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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령을 건네받은 남화우는 자세히 보는 듯 싶더니 마치 본래부터 자신의 것인양 서슴없이 초혼령을 품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허나 그는 자신의 팔목에 와 닿는 섬뜩한 느낌에 더 이상 손을 품속으로 넣을 수 없었다.

"음…."

언제 뽑은 것일까? 담천의의 무릎에 놓여있던 흑의인의 검 끝이 남화우의 심장 앞에서 멈추어져 있었고, 그것이 공교롭게도 초혼령을 집어넣으려는 남화우의 팔목에 닿아 있어, 그가 무심결에 더 집어넣었다면 스스로 팔목이 짤렸을 터였다.

"나는 남의 물건에 손대는 자를 아주 싫어하오. 더구나 남을 속이는 자 또한 무척이나 싫어해 그런 사람을 보면 그의 혀를 뽑고 팔목을 자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오."

남화우는 내심 놀랐다. 상대가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듯 빠르고 정확하게 검을 사용하는 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팔목이 잘리고 심장에는 구멍이 뚫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애써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귀하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구려. 허나 본 공자를 죽이면 귀하 역시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 못할 것이오."

그것은 일종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담천의는 오히려 웃음을 띠고 검을 앞으로 조금씩 밀어 넣었다. 그로인해 남화우의 팔목에는 미세하게 혈흔이 생겼고, 옷을 헤집고 들어 온 검 끝이 맨가슴에 느껴졌다.

"내가 더욱 싫어하는 자는 잘못을 하고도 큰소리치는 작자들이오. 그런 인간들을 보면 도저히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곤 하오. 또한 당신을 죽이고 난 후에 내가 죽던 말던 그것은 내 문제지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오."

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세상은 자신이 살아 있음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 상대가 죽건 말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죽는 것은 자신인 것이다. 남화우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흡! 잠깐!"

검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자 남화우는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이미 자신의 가슴과 팔목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상대는 어떻게 된 작자인지 정말로 검을 자신의 심장에 박을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흘렀다.

"잘생긴 공자님. 정말로 소첩의 남편을 죽이실 생각이신가요?"

지금까지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보던 요염한 홍의여인이 묘한 색기를 뿌리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남편이 있는 앞에서 그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바라 본 담천의는 나직히 대답했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부인은 적미갈(赤尾蠍) 상부인이시겠구려. 나는 부득불 상부인의 남편을 죽이지 않을 도리가 없소. 그는 나에게 두 가지 독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내 것을 빼앗으려 했으니 어찌 죽이지 않을 수 있겠소?”

적미갈(赤尾蠍) 상교교(尙嬌嬌)
사천성(四川省) 출신으로 오독공자와 결혼하기 전에 한때 사천제일염(四川第一艶)이라 일컬어지던 여인이다. 미색와 지모(智謀)가 뛰어나고, 독술(毒術)과 암기(暗器)에 능해 사천당문 출신이라고 오해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요염한 외모로 많은 사내들을 홀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오독공자와의 금슬이 좋아 결혼한 이후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소첩의 남편은 죽을죄를 지었군요. 하지만 소첩이 과부가 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소첩이 공자께 두 가지 독의 해독약을 드리고 또한 공자의 물건을 돌려드린다면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여전히 기이한 색기를 뿜으며 담천의를 황홀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녀에게 빨려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미염공(美艶功)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빠지게 되면 그녀의 치마폭에 매달릴 수도 있는 무서운 사술(邪術)이었다.

"상부인은 괜한 심기를 쓰고 있구려. 만약에 부인이 귀중하게 여기는 패물을 훔치고 부인마저 간살하려던 간적을 잡았다면 그를 살려주겠소? 아니면 죽이겠소?"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사라졌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미염공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어 대답할 말이 궁색해졌다.

"공자의 혀는 뱀과 같이 매끄럽고 위험하군요."

그녀는 담천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우 그녀라면 당연히 그 간적을 죽였을 것이다. 그녀는 의외로 청년이 침착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자라고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자신의 남편을 제압한 것으로 보아 무공 역시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같이 있는 일행은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남편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기는 하나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는 있으리라 믿었다.

"좋아요. 공자께서는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보세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심기를 쓰는 것보다 오히려 직설적으로 묻고 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가 아직도 자신의 남편을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담천의는 다시 오독공자 남화우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귀하는 대답할 준비가 되었으리라 믿소. 왜 당신들은 내가 가진 초혼령을 노리는 것이오?"

그 질문에 남화우는 시선을 돌려 소궁주라 불리웠던 소녀의 옆에 앉자있는 노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허나 그 노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눈빛도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전혀 담겨있지 않아 마치 죽은 사람의 눈을 보는듯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오. 본 공자에게는…."

마지못해 남화우가 입을 열자 갑자기 노인의 입에서 음정의 고저가 없는 무심한 말이 흘러 나왔다.

"노부는 독비객(獨臂客) 섭장천(葉張天)이라 하네. 삼십년 쯤 전에는 성하검(星河劍)이라 불리웠지. 자네는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러고 보니 노인의 오른팔이 있어야 할 곳은 헐렁한 상태여서 오른팔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을 독비객이라 소개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모르겠더니 입을 열고 자신이 있음을 보이자 마치 태산이 앉아 있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담천의는 섭장천이라는 노인이 그 경지를 알 수 없는 화경(化境)의 고수임을 느꼈다.

"소생은 섭노선배에 대해 알지 못하오."

그 말을 들은 주위 인물들의 얼굴에 의아함과 더불어 노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담천의가 섭장천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데 대한 어처구니가 없다는 의미와 어찌 그 이름을 모를 수 있냐는 불쾌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성하검(星河劍) 섭장천(葉張天)이란 이름은 한때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섭장천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자네가 초혼령을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어찌하여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그 질문을 받은 담천의는 갑자기 섭장천이라는 노인이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십육년 정도 되었소."

담천의의 대답에 섭장천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감정이라고 할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표정은 애매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자네는 담(曇)이라는 성(姓)을 가지고 있겠군."

섭장천이라는 노인이 탄식처럼 내밷은 말은 담천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고 천둥이 치는 듯한 충격으로 그의 뇌리에 파고 들었다.
(20장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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