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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환님의 평화주제의 퍼포먼스에 앞서 평화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는 베트남 화가들. 이번 전시에는 8명의 베트남 화가가 참가하였다.
ⓒ 이철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경기도청 소재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감싸고 있는 수원이지만 아시아 4개국이 ‘평화’라는 주제로 모여 함께 전시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아시아는 지금' 전람회는 16일부터 22일까지 수원 문화의 전당 대전시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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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아시아 미술인들의 만남


문화에 있어서 심화된 서울 편중은, 해외에서 더욱 심화되어 있었다. 정말 한국을 잘 아는 이들이 아니면 서울이 아니면 한국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를 거의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그 말은 서울 외의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이 아시아 각국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함께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 예술은 만국공용어라 했던가? 김석환님의 퍼포먼스를 도와주고 있는 베트남 화가 khanh와 몽골 화가 chimeddordj.
ⓒ 이철호
비록 지방자치단체와 예술의 국제화, 전문화를 고민해 온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예년에 비해 조금씩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역에서의 이런 고군분투와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는지 아시아 각국에서 상당한 역량과 위치에 있는 이들이 이번 초청에 호응해 온 것이다.

베트남에서 온 쭝(Trung)의 경우 60년대부터 베트남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던 작가로, 사실상 현대 베트남 미술의 근간이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는 현재 베트남 미술계를 세계로 알리고 있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을 펼치면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해준 스승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며, 세계 각국의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화가이다.

몽골에서 온 볼드(Bold)씨는 약 500여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몽골 유일의) 예술가 조직인 몽골 예술인연합(union of mongolian artists)의 회장이기도 하다.

▲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은 김석환님의 퍼포먼스.
ⓒ 이철호
그럼 이렇게 어렵게 만난 4개국의 아티스트들. 그 만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이야기를 전해줄까? 일단 이번 전시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수원 민예총 김영기 지회장의 여는 글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문화의 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의 차이를 확인하고 향유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 거대 물결 속에 문화적으로 피폐해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 아시아 4국의 창작력 왕성한 작가들의 출중한 창작품과 이들이 갖고 있는 평화공존을 위한 건강한 사고가 어우러져 의미있는 교류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자본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예술가의 염원이랄까? 우리 예술이 나아갈 방향이랄까? 김 지회장의 말 속에는 현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아시아적 정체성 확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을 뛰어넘는다던가? 비록 작게 시작한 행사였지만, 펼쳐진 작품들 속에는 그 거대한 지향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담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전시개막을 알리는 테이프커팅. 왼쪽부터 trung(베트남), 이광휘(중국), bold(몽골), 김영기지회장, 권용택(한국).
ⓒ 이철호
그건 우리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포괄하고 있는 정체성의 확인이었다. 신성한 색 ‘블루’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찬란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 몽골작가들의 작품, 험난했던 역사를 넘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평화와 예술을 표현하고 있는 베트남의 화가들, 그리고 근대와 탈근대의 교차점 속에서 아직 해결해야 될 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한국의 예술가들. 그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현실과 주변을 보게 된다.

▲ 전시오프닝 행사가 끝난 후 참여작가들이 함께한 자리. 평화에 관한 간단한 토론과 함께 서로 간의 친목을 다지던 시간이었다.
ⓒ 이철호
예술가는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실생활에 비추어 표현한다고 했던가? 그 예술들 속에서 우리가 가지는 현실의 지향과 차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서툴고, 희미하지만 그 안에 새겨진 공통의 단어를 찾아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전시장을 휘 스쳐가며 보게 되는 작품들 속에서, 전시행사가 끝난 후 전시장 바닥에서 행해진 간단한 뒤풀이에서,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와 거나해진 각국의 노랫소리 속에서 알듯 모를 듯 전해진다.

그렇게 전해진 그 희미한 자취는 내 몸 속에 소중한 각인으로 남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몸에 새겨진 희미한 단어는, 앞으로 더욱 잦아질 교류와 관계 속에서 선명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시아적 가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세계화라는, 어떤 면에서 우리를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를 풍요롭고,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역사와 문화의 존재를 소중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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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심을 접고, 이제는 몇가지에 집착을 해보려고 함. 항상 사회에 가지고 있는 미안함 마음을 지울 수 있는 길 역시 찾아보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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