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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전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무료로 배포되는 무료 일간지들을 봤을 것이다. 또 전철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료일간지를 보고 있는 모습을 접했을 것이다.

무료하기 그지없는 출근길에 심심하긴 한데 신문을 사보자니 돈이 아깝고, 책을 들고 다니자니 다 읽지도 못할 뿐더러 무겁기까지 한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뚱멀뚱 서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거나 등교를 했다.

그런 와중에 주요 일간지처럼 돈을 받지도 않고, 분량도 출근길에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무료 일간지가 등장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료한 출근길을 달랠 수 있어 좋고, 무료 일간지를 만드는 측에서는 틈새시장을 확보해 광고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며,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처음 하나에 불과하던 무료 일간지가 이제는 무려 5개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무료 스포츠 신문까지 배포되고 있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은 출근길에 스포츠 신문을 제외하고 나머지 5개 무료 일간지는 다 보고도 시간이 남을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겉은 몇 십만 부를 찍는다는 무료 일간지이지만 한 시간만 마음잡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십만 명에게 뿌리는 무료 광고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늘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 다섯 개 신문을 다 가져와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았다. 각 이니셜만 들어도 무료 일간지 이름이 금방 알 수 있으므로 편의상 가, 나, 다, 라, 마 신문이라고 칭하겠다.

먼저 가 신문을 살펴보자. 2004년 11월 24일자 가 신문은 총 38면이었다. 그 38면의 광고 가운데 단지 전면 광고만으로 무려 20개면이 채워져 있었다. 즉 전면광고면과 아닌 면 비율이 20:18 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머지 18개면 가운데 부분 광고가 늘 있었으며 광고가 없는 면은 단지 3면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중 한 면은 만화였다. 이 신문의 경우 굳이 더 파고들지 않아도 광고에 점령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 신문에 이어 뛰어든 나 신문을 살펴보자. 나 신문 역시 총 38면 이었고 전면광고에 쓰인 면이 총 19면이었다. 그런데 이 나 신문의 경우 광고들이 다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나 신문의 2면 제목이 '은행은 고객을 봉으로 아는가'이다. 무심결에 보면 마치 은행의 비리에 대해 고발하는 기사인 것 같다. 게다가 무지한 난 열심히 탐독하면서 전반부까지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책 소개가 나오더니 결국에 책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옆에 저자와의 대화와 바로 아랫단의 책 소개를 보고 바로 파악하지 못한 내가 바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위쪽에는 PR_PAGE라고까지 조그맣게 써 있었다.

그보다 더 독특한 광고는 박스 기사 형태와 똑같이 만들어 놓고 제목으로 '500만 화소급 디카'라고 해놓은 것이었다. 무료 일간지들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기에 박스 기사형태로 넣어두니 마치 기사인 듯했다. 이 나 신문의 20면에 실린 박스 기사 모양의 광고는 대체로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을 표시한데 비해 '500만 화소급 디카'는 마치 기사인양 편집이 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고정 코너인양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26면에 보면 '지르자. 뛰자. 날자. H합 Fly'라면서 언제 콘서트가 있고 그런 내용인데 결국은 모 오디오 닷컴 사이트에 관한 광고다. 이건 매일 있어서 마치 한 중국어 코너를 한 학원에 맡기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서 처음에는 이 사이트의 한 코너인줄 알았다. 그런데 11월 22일자에 실린 내용을 보면 광고형태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어 광고 기사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다 신문을 살펴보자. 다 신문은 총지면이 38면이었다. 그리고 전면 광고에 할애한 지면은 총 12면이었다. 광고가 거의 없는 듯하지만 대신 다 신문의 경우는 나 신문에서 예로 들었던 두 번째 형태의 광고가 다른 신문에 비해 많았다.

다 신문의 경우 특징적인 광고 지면으로는 21면을 들 수 있다. 21면에 의사 사진이 나오고 마치 광고인양 보이는 기사가 있는데 놀랍게도 이건 광고가 아니라 기자 이름까지 적혀 있는 기사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덕분에 그 아래 광고들이 얼핏 보기에 같이 기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라 신문. 라 신문은 총지면 30면에 전면 광고에 할애한 지면이 11면이었다. 광고를 싣는 방법은 다른 신문과 대동소이했다.

라 신문의 특징적 광고 지면은 10면이었다. 이 10면은 책 소개인데 얼핏 보기에 마치 새로 나온 신간 책 코너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세세히 살펴보면 그 책을 소개한 것이 기자가 아니라 모 출판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사 내용 가운데도 '돌풍을 일으키다'등 광고성 글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말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마 신문의 경우 총 30면이었고 그 가운데 전면 광고가 7개면에 불과했다. 광고 방식은 역시 비슷했지만, 이 신문은 주로 만화를 위주로 하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듯했다. 이 신문은 무료 일간지라기보다 무료 만화지에 가까운 성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위 각 신문들이 무료로 일간지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광고들을 실어 수익을 추구하는 것까지 크게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설령 광고 비율이 지나치다 싶다 싶어도 그냥 안 보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광고 비율을 떠나 정말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무료 일간지들이 광고를 배치하고 편집하는 방식이다. 위에서 분석한 바를 종합해보면 교묘하게 광고가 실린 경우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사 형태를 가장한 광고이며, 두 번째는 무료일간지 지면 크기 특성상 기사들이 박스형으로 처리된다는 점에 착안해 광고 역시 박스형으로 기사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치 고정 코너인양 광고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기사와 그에 관련된 광고를 적절히 배치하여 기사인 듯, 광고인 듯 편집하는 것이다.

비록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라고 하나 어디까지나 몇 십만 부가 보는 언론이라고 자부하려 한다면 읽는 사람이 주의를 기울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같은 행태들이 주요 일간지라고 해서 아예 없지는 않다. 특히나 첫 번째의 경우 일간지에서도 성행하고 있으며, 두 번째의 경우도 같은 크기로 주요 일간지에도 기사가 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주요 일간지의 경우 지면 크기가 무료 일간지보다 배로 크기에 광고임을 쉽게 파악하는 게 가능한데 비해 무료 일간지는 지면 크기가 다소 작고 기사들이 박스형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박스형으로 처리되는 광고들도 기사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절반은 전면 광고들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면에 광고들이 존재하는 데가 마치 기사인양 하는 광고들까지 자리 잡고 있는 지면 구성이 과연 신문인가, 광고지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큰 제목만 보고 넘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보기에 따라 독자를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에게 보다 좋은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료 일간지들이 광고형태를 조금은 바꾸어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시민들도 한번쯤 더 생각해보는 여유가 필요할 때다. 무료라고 해서 무턱대고 얼씨구나 좋다고 받아보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광고를 외워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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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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