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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광석초등학교 46회 동창 송년모임
논산 광석초등학교 46회 동창 송년모임 ⓒ 윤형권
18일(토) 오후 7시 대전광역시 둔산동 어느 장어구이집에서 열린 논산 광석초등학교 46회 동창 송년회 모임 현장.

"애사 때 현금 50만원을 부조하기로 한다. 이의 없으면 회칙을 통과시킨다."

회장인 희원이가 회의 종료를 알리자. 30여년 동안 간직했던 추억의 보따리가 터져 나왔다.

"야! 석광이 너, 여희하고 어떤 관계였냐?"
"집안 조카다."
"아닌 것 같은데! 그럼 5학년 때 여희 오빠한테 왜 맞았냐? 집안 조카라면 서로 잘 알 텐데…."
"야, 그때는 여희오빠가 나를 잘 몰랐을 때라서 그랬어."

진숙이가 25년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자 석광이가 해명한다.

석광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왔다. 도회지에서 학교 다니다 전학 왔기 때문에 다른 애들에 비해 좀 세련되게 보여 뭇 여학생들의 눈길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앞에 있던 영애가 일침을 가한다.

"야, 그런 소리하지 마. 착각은 자유라고 하던데 석광이 너,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할 때 칼로 자르고 도망가기 일쑤라서 여학생들한테 요주의 인물이었어. 너하고 율리에 살던 장동복이 말이야."

석광이 바로 앞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미숙이도 거들고 나온다.

"맞아! 석광이 너, 우리들한테 집단테러 당할 뻔했어. 그 당시 몇몇이 구체적인 모의까지 했었어. 요즘말로는 왕따라고 하더라만…."

30년 전의 의문점을 풀어헤친 여자 동창들
30년 전의 의문점을 풀어헤친 여자 동창들 ⓒ 윤형권
사태가 이쯤 되자 석광이는 능청맞게 과거사를 술술 풀어놓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 줄줄이 꿰는데 들을수록 가관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끼'가 보이더니 오늘날도 여전하다. "술좀 그만 마시라"고 동창들이 걱정.
초등학교 때부터 '끼'가 보이더니 오늘날도 여전하다. "술좀 그만 마시라"고 동창들이 걱정. ⓒ 윤형권
"야, 그래도 중학교 땐 전교에서 40등만 들어가는 '특수반'에 들었었어. 그래서 광석에서 버스 통학하는 여학생치고 나 모르면 간첩이었지. 또, 고등학교 때는 얼마나 잘나갔는데, 학교 끝나고 눈다리 밑에서 전축 틀어 놓고 고고 출 때가 나의 전성기였어. 당시에는 대전까지 원정 갔었지. 청란여고 애들하고 미팅한 게 한두 번이 아녀."

이런 걸 자랑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게 꼭 초등학교 5학년 때 윤석광이의 모습이다.

애들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급기야는 선생님과 관련된 비화가 하나 둘 공개된다.

영애하고 석태는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둘이서 각각 3학년과 4학년 때 구인회 선생님이 담임할 때의 비화를 공개했다.

영애가 먼저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구인회 선생님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는데, 3교시만 끝나면 나더러 도시락 가져오라고 했어. 하숙집 할머니께서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싸주면 얼른 들고 와 교무실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

"너도 그랬냐? 나도 4학년 때 그랬는데, 그때 당시 새로 부임한 우금옥 선생님이 참 예뻤잖아. 인기 참 좋았는데, 여름방학 끝나고 언젠가 구인회 선생님하고 담장 옆에서 한참 동안 손잡고 무슨 이야긴가 하는 걸 애들이 알고는 실망했던 애들 한 둘이 아니었던 거 생각 나냐?"하고 석태가 동의를 구한다. 그러자 석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태화가 "암, 생각나다마다. 그 얘기 말고 또 있지. 결혼하고 한 집에 사는데, 담장 너머로 빨래 줄에 나란히 걸려 있던 두 분의 속옷을 보고 애들이 얼마나 킥킥거리고 웃었는지 아냐?"한다.

무슨 말이 오가고 있을까? 왼쪽부터 장진호, 정일범, 김기준.
무슨 말이 오가고 있을까? 왼쪽부터 장진호, 정일범, 김기준. ⓒ 윤형권
이야기꽃이 긴 겨울밤이 모자랄 정도로 끝없이 피어올랐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아니면 이런 추억의 보따리가 또 있을까? 30여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지만 한 시공간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벗들이 모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자 금세 동심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초등학교 동창모임의 맛이다.

논산광석초등학교 46회 동창 송년모임
논산광석초등학교 46회 동창 송년모임 ⓒ 윤형권
고등학교 교사인 기준이, 개인택시사업을 하는 태화, 쌀장사를 하는 모임 회장 희원이, 부동산 공인중개사 성철이, 가정주부로 대학생 아이를 둔 미숙이, 알뜰한 주부 영애, 키가 큰 미녀 진숙이, 초등학교 때부터 스캔들이 많았던 석광이, 건축업을 하고 있는 기석태! 이밖에 깨알처럼 까마득하게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들….

을유년 새해엔 다들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다 잘되길 바란다!

구인회 우금옥 선생님! 강정규 선생님! 고금혜 선생님! 임창규 선생님! 그리고 광석초등학교 46회 졸업생들이 재학 중일 때 재직하셨던 모든 선생님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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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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