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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새가 앉아 나무를 쪼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새가 앉아 나무를 쪼고 있습니다. ⓒ 김은숙
보통 수업이 아침 11시에 시작하는데, 증평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서 일찍 서둘러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 7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30분을 걸어 8시 20분쯤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증평에 갑니다.

걷는 30분 동안 길에서 많은 새 소리를 듣습니다. 새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알고 있는 새 소리는 까치와 참새 정도입니다. 아침에 까치들은 전신주 위에 대여섯 마리씩 무리 지어 앉아 있습니다. 까치는 날갯짓 하지 않고 하늘을 날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갑니다. 그 유영이 참 시원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릴 때 여중생은 교복 색이 검은 색과 흰 색으로 되어 있어서 까치였고, 남중생은 온통 검은 색이어서 까마귀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도 까마귀는 아예 볼 수가 없군요.

새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새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 김은숙
참새는 수다쟁이입니다. 작고 가지가 많은 나무에 모여 앉아서 고개를 쫑긋거리며 짹짹거리다가 한 마리가 움직이면 모두 그 쪽으로 옮겨 갑니다. 수다쟁이 참새는 아주 귀엽습니다. 참새 소리는 가까이에서 들리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참새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후두둑 하고 날아갑니다.

새롭게 알게 된 새가 있습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이 새는 독특한 방법으로 납니다. 나는 동안 날갯짓을 가끔 합니다.

며칠 전에는 몸집이 약간 큰 한 마리가 마을 가운데 있는 감나무에서 앞산으로 날아가더니 작은 새 몇 마리가 같은 몸짓으로 따라 갑니다. 아무래도 새끼 새들이 날기 훈련을 하는 날인가 봅니다. 작은 새 몇 마리도 앞서 간 새가 앉아 있는 가지에 가 앉습니다.

요즘 우리 동네 개울에 공사가 한창입니다. 물난리 때 몇 번 둑이 무너지더니 드디어 제방공사를 하나 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개울 주변에 있는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 나갔습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까치밥이 남아 있는 감나무
까치밥이 남아 있는 감나무 ⓒ 김은숙
그렇다고 나의 추억을 위해서, 풍광을 위해서 그 나무를 그대로 놔둬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둑이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되니까요. 아랫 동네 개울 주변에는 여름이면 온통 아카시아 천지였습니다. 향기가 아주 좋았는데 제방 공사로 지금은 미루나무 한 그루만 남아있습니다.

가끔 '무허가 까치집' 때문에 정전 사고가 난다는 기사를 봅니다. 도대체 까치가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집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까치가 전신주에 집을 짓는 이유는 이런 저런 이유로 큰 나무가 자꾸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집 지을 나무가 없으니 비슷한 높이의 전신주에 집을 지을 수밖에요.

동네 한가운데 키가 큰 감나무에는 빨간 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감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나무는 새들의 집이 되고, 날기 훈련을 하는 아기 새들의 징검다리가 되어 줍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베푸는 사랑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강의는 4시에 끝납니다. 청주에서 증평까지 넉넉히 50분 정도 걸립니다. 조금 굼뜨게 행동하면 어둑할 즈음 증평에 도착합니다. 증평에서 다시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 하늘에는 어김없이 별이 가득합니다. 늘 마중 나오시는 엄마와 같이 이야기도 하면서 저녁 별도 봅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침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저녁 별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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