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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텅 비어가는 경북 칠곡군 기산면 한 농촌마을 빈집에서 설치미술 작가들이 '2004 빈집'전을 열었다.

'빈집'에 들어갔다 나오니 '더 이상 집 지을 곳'과 '살 공간'이 사라져가는 도시민들이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지도 모를 빈집이 넓게 느껴졌다.

▲ 강대영씨 작품 '모기'
ⓒ 이성원
강대영씨의 '모기', 김현수씨의 '하나의 방', 박성호씨의 '큰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박효정씨의 '노랑 부엌', 박소현씨의 '독의 포용', 한효림씨의 '화장실'.

미학을 전공한 서명득(독립큐레이터) 대구가톨릭대 예술학과 강사는 이들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으로서 시골 한적한 마을에 외롭게 있는 빈집을 통해서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혹자는 말한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빈집을 그대로 비워두면서 그 속의 여유를 만끽할 수 없냐고…. 하지만 빈집은-가족이 살지 않는 공가(空家)는-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외롭고 쓸쓸한 빈집에 그들의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 한다."

서명득 강사는 '하나의 방' 품평에서 "이제 더 이상 그의 방은 빈 공간이 아니다. 어느새 그의 방은 꽉 찬 방이 된다. 작가는 이 채워진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한다"고 적었다.

프랑스 실존주의철학자 샤르트르가 그의 주저 '존재와 무(存在와 無)'에서 받은 메시지가 다가오는 것 같다. 무(無)는 존재를 전제로 한다. 무는 존재를 기다리고 있으며 존재를 부르고 있다. 빈집은 주인이 돌아오면 거처하는 공간이요, 빈방은 가족들의 보금자리다. 존재를 떠난 무는 공허하고 무를 배제한 존재는 무의미하다.

요컨대 무(無)는 존재가능성이다. 빈집의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존재는 무한한 공가(空家)에서 미소 짓는다.

▲ 한효림씨 작품 '화장실'
ⓒ 이성원

▲ 박성호씨의 '큰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 이성원

▲ 박효정씨의 '노랑부엌'
ⓒ 이성원

▲ 김현수씨의 '하나의 방'
ⓒ 이성원

▲ 박소현씨의 '독의 포용'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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