정신세계사(1999)


스탑 스모킹 Stop! Smoking - 전세계를 강타한 알렌 카의 담배를 단번에 딱! 끊는 방법

알렌 카 지음, 심교준 옮김, 한언출판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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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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