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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평일임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과 꽉 찬 객석이 인기를 말해준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평일임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과 꽉 찬 객석이 인기를 말해준다. ⓒ 심은식
영화관에도 파리가 날리는 요즘 줄을 서서보는 연극이 있다?

올해 초 동숭아트센터의 연극열전 시리즈 가운데 객석 점유율 97.9%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 연극은 여름의 앙콜 공연에 이어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름하여 <관객모독>.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12월 22일 대학로의 '대학로 극장'을 찾았다.

제목부터 특이한 이 연극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원작으로 우리나라에는 1978년 극단 '76단'에 의해 소개되었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 등 연극의 형식을 모두 부정하는 이 연극은 일명 반연극. 특정한 사건도, 감동적인 대사도 없다. 그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는 설명과 욕, 부조리한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 연극의 인기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관객은 손님이 아닌 연극의 일부

무대로 초대된 희생양(?) -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무대로 초대된 희생양(?) -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 심은식

배우는 여러 차례에 걸쳐 말과 행동으로 관객들을 모독(?)하며 도발한다. 처음에는 수줍게 웃기만 하던 관객은 어느새 배우에게 연기를 요구하거나 소품을 빼앗아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관객이 손님이 아닌 연극의 일부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반적인 연극의 경우 배우들이 반복되는 연기에 숙달되면 나중에는 매끈하긴 하지만 생기 없는 공연이 되기 쉬운데 반해 관객의 참여로 늘 새로운 변수가 존재하는 '관객모독'의 경우 배우들이 긴장을 잃지 않아 더 생기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계를 떠난 말들이 만드는 90분간의 자유

열연중인 배우들 - 공연의 한 장면인 이 사진을 보고 당신은 어떤 대사를 상상할까? 아마 누구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열연중인 배우들 - 공연의 한 장면인 이 사진을 보고 당신은 어떤 대사를 상상할까? 아마 누구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 심은식

무대감독이 등장하면서 극은 좀더 입체화 된다. 연극이 극중극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목에서 배우들은 언어를 끊임없이 자르고 붙이며 사용한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대사임에도 감정과 연기가 씌워지는 순간 그것은 기묘한 느낌으로 객석을 장악한다. 기존 연극에 대한 바꼬기와 언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관객들은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실험적인 시도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부터 극 자체에 대한 진지한 해석을 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조혜영씨(25 학생)의 경우는 작가가 언어와 연극에 대해 얼마나 한계를 느꼈으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생각에 재미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슬프게 다가왔다고 한다. 관객모독에 대한 사전정보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한 사람대로, 처음 접하는 사람은 처음 접하는 사람대로 즐기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느냐고? 글쎄

관객을 도발하는 배우- 눈을 맞추고 손가락으로 지적까지 하며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
관객을 도발하는 배우- 눈을 맞추고 손가락으로 지적까지 하며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 ⓒ 심은식

누가 이 연극이 재미있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답할 것 같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 연극에 오락 그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가 관객에게 거침없이 '너' 혹은 '이놈'이라며 던지는 욕설에는 지금 여기라는 자각이 분명히 들어 있다. '차떼기', '보수꼴통', '공산주의자'라는 정치적인 것부터, '고개만 끄덕이는 전문가 놈들', '허무주의자', '자살 후보자 놈들'아라는 자아성찰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남김없이 부수고 부정한다.

배우 강혜련씨와 전수환씨- 연극에서의 파격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운 표정과 미소다
배우 강혜련씨와 전수환씨- 연극에서의 파격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운 표정과 미소다 ⓒ 심은식
관객들은 여기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유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말 그대로 즐거운 자학의 향연인 것이다. 따라서 이 연극은 단순히 '재미있는'이 아니라 '즐거운' 연극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가진 인터뷰에서 배우들에게 이 연극이 가지는 힘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전수환씨는 20대 관객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우선 극 자체가 자극적이고 인터넷 등을 통한 의견 수렴을 통해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극의 가변적 특성을 이유로 들었다. 여배우인 강혜련씨는 이에 덧붙여 자극, 각성, 환기로 이어지는 내면화 과정과 시의성을 꼽았다.

판에 박힌 드라마와 억지 웃음에 식상한 관객이 있다면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을 보러가길 추천하다. 25년이 넘는 세월을 꿰뚫는 전위적인 매력이 여러분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관객 열받다!
모독당한 관객에 대한 에피소드

▲ 이제는 관객들이 관객모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즐기기도 한다.
이 공연이 처음 국내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욕을 통한 새로운 형식과 내용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공연 도중 배우가 욕을 하자 열받은 관객이 의자를 집어던져 조명과 유리가 박살나 무대가 난장판이 되기도 했고 어떤 여자 관객은 모멸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욕세례에 물벼락까지 맞아도 즐거운 요즘 관객들이지만 혹시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느냐고 묻자 지난 공연 때도 공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공연때와는 달리 지금은 많이 얌전(?)해진 것이라며 그 이유로, 이 연극이 관객에 대한 공격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자발적인 참여와 고정관념을 깨는 의식의 전환을 들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열받는 것은 여전히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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