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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오리 모양 연적, 등에 붙은 연꽃을 보려고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약간 뒤로 돌리고 눈동자까지 뒤로 돌린 모습이다. 장난기가 온 몸에 덕지덕지 묻어나고 있다.
청자 오리 모양 연적, 등에 붙은 연꽃을 보려고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약간 뒤로 돌리고 눈동자까지 뒤로 돌린 모습이다. 장난기가 온 몸에 덕지덕지 묻어나고 있다. ⓒ 간송미술관화보집
청자와 같은 그릇을 흔히 도자기라고 한다. 도자기는 질그릇을 뜻하는 도기와 자기를 통틀어 붙인 말이다. 질그릇은 만들어 사용하지 않은 민족이 없다. 그러나 전근대시기 자기를 만들 수 있었던 민족은 중국과 우리 그리고 베트남밖에 없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자기가 조잡하여 자기 축에 끼워주지 않는다면, 중국과 우리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은 옥을 귀하고 신성하게 여겼다. 옥을 만들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자기는 인공적으로 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 끝에 탄생했다. 우리는 중국의 자기를 본뜨고 그 기술을 배워 고려 청자를 만들었고, 조선 백자를 생산했다.

청자는 자기 중에서 푸르스름한 신비한 색을 띤 자기를 말한다. 청자를 만드는 흙은 따로 있다. 청자토로 모양을 만들고 900도 정도로 굽고 그 위에 유약을 발라 1200도에서 1300도 가까운 온도로 구우면 청자가 된다고 한다. 1300도에 가까운 온도는 잘 만든 가마에 3일 정도로 좋은 장작을 때야 가능하다고 한다.

순화4년명 청자항아리. 993년에 만든 청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청자다. 청자의 제대로 된 색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자의 위대한 탄생을 알리고 있다.
순화4년명 청자항아리. 993년에 만든 청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청자다. 청자의 제대로 된 색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청자의 위대한 탄생을 알리고 있다. ⓒ 청자화보집
유약은 양잿물 비슷한데, 이 속에는 철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환원법을 사용하여 자기를 만든다. 유약을 바른 그릇을 가마에 넣고 장작을 때서 온도가 900도 가까이 되었을 때, 가마의 입구를 막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토와 유약 속의 철분은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제2철(Fe₂O₃)이 되는데, 이때의 색깔은 누르면서 붉은 색이 감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 가마의 입구를 막아 산소 유입량을 줄이면 1200도 이상의 열기는 산화제2철의 산소를 빼앗아 불타려고 하고, 그러면 산화제2철은 산소를 빼앗겨 산화제1철(FeO)이 된다. 이 산화제1철이 약 3~5% 정도 잔존할 때의 색깔이 바로 청자의 색이라고 한다.

우리의 청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밑에 순화 4년(993년)에 만들었다는 글자가 새겨진 동이 같은 꽃병이다. 이후에 고려 청자는 더욱 발전을 거듭하여 중국 사람들도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청자가 되었다.

청자의 고고한 듯 은은한 귀티 나는 색은 고려의 지배층 귀족들의 취향과 어울려 맞아 떨어졌다. 청자는 고려의 귀족적 성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던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가장 발전하였다.

청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기는 매우 어렵다. 칼로 새겨 넣는 상감법이 등장하기 이전의 청자를 순(수)청자라고 한다. 무늬넣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색깔과 모양으로 최고의 경지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그야말로 모양과 색깔로 승부했다. 참외모양 청자 꽃병은 이런 시기의 대표작이다. 참외의 독특한 곡선미를 살려 몸통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래에 주름잡힌 받침대를 만들어 끼우고, 위에는 꽃 모양의 높은 주둥이를 만들어 붙였다.

색과 모양이 어울려 적막하고 고귀한 이상의 세상을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 꽃병에 무슨 꽃을 꽂을 수 있으랴. 병 자체가 그냥 이상이고 고귀의 화신이 되어 버린 듯하다. 대나무 모양의 술병도 고귀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땡깡부리는 자식과 그것을 모두 참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진 연적이다. 어떤 이상적인 인간의 정보다 어머니의 정이 가장 지고의 정임을 말해주고 있다.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땡깡부리는 자식과 그것을 모두 참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진 연적이다. 어떤 이상적인 인간의 정보다 어머니의 정이 가장 지고의 정임을 말해주고 있다. ⓒ 청자화보집
원숭이 모자 모양의 연적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자식 원숭이가 양팔과 다리를 뻗쳐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땡깡'을 피우고 있다. 엄마 원숭이는 아들을 한없는 애정으로 쳐다보면서 보듬으려 애쓰고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이 인간의 정 중에서 가장 최고의 이상적인 정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술을 마시면 고귀하고 이상적인 세상에 금방 다가갈 수 있는 것인가? 청자 중에는 술병과 술잔이 많다. 넓은 잔받침을 가진 연꽃 봉우리 모양의 술잔은 술잔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다. 연꽃 모양의 술잔은 연꽃이 막 피어 벌어지는 봉오리 모양이다.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진부하다. 황홀하다고 표현해도 모자랄 것 같다.

청자 연꽃 모양 연적. 반쯤 벌어진 연꽃 모양의 잔이다. 이 잔으로 술을 따라 마시면 그 술은 그냥 신비스럽고 영통한 술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저 잔으로 술 한 잔 마셔 보았으면...
청자 연꽃 모양 연적. 반쯤 벌어진 연꽃 모양의 잔이다. 이 잔으로 술을 따라 마시면 그 술은 그냥 신비스럽고 영통한 술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저 잔으로 술 한 잔 마셔 보았으면... ⓒ 청자화보집
저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맹물이라고 해도 그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저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이미 범상의 술이 아니다. 저절로 이상세계에 닿아 버릴 것 같다.

부처님께 올리는 술잔이었을까. 고려 귀족들이 마시고 스스로 부처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부했을까. 술잔은 잔에 담기는 술의 성향까지도 결정해 버리고 있다. 저 연꽃 술잔으로 술 마셔보지 못한 사람 이상을 논하지 말라.

술병으로는 매병 모양이 많다. 어깨가 넓고 주둥이가 작으며 키가 훤칠한 고려의 매병은 잔으로도 쓸 수 있는 뚜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화꽃을 꽂는 꽃병이 아니라 술병이었다. 모양이 벌써 아슬아슬하다. 밑으로 쭉 뻗어 내리는 곡선이 가냘프다. 저런 술병에 더 큰 의미를 알리기 위해 음각이나 양각으로 연꽃 등의 무늬를 새겨 넣어 화려해지기도 했다.

청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 연꽃이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술병, 연꽃으로 만든 진리의 술임을 술병이 자신의 몸으로 말하고 있다.
청자 음각 연꽃무늬 매병. 연꽃이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술병, 연꽃으로 만든 진리의 술임을 술병이 자신의 몸으로 말하고 있다. ⓒ 청자화보집
연꽃 무늬가 가득 새겨진 저 청자술병에 술을 담아 따라 내면 그 술 또한 예사로운 술이 될 수가 없다. 부처님의 진리를 가득 담은 술이었으니, 영통해야 할 것이며 신통력까지 갖춘 신비의 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술병의 술 한잔 마시면 부처님의 은덕을 입어 곱추도 허리를 펴고 눈먼 봉사도 눈을 뜰 것 같다.

이런 술을 마셔대면서 고귀한 세상을 들락거릴 수 있었던 귀족들이 세속적인 생활에 찌들어 아옹다옹 살아가는 민중들을 천하게 여기면서 지배하고 부려먹을 수 있음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향로는 향을 피우는 그릇이고 주자는 술 담아 따르는 그릇이다. 사자나 어룡의 입에서 피어나오는 향기와 흘러내리는 술은 신비하고 고상한 진리의 향이자 술이 되고 말 것이다.
향로는 향을 피우는 그릇이고 주자는 술 담아 따르는 그릇이다. 사자나 어룡의 입에서 피어나오는 향기와 흘러내리는 술은 신비하고 고상한 진리의 향이자 술이 되고 말 것이다. ⓒ 청자화보집
이상적이고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는 청자로써 향로를 빼놓을 수 없다. 향로는 주로 부처님의 진리를 냄새로 나타내는 기물이다. 향로의 몸체나 뚜껑을 지혜를 상징하는 사자나 신령스런 어룡 모양으로 만들어 신비성을 더했다. 사자나 어룡의 입을 통해서 향기를 곁들인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것은 이미 보통의 향기가 아니다. 진리와 신비의 향기, 절대의 향기가 된다.

향로 중에서 최고의 향로는 아마도 몸체는 국화꽃잎으로 덮고 뚜껑은 공처럼 둥근데 구멍이 숭숭 뚫린 투각 향로일 것이다. 몸체는 국화잎과 연꽃이 감싸고 있다. 몸체를 앙증맞은 세 마리 토끼가 흔쾌히 떠받치고 있다.

뚜껑의 숭숭 뚫린 구멍으로 향이 솔솔 피어올랐을 것이다. 그 향기는 연꽃과 국화의 향기가 저절로 배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는 저렇게 고귀해야 하는가? 고려 귀족들의 진리 즉 법에 대한 태도는 저렇게 향로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청자 칠보 투각 국화문 향로, 몸체는 국화잎으로 둘러싸여 있고 뚜겅은 공모양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저 구멍으로 피어오르는 향은 이미 범상한, 이 세상의 향이 아니다.
청자 칠보 투각 국화문 향로, 몸체는 국화잎으로 둘러싸여 있고 뚜겅은 공모양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저 구멍으로 피어오르는 향은 이미 범상한, 이 세상의 향이 아니다. ⓒ 청자화보집
푸르파르스름한 색깔을 띠고 반짝이는 유리질로 덮여 있는 청자는 옥과 비슷하다. 여기에 모양까지 갖추었으니 고려 귀족들은 고귀한 취향을 청자로 맘껏 나타내었다. 그 고귀성은 끝은 어디일까?

이제 고려 왕실과 귀족들은 평상시의 삶 자체를 이상적인 세상과 동일시해버리고 싶었나 보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때의 왕이었던 의종 때 청자로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옥으로 여긴 청자로 기와를 해 덮은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이 혼동되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고 스스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의 현실도피는 결국 무인 정변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영원히 현실로부터 격리되고 말았던 것이다.

청자 보상화, 연화문 기와. 화려한 꽃모양 무늬를 돋을 새김으로 표현한 청자로 만든 기와. 이런 기와로 지붕을 잇고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항상 신비하고 영통한 이상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청자 보상화, 연화문 기와. 화려한 꽃모양 무늬를 돋을 새김으로 표현한 청자로 만든 기와. 이런 기와로 지붕을 잇고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항상 신비하고 영통한 이상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 청자화보집
순수청자는 초반에는 그 순수한 색깔과 투명질의 유리막으로 신비하고 이상적인 느낌을 한없이 발휘했다. 점차 조각과 같은 모양이 여기에 곁들여져서 색과 모양의 조화를 통해서 최고의 경지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릇의 모양만 가지고는 어딘가 덜 구체적이었다. 그림을 그려 무늬를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자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수청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기울여졌고, 마침내 상감법이 개발되었다. 12세기 중엽부터 상감청자가 등장하더니 이내 상감청자 시대로 접어들고 말았다.

청자 참외 모양 꽃병, 좀 더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상감법을 개발해내고 말았다. 순수청자는 상감청자로 계승 발전되어 갔다.
청자 참외 모양 꽃병, 좀 더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상감법을 개발해내고 말았다. 순수청자는 상감청자로 계승 발전되어 갔다. ⓒ 청자화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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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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