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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모임 중에 제일 젊은 부부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 중에 제일 젊은 부부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 허선행
사랑의 메시지는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두 번째 부부도요. 쑥스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두 부부가 팔로 사랑의 하트표시를 하며 마무리를 했답니다.

세 번째 부부는 사랑의 메시지는 이미 아내 가슴에 묻어 두었다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노래가사에 부인의 이름을 넣어 크게 부르더라구요. 순간 부인이 눈물을 흘립니다. 부인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부부는 남편의 긴 편지로 시작하여, 부인의 긴 편지 읽는 것으로 끝인가 했더니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부부등록증'을 만들어 왔네요. 부부십계명을 뒷면에 적었고요.

'사랑도지사'가 발급해 줬다는 '부부등록증'입니다.
'사랑도지사'가 발급해 줬다는 '부부등록증'입니다. ⓒ 허선행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부부십계명을 그 자리에서 돌려가며 읽어보았답니다. 다 같이 하나씩 만들어야겠다는 말도 했지요.

이제 우리 부부 차례입니다. 우리는 전주에 맞춰 손을 잡고 잠시 춤을 추다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둘이 호흡이 잘 맞습니다.

우리 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입니다.
우리 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입니다. ⓒ 허선행
남편이 편지를 읽는 순서인데 제가 긴장이 되네요. 준비를 안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편은 "그동안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 수고했다"는 말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제가 며칠을 생각한 글이 고작 "자기야, 사랑해"입니다.

우리 모임에서 가장 나이 드신 분들 차례입니다. 남편이 주머니와 자리 주변을 둘러보며 편지를 잊어버렸다고 찾는 시늉을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찾으려 했지만 이내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았습니다.

편지를 읽기가 쑥스러운지 앞에 여러 상황을 이야기한 다음에야 편지글을 읽었습니다. 몇 줄 읽고 난 후 "맞고요", 또 몇 줄 읽고 "맞고요" 소리를 하니 도대체 저 편지는 누가 쓴 거란 말인가?

의아했지만 민망해서 그런가 했습니다.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서 우리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잘 하겠다, 내 급한 성격 때문에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가 있어 미안했다, 앞으로 고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지요.

남편들의 고백은 정말 눈물 흘릴만 했습니다.
남편들의 고백은 정말 눈물 흘릴만 했습니다. ⓒ 허선행
이번에는 부인이 편지를 읽을 차례입니다. 긴장한 탓인지 손끝이 약간 떨리는 게 보였습니다. 육남매의 장남으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남편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맏며느리로서 할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바람이 있다면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마음 놓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것과 급한 성격이긴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련하게 다 한 모양입니다. 흔쾌히 그 자리에서 "알았다"고 해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앞에 읽은 남편의 편지도 아내가 써줬답니다. 그러니 "맞고요"를 할 수밖에요. 본인의 이야기를 시인한 것만으로도 사랑의 메시지는 전달되었다고 봅니다.

다음은 마흔이 넘어 늦게 결혼한 부부의 차례입니다. 아기 돌잔치를 한 지 며칠 안 되었으니 아직 신혼이지요. 사랑의 편지를 써보자고 제안한 부부이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주는 꽃다발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습니다.
아내에게 주는 꽃다발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습니다. ⓒ 허선행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두 분의 멋진 편지글보다 남편이 무릎 꿇고 부인에게 주는 꽃다발이 부러웠습니다. 대학에서 젊은이들과 생활하여서인지 마음까지 20대입니다. 부인은 꽃 준비를 안했지만 꽃병에 꽂혀 있던 장미를 뽑아 즉석에서 남편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우리 모임의 총무가 사랑의 메시지 후에 주려고 몰래 선물준비를 했습니다. 이 세상의 미움과 어려움을 다 씻어 버리라고 여자들에게는 클린싱크림을, 새해 복을 가득 담으라고 남자들에게는 양말을 준비했답니다.

"어느 팀에게 상을 줘야 할까?"했더니, 누구나 생각은 같습니다. "부부등록증"을 만들어 온 부부와 무릎 꿇고 꽃을 전한 부부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합니다. 시상도 하고, 다같이 준비한 선물을 나눠 갖으며 우리들의 2004년도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원들은 아마도 부부 사이에 사랑의 메시지를 수시로 전하게 될 것이고, 누구 아빠나 누구 엄마의 호칭보다 이름을 자주 부르게 될 것이고, 가끔 아주 가끔은 느닷없이 불쑥 내미는 꽃을 받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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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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