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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역 근처 쪽방촌에 위치한 광야교회
영등포 역 근처 쪽방촌에 위치한 광야교회 ⓒ 정현미
서울 영등포역 근처 노숙인과 쪽방 주민 700여 명이 배가 고플 때 찾아가는 곳이 있다. 영등포 광야교회.

지난 18일 이 교회의 위치를 여기저기서 수소문해 찾아다니다가 기자는 광야교회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큰 교회 건물을 예상하고 찾아갔던 게 실수였다. 그 정도의 식솔을 거느리려면 신도도 많고 지원여력도 있는, 또 근사한 모자이크 유리창문과 교회 꼭대기에 걸려 빛나는 십자가 정도는 세워져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온 길을 다시 되돌아오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쪽방촌 한 귀퉁이에 녹이 슨 대문의 한쪽 문짝이 떨어진 채 열려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광야교회였다.

대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컴컴한 신발장 옆으로 교회 강당으로 통하는 문짝 떨어진 통로가 보였다. 내가 입고 간 아이보리색 반코트가 왠지 더 새하얗게 보였다.

조금 들어가다보니 녹색이라고 하기도, 회색이나 검정이라 하기에도 뭣한 트레이닝 바지를 배 위까지 치켜 입은 두명의 할아버지가 나왔다.

“여기서 지내시나요? 사무실은 어디인가요?”

기자가 다가가 재차 물어도 할아버지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슬리퍼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나도 할아버지들을 따라 대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광야교회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가 기자에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쪽방촌 골목 앞에 쭈그려 앉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았지만 싸늘한 눈초리로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뭘 구경하러 왔어? 여기 허물어진다니까 구경하러 왔어? 늬들 눈엔 우리가 원숭이로 보이지?”

기자가 광야교회 주변을 기웃거릴 때부터 주시하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을 튀며 삿대질을 했다. 당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괜히 옆에 있던 검정 강아지에게 친한 척을 하며 사회복지사를 기다렸다.

밖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내 몸에 이곳 냄새가 스며들어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쯤 쪽방상담소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최동귀 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와 마주 앉자 한 명 정도만이 더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사무실은 비좁았다.

최 사회복지사는 "이제 곧 광야교회를 포함해 남아 있는 쪽방촌이 ‘도시미관’이란 이유로 철거될 예정"이라면서 "내년 3월 이들의 생활공간이 허물어지면 쪽방주민 500여명과 광야교회에서 지내는 100여명 등 700여명은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역정을 내던 그 할머니는 바로 길옆 쪽방촌이 허물어져 길거리로 나앉은 주민들의 애통함을 지켜봤을 테고 ‘외부인’인 내가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지역의 빈민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줬던 광야교회가 철거되면 이들 700여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지난 87년 임명희 목사가 문을 연 광야교회는 지금까지 노숙인과 쪽방주민들에게 무료급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줬을 뿐 아니라 의료봉사와 이·미용 봉사, 사랑의 쌀과 밑반찬 나눠주기 등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또 외로운 이들과 비노숙인을 연결해 온정을 전해주는 사랑의 결연 운동과 온천나들이, 무료합동결혼식 등 심리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는 곳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2박 3일간 빈민, 노숙인의 생활을 해보는 체험학교(문의 02-2068-4353)도 진행하고, 광야교회 직원과 교회 청년회 6명은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순찰활동을 하고 있었다.

최 복지사는 “작년에도 영등포역 지역에서 4명 정도 동사를 했다”며 “순찰을 돌다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찬 곳에서 자는 노숙인을 보면 따뜻한 드롭인 센터에 모시고 와 주무시게 한다”고 전했다.

광야교회의 철거를 앞두고 정부와 협상 중인 최 복지사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라며 한숨을 토했다.

“광야교회는 매달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을 제공하느라 다른 큰 교회들처럼 건물을 증축하거나 헌금을 모으지 않고 후원금 모두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왔어요. 철거 후 이 곳에 새 건물을 지으려고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건축비 15억 원을 모으기엔 역부족이죠. 그나마 당장 위급한 노숙인조차도 보호할 곳이 없어지게 돼 막막합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짓더라도 노숙인들 곁에 있어야지요. 그도 안 되면 철거반대투쟁도 불사할 겁니다.”

광야교회는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과 함께 ‘희망’을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라는 최 복지사는 말을 이었다.

광야교회에서 노숙인을 위해 마련한 2인실 쪽방
광야교회에서 노숙인을 위해 마련한 2인실 쪽방 ⓒ 정현미
“자신의 인생에 희망을 버리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노숙인들이 광야교회의 내적 치유프로그램에 참가해 목사님과의 1대일 대화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갖고 사회로 다시 재활하는 모습을 볼 때 제일 뿌듯해요. 지금도 광야교회에서 생활하며 정서적 안정을 되찾아 직장을 다니는 분이 계세요.”

며칠에 걸쳐 목사님과 1대1로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의 아픔을 드러내고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내적치유프로그램’은 그렇게 광야교회를 찾은 노숙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주고 있었다.

최 복지사는 교회 강당과 바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주방, 그리고 광야교회의 20여개의 2인실 쪽방을 보여주며 노숙자가 되기까지의 배경과 과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같이 살던 아들이 사업에 실패해 방 2칸 짜리로 이사 갔다가, 그나마도 빚에 쫓겨 단칸방으로 이사가게 되자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허름한 쪽방 골목과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한 곳의 방문을 열자 한 할머니가 잠을 자고 있었다. 할머니는 얼른 일어나 앉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전기세도 아까운데…. 아껴 써야지요”라며 듬성듬성한 앞니를 드러내면서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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