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작하는 글

2001년 1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지 오는 11월 24일로 만 3년이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인권 관련 쟁점들이 떠올랐다. 또 과거에서 현재까지 실마리도 잡지 못한 인권 현안이 있는가 하면 해결의 기미를 찾아가는 현안도 있다.

국가인권위도 인권전담 독립기구로서 우리 사회 인권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며 지난 3년을 보냈다. 이쯤에서 우리 사회 인권 쟁점과 국가인권위 활동을 살피는 일은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의 인권을 가늠해보는 방편이기도 하다.

지난 3년 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주요 화두가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해 국가의 자기성찰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사회 생활과 관련한 인권 쟁점들이 힘을 받은 때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입법 부문에서 기억할 만한 인권 향상 활동이 펼쳐졌다.

관련
기사
[특집 2] 국가인권위 출범 3주년, 1096일의 발자취

입법 활동으로 이어진 인권 쟁점

여성단체들은 호주제가 남아선호 의식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추긴다며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
여성단체들은 호주제가 남아선호 의식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추긴다며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 ⓒ 인권위 김윤섭
호주제는 한가족 집단에 반드시 가장인 호주를 두고 그 호주의 지위 승계 순위를 아들-손자-미혼 딸-배우자-어머니 순으로 정해 놓았다. 이러한 호주 승계 제도는 남아선호 의식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02년 초 여성부는 친양자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호주제 전면 개정 의사를 밝혔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을 가동했고, 10여 일 후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 52명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같은 날 시민사회단체의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호주제 폐지 272'는 국회의원 272명을 1대1로 접촉해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내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유림단체를 중심으로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쪽의 움직임도 거셌다. 2003년 해결될 듯하던 호주제 폐지 문제는 해를 넘겼다.

2004년 1월 호주제의 비과학성을 논파한 최재천 서울대(생명과학부) 교수의 논문이 헌법재판소에 제출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서 줄곧 호주제 폐지를 반대해 왔던 한나라당이 사실상 권고적 찬성 당론으로 돌아섬으로써 호주제 폐지 법안은 현재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호주제가 오랜 관습에 기대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법이라면 사회보호법은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가려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법이다. 2002년 11월 청송 제2보호감호소 출소자인 조아무개씨가 청송보호감호소 피감호자들의 단식농성 소식을 언론에 알리면서 사회보호 피감호자의 그늘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피감호자들은 보호감호가 재사회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실상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시민사회는 2003년 3월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송보호감호소 내 피감호자 616명의 위임장을 받아 그해 6월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국회에서는 서상섭 의원이 같은 해 9월에 사회보호법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국가인권위도 올해 1월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 제도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있다며 이 법의 폐지를 권고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9월 사회보호법 폐지 방침을 정하고, 당정협의에서 법무부와 함께 사회보호법 폐지와 치료보호법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매매 방지법 제정

2004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중인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호에 한 몫하고 있다. 이 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성매매 남성에 대한 처벌 강화,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호와 자활 방안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호주제 폐지와 사회보호법 폐지 움직임은 인권 신장을 위한 입법 활동이었지만, 반대로 테러방지법 제정 움직임은 인권 침해 소지가 많은 입법 활동이었다.

국가정보원은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9·11 이후 계속되는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테러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보고 2001년 11월 관련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인신 구속 요건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어 인권 침해 소지 논란이 일었다.

국가인권위는 의견서에서 "테러행위에 대한 개념규정과 형벌 및 절차규정이 국제인권법의 기준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히며 법제정에 반대했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반대 의사를 잇달아 발표했고 결국 1차 제정 움직임은 멈추고 말았다.

테러방지법안은 국회 정보위까지 통과해 입법 직전까지 갔으나 인권침해 소지에 대한 비판이 거세 법안제정이 무산됐다.
테러방지법안은 국회 정보위까지 통과해 입법 직전까지 갔으나 인권침해 소지에 대한 비판이 거세 법안제정이 무산됐다. ⓒ 인권위 김윤섭
테러방지법안은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따른 국내 테러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등장했다. 수정 제출된 테러방지법안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국 국회 정보위까지 통과해 입법 직전까지 갔지만 다시 무산됐다. 이 법안은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여전히 되살아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현재 인권 문제와 관련한 입법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것으로 1953년 형법 제정 때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논란이 일어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동안 국가 권력은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해 왔고 법 자체도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제2~4조(반국가단체), 7조(찬양·고무), 10조(불고지)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악법 조항으로 거론됐다.

지난 4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폐지 움직임은 힘을 받았다.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의 폐지 권고에 이어 9월에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폐지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각하는 인권 현안의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다. 2002년 3월 15일 탈북자 최명섭씨 일가족을 비롯해 25명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탈북자들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고 있는 스페인 대사관을 선택한 점과 한 가족의 범위를 넘는 집단 망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 결의안에 따라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임명됐다. 또한 미국은 최근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소수자 활동, 일보 전진

지난 3년 간 쟁점으로 제기된 인권 문제를 살펴보면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소수자 인권 문제가 점차 우리 사회의 주요 인권 현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소수자 인권 문제는 그전에도 '존재'했으나 '인식하지 못한' 문제들이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지난 3~4년간 산업연수생 제도의 인권 침해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책, 고용허가제의 실시와 노동비자를 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농성, 그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엄청난 뒷돈을 들여야 하는 송출비리를 낳았다. 다시 그 돈을 갚으려는 연수생들의 근무지 이탈이 확산하고 불법체류가 일반화하면서 임금 체불, 노동 착취, 비인간적 대우라는 인권 침해문제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2003년 1월 "2004년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과 야당의 반대로 산업연수생 제도를 존속하는 고용허가제 법안이 통과됐다. 이후 정부는 4년 이상 장기 체류자에 대해 자진출국을 유도한 후 대대적인 단속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속 기한이 점차 가까워지자 이주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해 1월 11일에는 스리랑카인 치란 다라카(31)가 지하철역에서 전동차에 뛰어들었고, 12일에는 네팔인 비쿠(34)가 공장에서 목을 맸다.

한편 2003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실시돼 이주 노동자도 최저임금과 노동3권을 보장받는 한편 급여 외에 퇴직금이나 연월차 수당, 각종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인권 침해 문제는 여전히 불거지고 있다.

이주 노동자 문제가 제도 개선을 통해 일단이나마 진정된 데 비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싸우는 소수자들이 있다. 성적 소수자들도 그런 경우다. 성적 소수자 인권 문제와 관련해 '엑스존'에 대한 행정소송 사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02년 1월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은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이를 고시한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인정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재판은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식으로 다룬 재판 중 하나로 기록됐다. 2002년 6월에 열린 제3회 퀴어문화축제는 최초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식행사로 확대됐다. 원내 정당인 민주노동당도 올해 9월 '성소수자위원회'를 발족하고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한 십대 동성애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적 배려가 아쉬운 것은 비단 성적 소수자 문제만이 아니다. 장애인들의 인권 또한 점검해야 할 주요 과제다. 장애인 인권 문제 중 사회 쟁점으로 부각한 내용은 이동권 보장이었다.

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건과 2002년 5월의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고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헌법소원, 국가인권위 진정, 수십 차례에 걸친 버스 타기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2004년까지 모든 역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장애인을 위한 무료 셔틀버스, 심부름센터, 휠체어 콜택시를 도입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을 받아 냈다. 올 들어 건설교통부는 교통시설과 교통수단에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 규정으로 하는 내용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정보인권, 새롭게 부각

학생과 교사에 관한 수십가지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학생과 교사에 관한 수십가지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 인권위 김윤섭
정보화 속도가 빠른 우리 사회에 '정보인권'이란 개념이 대중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기억할 만한 대목이다. 특히 정보인권에 대한 논의가 확산한 데에는 지난해 교육부가 추진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학생들의 수십 가지 정보를 한곳에 모으려는 NEIS 구축 시도는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쳐 난항을 겪었다. 그 무렵 국가인권위는 NEIS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만큼 교무/학사·입(진)학·보건 영역은 입력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교육인적자원부에 권고했다.

개인이 먼저 나서다

2003년 5월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병역을 거부한 오아무개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국가의 형벌권과 개인의 양심의 자유권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형벌권이 한발 양보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마침내 대법원에서도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적, 양심적 결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 병역의 의무를 강제하기보다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도 결정문에서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법원의 이러한 요구에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04년 9월).

인권 관련 움직임 가운데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현상은 개인들의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새롭게 인권 쟁점으로 부각된 현안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고등학생 강의석군은 교내 종교 자유를 외치며 학교와 종교의 권위라는 거대한 벽에 도전했다. 강군은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예배를 강요하는 것에 반대하며 예배선택권을 요구했다. 학교는 이에 대해 강의석군을 제적하고, 이에 맞서 강의석군은 무기한 단식을 단행했다.

강의석군은 46일간에 걸친 단식 끝에 종교의 자유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학교 측과 강의석군은 학생들의 예배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데 합의하고, 이에 강의석군은 단식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지난 3년 간 쟁점으로 부각한 인권 현안은 이 밖에도 많다. 1기에 이어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과거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에 대해 활발히 조사했다. 빈곤 문제 또한 우리 사회의 안정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06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와 한달 수입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최고 월 122만원)인 차상위계층을 합한 빈곤층이 전 국민의 10.4%에 달한다.

아울러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문제는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사회권적 인권 가운데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인권 현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는 그 존재가 가진 힘(공권력) 때문에 언제든지 국민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어느 존재보다도 자기 성찰과 반성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