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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의 월병 봉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주원장이 중추절을 기하여 봉기하고자 결정한 후 월병 속에 쪽지를 넣어 여기저기 선물을 하듯 연락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명이 건국한 후부터 중추절과 월병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

담천의는 월병을 받아 들고 유지를 벗겨냈다. 둥그런 모양의 월병은 어린 기억을 끄집어 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곤 하던 월병이다.

소주(蘇州) 지방의 월병은 이것과는 다르다. 두께가 얇고 바삭하면서 설탕과 기름이 많이 들어가 진한 맛을 낸다. 껍질이 흰색인 소주식 월병은 사탕과 같아 그것을 입에 한입 베어 물면 향기로운 맛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담천의는 갑자기 술병을 들고 입안 가득히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크...”

목구멍이 얼얼하다. 뱃속이 화끈해 온다. 그는 대추 한 알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허....역시 배움이 빠른 시주시구려. 한번 가르치니 벌써 주도에 입문하다니...”

하지만 말하는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애석함이 가득하다. 대추씨를 뱉어 낸 담천의가 아직도 화끈거리는 입안과 목을 달래기 위해 월병의 한쪽을 떼어내 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찰의 월병은 확실히 다르다. 자극적인 맛이나 향기가 없으면서도 담백한 맛이 있다. 담천의가 조금 더 떼 입에 넣으려 하자 참지 못한 젊은 승려가 급히 말렸다.

“잠...잠깐..담시주. 그..건 사실...”
“월병을 말하는 것이오?”

이미 그의 눈에 월병을 맛보려는 기색이 떠올라 있으니 담천의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모른척하며 떼 낸 월병 조각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것을 보는 그의 시선엔 아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남은...건 소승을 주시면 안되겠소이까? 그걸 슬쩍...아니 집어 나온 건 소승인데 그래도 맛은 봐야 하지 않겠소?”

말과 함께 그의 손이 빠르게 월병으로 움직인다. 혹시 담천의가 먹어 버릴까 두려워하는 표정이다.

“스님과 같이 주도에 통달하신 분이 어찌 안주를 탐하시오?”

술에 약한 담천의의 속에 들어갈 만큼 술도 들어갔다. 담천의는 손바닥 위에 놓인 월병을 잡아오는 그의 손을 살짝 피했다. 허나 그의 손은 기묘한 각도로 월병을 노리며 뒤를 쫒았다. 소림의 절기 중 금나수(擒拏手)의 총화라는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다.

미리 피할 곳을 차단하고 나아갈 방향과 각도를 계산해 뻗어오는 금룡십이해는 역시 소림의 절기였다. 하지만 담천의의 손은 유려하다. 손바닥을 편 채 아슬아슬 그의 공격을 피하고 있다. 자칫하면 손바닥에 올린 월병조각이 땅에 떨어질 판이다.

“에이....관둡시다. 관 둬. 안 먹겠소. 시주나 많이 드시오.”

그는 몇 번 시도하다 안 되자 금세 포기해 버렸다. 그리곤 호로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나서는 대추알을 씹었다. 담천의는 손바닥 그대로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소승 주시는 것이오?”

담천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의 얼굴도 불그레하다.

“혹시 집으려하면 조금 전처럼 피하기 없기요?”
“한 가지만 대답해 주면 가만히 있겠소.”
“무엇이오? 소승이 왜 술을 마시냐는 거요?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냐는 거요?”

누구나 젊은 승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것을 물을 것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 만난 외부인이 많지 않을 것이다.

“중도 인간이오. 아니 나는 사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 해도 중이 될 수 없는 인간이오. 시주도 시주만의 괴로움이 있듯이 소승도 소승만의 아픔이 있소.”

사람마다 가진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색깔과 그 종류는 달라도 느끼는 고통은 거의 같다. 그러나 담천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이 술 이름이 뭐냐는거요.”
“..........?”

그는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자신만큼이나 괴짜다. 그는 갑자기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담시주는 사부의 눈에 들만큼 대단한 사람이 맞구려. 정말 대단하오.”

그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떡거리며 담천의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왜 사부가 이 사람을 갑자기 불러 손속을 나누는가 했더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왜 사부가 이 사람에게 애써 마지막 심득을 전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릇의 크기를 잴 수 없는 사람이다. 화를 내고, 슬퍼할 줄 알며, 아픔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소승은 이걸 먹겠소.”

그는 생각을 떨쳐 버리듯 담천의 손에 있는 월병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술이름은 후아주요. 문제는 원숭이가 모은 과일이 아니라 소승이 모은 것이지만 말이오.”

결국 자신이 빚은 술이라는 말이다.

“한모금 더 마셔도 되겠소?”

담천의의 말에 그는 호로병을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이미 바닥인 것을 보니 한두모금 뿐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드리고는 싶지만 이만 가보아야겠소. 방장실에서 회의가 끝난 모양이오.”

분명 그는 고수다. 담천의도 사람들이 내려오는 기척을 느꼈다. 꽤 먼 거리다. 결코 담천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다.

“소승과 술 마셨단 소리는 마시오. 만약 이번에 사부가 알면 소승을 때려죽이려 들거요.”

그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천림해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순식간에 거의 오장 정도의 절벽 아래로 사라져 갔다. 그에게 합장이라든가, 불호라든가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어도 그에게는 승려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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