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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뉴스는 시대역행적 보수화와 냉전지향적이고 반개혁적인 기득권 옹호의 편향성을 노정하고 있다. 미미하나마 군사독재 시절에도 추구했던 민주지향적 개혁성을 홀대한 지 오래 됐다."

MBC 뉴스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중견기자들이 책임자급 간부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동조합 전임자 출신 중견기자 11명은 지난 23일 보도국 게시판에 올린 '17년 전의 정신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MBC 뉴스의 쇄신을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81년부터 87년에 입사한 경력 18∼24년차 중견기자들로 MBC 노조창립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노조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현재 보도국, 보도제작국, 해설위원실 등에서 차·부장, 부국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중견기자들은 특히 MBC의 반개혁적이고 시대역행적인 논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이들은 "시대가 바뀌고, 시청자들이 변하고, 정치상황이 달라졌는데도 MBC 뉴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상명하달식 작위적 보도가 난무한다"고 비판했다. 또 "기자들은 일등의식을 잃어가고 있으며 사회적 영향력도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MBC뉴스 추락의 원인으로 보도책임자들의 철학부재를 가장 먼저 꼽았다. 신념 없이 아랫목과 양지만을 지향해온 인사들이 보도방향과 인사를 좌지우지한 결과라는 것이다. 편집회의를 통한 내부비판은 물론 최소한의 토론도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 개탄했다. 한 중견기자는 MBC뉴스 추락의 책임자급으로 이긍희 사장과 구본홍 보도본부장 등 과거 군사정권 때부터 요직을 차지해온 간부들을 지목했다.

중견기자들은 MBC뉴스 부활을 위해 '방송민주화' 원년의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87년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 활동과 노동조합 창립 당시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 겸허한 반성부터 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보도국 기수별 모임..언론노조 "수구로 갈 작정인가"

후배 기자들도 선배들의 이같은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85년 이후 입사한 기자들도 최근 기수별 모임을 갖고 MBC 보도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후배기자들은 뉴스의 보수화, 보도국 간부들의 문제점과 함께 고민이 부족한 일선 기자들의 태도 등을 포함, 대응방안을 세우자는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은 24일 기수대표 모임을 열고 MBC 기자회 쇄신 방안 등을 폭넓게 의논했다. 이에 따라 보도국 기자들은 임기가 끝난 MBC 기자회장 후임을 선출하는 등 조직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또 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과의 공조를 모색하는 한편 회사 차원의 중장기 대책 마련도 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 기관지 <언론노보>(11월 17일자)는 "최근 일련의 MBC뉴스를 보면 ‘보수를 넘어 수구로 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며 보수논조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언론노보>는 지난 14일 '뉴스데스크'를 사례로 들었다. 이날 뉴스데스크는 머릿기사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기사 2건(북핵 조속 해결, 대기업 위기 조장)을 차례로 보도한 뒤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대북공조 우려)을 단신으로 내보냈다. 해외순방 중 대통령 발언에 대해 유독 야당의 반대논평만 보도한 형식은 극히 이례적이다.

같은 날 KBS와 SBS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똑같이 보도했지만 MBC처럼 야당 논평은 물론 여야의 어떤 반응도 싣지 않았다. <언론노보>는 "MBC는 고교등급제 문제에서도 노골적인 물타기를 시도했고, 노동자들의 분노에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면서 "공영방송이라고 하면서 아예 수구로 갈 작정이냐"고 따졌다.

MBC 구성원 "뉴스 보수화 동감" 37.2%
노조 지난해 9월 설문조사.."그렇지 않다" 19.6%

MBC 뉴스의 보수화 또는 연성화에 대한 우려는 이긍희 사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한 뒤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MBC 노조가 지난해 실시한 사내 여론조사에서도 뉴스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매우 높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위원장 최승호)가 지난해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2100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MBC 뉴스의 보수화'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이 그렇지 않다는 답변보다 두배 정도 많았다.

MBC 구성원들은 보도프로그램의 보수화 주장에 대해 37.2%가 `동의한다'고 응답한데 비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9.6%에 그쳤다. 39.8%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보도프로그램의 연성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 39.7%, 반대 13.7%로 역시 동의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보도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묻는 질문에는 52.6%가 보통이라고 대답했고, 28.9%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대신 공정하다는 응답은 17.5%에 머물렀다. 공영방송 또는 공정방송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장르별 프로그램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뉴스부문이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시사프로그램(43.9%), 드라마(43.6%), 교양(32.6%) 부문은 상위를 차지했지만 예능(24.6%), 뉴스(13.9%) 등은 후순위로 밀렸다.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17년 전의 정신으로...

다음달 2일이면 문화방송이 창사 43주년을, 8일이면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창립 17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문화방송은 눈부신 성장과 안정을 이룩했습니다. 모질고 험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가위눌림과 민주화 과정에서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떠올리면 이 만큼의 성장과 안정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이 정도 현실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심정 또한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소임이 나라의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최고 언론사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나아가 21세기 방송문화를 선도하는 데 있음을 상기하면 자괴심마저 듭니다.

작금의 우리 현실을 되돌아봅시다. 방송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우리보다 어려운 동지로 보고 동조파업까지 하며 지원했던 KBS는 그 영향력이나 공영성, 개혁성에서 우리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쟁상대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후발 민영 상업방송사가 우리의 도덕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한 냉정한 시청자들의 이탈은 계속될 전망이고, 우리의 위상이 시중 방송사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어느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좋은 게 좋다'는 가족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 풍토에 매몰돼 있습니다. 당장의 평온을 깨뜨리기가 성가시고 불필요한 오해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위상추락 또한 가속화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도국 기자로서 노동조합 전임자였던 우리는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그리고 참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 회사의 위상추락의 원인이야 보는 눈에 따라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원들의 책임의식 결여와 그에 따른 부문별. 장르별 경쟁력 저하, 그리고 경영진의 무능과 전망 부재, 통합·조정 능력의 상실이 가장 큰 이유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도 MBC 뉴스와 관련해 보도부문의 문제만을 제한적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MBC뉴스는 시대역행적인 보수화와 냉전지향적이고 반개혁적인 기득권 옹호의 편향성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미미하나마 군사독재 시절에도 추구하고 보여주었던, 그래서 MBC뉴스의 정체성으로 인식되었던 민주지향적 개혁성을 홀대한 지 오랩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바뀌고, 시청자들이 변하고, 정치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우리 뉴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상명하달식 작위적 보도가 난무합니다. 기자들은 일등의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영향력 또한 현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런 차제에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의제설정 기능을 기대하기는 난망합니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가장 큰 원인은 보도책임자들의 철학부재입니다.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 항상 아랫목과 양지만을 지향해 온 인사들이 보도의 방향과 인사를 좌지우지한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그 결과 편집회의에서의 내부 비판은 물론 최소한의 토론도 발붙일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추동되는 청신한 기풍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현실과 원인을 정확히 바라보고 겸허히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억압받지 않는 양심과 토론을 통한 균형, 조직 내부에서의 언론자유를 통한 민주화라는 언론의 보편적 가치를 먼저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난 87년 방송민주화 추진위원회 활동과 노동조합 창립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 갈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안이 MBC뉴스의 부활을 위해 가감없이 받아들여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4년 11월 23일
81년부터 87년 사이 입사한 보도부문 노동조합 전임자 11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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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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