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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리역 앞에 모여 소주를 마시고 있는 노숙인들.
ⓒ 정현미
2년 전 문을 연 다일천사병원. 노숙자와 외국인노동자 등 제도권 밖 사람들의 다친 몸은 물론 마음까지 치료해주는 병원이라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해 집을 나섰다.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청량리역에 도착해보니 벤치 근처에 노숙인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모여앉아 소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몸이 편찮으시면 어떻게 하시나요? 병원은 어느 병원으로...”

나를 휙 돌아본 목발을 짚은 노숙인의 표정을 보는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질식해버릴 것 같았다.

“넌 뭔데 내가 병원에 가든지 말든지 상관이야? 내 몸뚱이 아픈 데에 니x이 돈 대줄꺼야?”

갑자기 대여섯 명의 노숙인이 일어서며 덤벼들 기세라 아무 대답도 못 듣고 얼른 롯데백화점 앞 밝은 곳으로 피했다. 아파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그들의 상처에 내가 기름을 부은 겪이 되었나보다.

이렇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서울 청량리역 뒤편에 위치한 다일천사병원은 소외된 이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기 위해 최일도 목사가 6000여명으로부터 8년간 받은 후원금 50억여 원으로 세운 병원이다.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

▲ 다일천사병원 계단 벽면에 빼곡히 붙어있는 나무명패
ⓒ 정현미
다일천사병원에 들어서자 이 병원이 6000여 명의 사랑으로 지어진 병원이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건물 계단 벽면에 빼곡히 붙여진 후원자들의 나무명패 때문이다. 다일천사병원은 6층 건물에서 산부인과, 정형외과, 치과 등 모두 12개 과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은 한 명의 상근의사와 60여명의 자원봉사 의사가 돌아가며 시간을 내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제도권 밖 사람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었다. 특히 다일천사병원은 규모가 큰 병원인 만큼 한달에 1억 5천에서 2억여 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정부의 후원 없이 민간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다일천사병원 사회복지과는 지난 2년간의 노하우를 토대로 제도권 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상담을 통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주민등록 말소 벌금까지 내주며 개인별로 알맞은 절차를 밟도록 병원 업무 이상의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김요한 다일천사병원장은 “병원은 ‘의료의 질’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병원만이 할 수 있는 ‘의료사각지대’ 사람들에 대한 진료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치료하는 것 보다는 정성을 다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 노숙인들을 치료하고 있는 다일천사병원의 따뜻한 손길
ⓒ 다일천사병원
하지만 제도권 안에 있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어 치료를 해줄 때가 있다는 다일천사병원. 다음은 병원매일일지 5월 9일자 사례이다.

옷차림새도 전혀 구색을 갖추지 못 한 채 이것저것 주워 입은 모양새였고, 모자 밑으론 흰머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할머니의 손가락 두개가 새까맣게 썩어 들어가 마치 타고남은 숯 조각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당뇨 때문에 이미 몇 개의 손가락도 잘린 상태라 성한 손가락은 몇 개 안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된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아들은 3층집까지 소유한 부자(?)였다. 우리가 어이없어하자 이 할머니, 애절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아들이 빚 갚느라고 쩔쩔 매, 그래서 어쩔 수 없어. 나 어떻게 이 병원에서 치료 좀 받을 수 없을까?”

그 상황에서도 행여 아들이 욕먹을까봐 당신 자식을 두둔하시는 할머니. 우리 병원 입장에서 보면 이 할머니는 진료대상자가 안 되지만 거의 방임상태기에, 만일 우리마저 몰라라 한다면... 진료를 받게 하니 예상대로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수술을 위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밤늦게야 통화된 며느리가 툭 던지는 한마디 “며칠 있다가 찾아가 볼게요.” - 병원매일일지 5월 9일 -


이렇게 의료 혜택의 제도권 안에는 있지만 정작 갈 곳 없는 환경에 처해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더구나 요즘 경기가 어려워지고 날씨도 쌀쌀해지자 노숙자수가 늘었고 그만큼 다일천사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후원금에 의존하는 운영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김 병원장은 말했다.

김 병원장은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끊는 것이 후원”이라며 “더구나 정치적인 민간단체보다 의료·봉사의 민간단체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열악하다”며 안정적 의료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독여줘

▲ 다일천사병원의 치료중인 모습
ⓒ 다일천사병원
다일천사병원은 노숙인들에게 단순히 다친 곳에 소독약을 발라주고 진통·소염제를 주는 등의 의료행위 이상으로 다양한 질병에 수술과 입원까지 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노숙 환자들의 대부분이 앓고 있는 알콜중독 증상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하고 상담과 입원 치료도 하고 있었다.

안은옥 사회복지사는 “정신장애의 일종인 알콜중독은 환각·환청이 들려 사회적응을 못하고 가정폭력을 동반할 가능성도 높은 무서운 질병”이라며 “알콜중독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질병으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 복지사는 또 “알콜중독자는 사람들간의 대화법도 익숙치않은 사회부적응자”라며 “노숙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이러한 알콜중독자에 대한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숙생활을 하다보면 질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김 병원장은 무엇보다 노숙 생활을 시작한 초기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예방차원의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병원장은 “노숙생활을 몇 개월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노숙생활이 체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노숙생활이 익숙한 이들은 센터에 들어가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싫어 다시 거리로 나오는 사례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병원장은 “인생화복이 개인의 책임으로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노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 말을 듣자 원장실 문 앞에서 만난 남자아이 두 명이 떠올랐다. 봉사활동을 하고 이들은 비록 봉사활동 확인서를 한 장씩 들고 있었지만 “이 병원 환자들이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냥 많이 아프겠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해 다일천사병원이 우리사회에 기여하는 또 다른 역할을 생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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