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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뜻한다는 윤대에 올라 촛불을 밝히며 추는 '춘대옥촉'
시공간을 뜻한다는 윤대에 올라 촛불을 밝히며 추는 '춘대옥촉' ⓒ 정희경
관객들은 시공을 초월한 180여년 전의 궁중연회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립국악원에서 15∼16일 올려진 '정재(呈才), 궁중무용의 원류를 찾아서'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궁중무용이라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해설과 슬라이드를 곁들인 구성으로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감상하기에 편안한 무대였다.

귀한 분께 선도반을 바치면서,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헌선도'
귀한 분께 선도반을 바치면서,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헌선도' ⓒ 정희경
1부 막을 여는 당악 정재인 '헌선도'(獻仙桃)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의 저력이 십분 발휘되었던 시간이었다. 각 의물(의식에 사용되는 물건)들의 등장과 함께 해설자가 각 의물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 당시에 귀한 분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바쳤을 선도(한 개를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복숭아)반이 궁중무용을 감상하는 관객들을 향해 올려졌다.

외국인 친구들이 오면 반드시 한국전통 춤을 보여준다는 정우림(28·사업)씨는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한국전통무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2부 순서는 향악 정재인 '영지무'(影池舞), '연화무'(蓮花舞), '춘대옥촉'(春臺玉燭)이 재현됐다. 연희에 앞서 그 당시 무용도식과 정재의상 및 소도구, 실제 공연장면 등의 사진을 사막(寫幕)에 비추면서 해설자가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영지무', '연화무', '춘대옥촉'은 순조 무자년(1828) <진작의궤>에 나타나는 연경당 외연에서 연행되었던 춤으로 당시의 공간적 배경인 '연경당(延慶堂)'을 무대의 배경으로 꾸몄다.

그림자 연못에서 노니는 학의 모습을 형상화한 '영지무'
그림자 연못에서 노니는 학의 모습을 형상화한 '영지무' ⓒ 정희경
무동 6명이 영지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며 춤추는 '영지무'는 군무자들의 절제된 몸짓과 발놀림, 살짝살짝 드러내는 감정표현이 보는 이에게 묘한 감흥을 주었다.

"우아하고 화려한 정재가 역사에 묻혀지지 않고 그것을 재현해냈다는 데 감회가 깊다. 정재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절제와 상징성이 기막히게 녹아 있었다"며 윤영숙(무용인)씨는 궁중무용의 묘미를 전했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이채로운 무대장치로는 영지무의 영지반(影池盤, 인공 연못)과 춘대옥촉의 윤대(輪臺, 바퀴 달린 무대)로 과거 궁중에서 정재 공연을 위해 이러한 이동식 무대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당시 예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신선이 노니는 듯 하다는 '연화무'
마치 신선이 노니는 듯 하다는 '연화무' ⓒ 정희경
또한 여령 6명이 피트를 타고 위로 올라오는 '연화무'에서는 신비감마저 들었다.

이번 공연의 안무를 맡은 하루미씨
이번 공연의 안무를 맡은 하루미씨 ⓒ 정희경
궁중 정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던 양희승(30·회사원)씨는 "공연을 보며 편안함을 느꼈고 무대장치에서 시각적인 면이 있어서 연화무가 가장 맘에 들었다"며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무대장치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국립국악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선보인, 윤대 위에서 춤꾼이 보등을 들고 추는 춤은 어느 정재에도 없는 '춘대옥촉'만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정재가 그러하듯 느리고 완만하며 우아했다.

춤꾼들의 무르익은 기량과 고른 춤태, 그리고 시종 정성을 다하는 진지한 자세는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의 연주도 궁중 정재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번 공연에 재구성 안무를 맡은 하루미씨는 "옛 예인들의 발자취가 정교하고 세밀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 자칫 맥이 끊길 수도 있었던 정재를 오늘날 재현할 수 있었다"며 옛 선인들에 경의를 표함과 함께 "정재 복원에 큰공을 세운 김천홍 선생님과 이흥구 선생님에게 오늘의 공을 돌린다"는 겸손함을 보였다.

각기 독특한 모양과 의미를 지니는 '의물'들
각기 독특한 모양과 의미를 지니는 '의물'들 ⓒ 정희경


관객 표정

"매년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호두까기인형' 같은 서양 무용만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왜 우리 전통 춤에 대한 홍보가 인색한지 모르겠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 것을 먼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으면 좋겠다."
-회사원 김경희(37)

"해설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가 좋았던 것 같았고, 이해하기 쉬운 공연이었던 것 같다. 무대가 깔끔했다."
-무용학 박사 김은한(39)

"중국·한국·일본 궁중음악의 차이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 공연에 왔다. 한국 궁중음악을 들으니까 신비한 것도 많다. 화려하고 한국 사람이 고전 음악을 너무 잘 재현해 내는 것 같다. 예술적 가치도 있고, 역사적 가치도 있다."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환교수· 중국 칭하대 교수 왕샤오뚠(52)

"흐름 자체가 조용한 것은 좋은데 대중성을 가미한 중간중간 흐름을 틀 수 있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해설자가 있어 감상하기에 편했다."
-군인 김태영 (27) /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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