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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호 선생 추도식
故 김종호 선생 추도식 ⓒ 허미옥
21일(일) 오후 6시 경북 출신 비전향 장기수 故 김종호 선생 1주기 추도식.

'반딧불이' 지하강당에서 열린 이날 추도식은 비전향 장기수로 2000년 9월 북한으로 1차 송환되었다가 2003년 11월 북에서 사망한 김종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영정사진과 함께 소박하게 마련된 상을 뒤로 한 채, 참석자들은 7년 동안 대구에서 함께 생활한 故 김종호 선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故 김종호 선생은 지난 60년 남파되었다가 61년 체포, 91년 심한 폐결핵으로 인해 병형 집행정지를 받고 출소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그는 석방되어서 성주에 있는 희망양로원에서 얼마간 생활을 하게 된다.

출소 후, 고문 후유증으로 병치레 심해

대구경북양심수 후원회 한기명 대표는 "병형집행정지란 거의 시체와 다름없는 사람을 거리로 내던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는 "93년 희망양로원에 비전향 장기수가 살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산행을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지만 2000년 송환되기 전까지 고문 후유증으로 계속 병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다장기부전'. 즉, 온 몸의 장기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것.

참석자들은 송환 이후 북한에서 열린 8·15 축제 때 그를 만난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 류근삼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15 대회 때 행사장에는 2000년 당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예순 세 분이 앉아 계셨는데 그 속에 김종호 선생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7년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구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이 너무 반가웠는지 김종호 선생은 내 손을 오랫동안, 끝까지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북에서 가족들 품에서 눈 감으셔서 다행"

ⓒ 허미옥

이날 추도식 참석자들은 故 김종호 선생이 '좋은 세상에서 통일조국을 함께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염원했다.
이날 추도식 참석자들은 故 김종호 선생이 '좋은 세상에서 통일조국을 함께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염원했다. ⓒ 허미옥
한편 지난 9월 통일뉴스와 인터뷰했던 장기수 김영식 선생은 故 김종호 선생에 대해 "(감옥)살 때 다리를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났어. 찾아가고 싶었는데 대구에서 산다는 소식만 들었고…. 올라가서 돌아가셨대. 너무도 아쉬워요"하며 감옥생활의 어려웠던 점을 회상하기도 했다.

대구경북양심수 후원회 윤보현 사무국장은 "2000년 9월 송환 이후 2003년 11월에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종호 선생의 부고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추모식장에서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지만, 그래도 북으로 돌아가셔서 가족들 품 안에서 눈을 감으신 것은 다행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대구지역 양심수 어른들과 후원회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故 김종호 선생 약력

▲ 故 김종호 선생
1916. 8. 2.
경북 김천시 남면 월명리 출생
김천고보 졸업
금융조합 이사로 재직 중 청진에서 해방을 맞아 경리사업에 종사
소비조합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

1960. 남파

1961. 5.25. 체포

1991. 5.25. 석방. 성주 희망양로원에서 생활

1993.11. 대구 수성동 '민들레의 집'에서 생활

1999. 3. 김창원 선생님 출소 후 함께 생활

2000. 9.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분들과 함께 북녘에 송환
2003.11.21 감옥에서의 고문 후유증에 의해 전신 다장기부전으로 운명. / 양심수 후원회 제공

빛나는 청춘으로 부활하소서.
- 장은희 (양심수 후원회 전 간사)

▲ 장은희 씨
올 겨울은 늦게 오려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 이제 겨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날이 선생님을 보내는 날 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말입니다.
이 쪽에서는 편안한 날 없이 그 모진 세월 힘들 게 사셨는데, 북쪽에서나마 가족들과 잘 계시리라 제 맘 편하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며 몇 해를 보냈습니다.

한번씩 선생님 생각이 날 때마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지. 그래야 우리 김 선생님 얼굴 한 번 뵈러 갈 수 있을텐데...' 그저 생각만 하면서 마음 아팠는데 끝내 이렇게 선생님 가시는 마지막 길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이 조국의 현실이 가슴을 에이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양심수 후원회에서 선생님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어 선생님 생전의 뜻을 기리고 선생님의 서거를 진심으로애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북으로 가시고 한 동안 뵙지 못한 많은 분드을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생전에는 자주 뵈었던 분들인데 새삼 선생님께서 우리 대구지역에 어떤 존재였는지,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젋은 시절 조국의 통일에 뜨거운 애정, 사람을 진심으로 믿고 존경하는 것에 대한 철학.

매사에 말이 많으신 분이 아니셨지만 선생님의 생활 속에서 얻은 우리들의 깨달음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모두의 김종호 선생님!

분단된 조국을 뒤로 한 채 떠나시는 그 걸음이 천근 만근 얼마나 무거우시겠습니까만은 우리 7천만 겨레의 조국 통일에 대한 열망을 믿으시고, 부디 좋은 곳으로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생에는 하나된 통일 조국, 좋은 세상에서 생전에 다 못하시었던 조국 번영의 길에 한 몸 불사를 수 있는 빛나는 청춘으로 부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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